[국정운영과제]'기업무장해제' 정책 다수 포함…재계 우려
다중대표소송제‧전자투표제‧집중투표제 2018년까지 도입
재계 "기업 투자 위축, 외국계 헤지펀드 '먹튀'만 도와주는 꼴"
다중대표소송제‧전자투표제‧집중투표제 2018년까지 도입
재계 "기업 투자 위축, 외국계 헤지펀드 '먹튀'만 도와주는 꼴"
국정기획위원회가 19일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및 100대 국정과제'에 기업 경영권 방어 장치를 해제할 우려가 큰 법안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재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날 국정위는 ‘재벌 총수 일가 전횡 방지 및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2018년까지 다중대표소송제‧전자투표제 도입,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국회에서 개정을 추진하다 재계 반발로 무산된 상법개정안에 포함된 내용들이다. 재계에서는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을 주거나 대주주의 지배력을 약화시켜 ‘기업 사냥꾼’들의 적대적 M&A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법개정안에 반대해 왔다.
특히 집중투표제는 정치권 내에서도 논란이 클 정도로 우리 기업들에게 치명적인 조항으로 꼽힌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방식과 달리,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를테면 주총에서 3명의 이사를 선임할 때 후보자가 4명 나왔다면 주주들은 4명의 후보자들 중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자에게 4표를 몰아줄 수 있게 된다.
현행 법안은 주주제안으로 집중투표를 청구하더라도 정관으로 집중투표 배제가 가능하지만, 개정안은 정관으로 집중투표를 배제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는 명목상으로 소액주주 보호를 목적으로 하지만, 재계에서는 실질적으로 소액주주보다는 2~3대 주주, 투기펀드 등이 대주주의 경영권을 공격하는 용도로 활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소액주주들이 이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표를 규합하는 게 어려운 반면, 일정 지분을 확보한 외국계 헤지펀드들은 표를 몰아 자신들의 이익에 충실한 인물을 경영진에 투입시킬 수 있게 된다.
외국계 헤지펀드가 경영에 참여할 경우 단기적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업의 정책 결정에 압력을 넣은 뒤 막대한 이익을 빼먹고 지분을 매각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겠다는 건 외국계 헤지펀드가 우리 기업에 이사를 꽂아 넣고 경영권을 위협하거나 막대한 이익을 취한 뒤 ‘먹튀’ 하기에 수월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계 펀드 칼 아이칸이 지난 2006년 KT&G 주식 5.69%를 매입한 뒤 정관상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이사회 진입에 성공한 뒤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지분을 되판 사례가 있다. 당시 칼 아이칸은 경영진에 보유 부동산 매각을 통해 배당을 확대하라고 요구했고, KT&G는 당시 부동산 매각은 하지 않았지만 2조8000억원을 배당금으로 써야 했다. 칼 아이칸은 1500억원의 차익을 거두고 그해 12월 KT&G 지분을 매각했다.
배당 확대는 다른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되지만, 투자와 배당의 적절한 배분 없이 배당에 집중할 경우 기업의 중장기적인 성장 전략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이 이같은 공격에 노출될 경우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단기 차익을 올리는 게 목적인 외국계 투기자본에게 해당 기업의 중장기 전략은 관심 사안이 아니다”라며 “배당 위주의 정책결정 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기업의 투자자금이 고갈되건 말건 이익을 챙겨 떠나는 게 투기자본의 생리고, 집중투표제는 그걸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자투표제의 경우 이미 제도 자체는 도입돼 있지만 이사회 결의를 통해 채택하도록 하고 있어 실제로는 도입하지 않은 기업이 많다. 전자투표제가 의무화되면 주주 수가 일정규모 이상인 상장사는 의무적으로 전자투표를 도입해야 한다.
재계에서는 전자투표제 의무화될 경우 기업 의사결정과정에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소액주주들이 확인되지 않은 악의적 루머에 의해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지고 의도적인 조작이나 오류발생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주주총회는 주주들 간 의견 교환을 통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돕는 수단인데,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할 경우 현장 주총 참석률이 오히려 떨어지는 형식적인 주총이 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다중대표소송제도 투기자본에 의한 악용이나 기업의 경영활동 위축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조항이다.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일정수준’ 이상 보유하고 있을 경우 모회사 지분 1%(상장사는 0.01%) 이상을 가진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에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다중대표소송제에 해당되는 모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보유 지분을 ‘50% 이상’으로 제시해 왔다. 이 제도가 의무화되면 자회사에 대한 평균 지분율이 75%를 넘고 있는 우리 지주회사 체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재계에서는 다중대표소송제도가 과도한 기준으로 도입될 경우 소액주주들의 이익 보호보다는 투기자본에 악용되는 사례가 많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더라도 배상액이 주주에게 직접 귀속되지 않기 때문에, 투기자본들이 다중대표소송을 빌미로 경영권을 압박해 단기차익을 취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해당 조항을 적용받는 자회사들의 경영활동 위축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경영진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과감한 투자나 혁신에 나서기보다는 위험을 회피하고 소극적인 태도로 경영에 임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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