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배치된 최태원 사단, 경쟁적으로 투자 '포문'
SK하이닉스, SK(주), SK이노베이션 등 M&A 잇달아
미래 먹거리 발굴, 기존 사업 고부가가치화 위한 공격적 투자
글로벌 경기불황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국내 대기업들의 투자가 꽁꽁 묶인 가운데, 유독 SK그룹 계열사들만 공격적 투자에 나서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최태원 회장의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서든데스’ 발언 이후 연말 인사를 통해 재배치된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기존 사업의 고부가가치화와 미래 먹거리 발굴에 매진하면서 신성장동력 창출과 미래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세계 2위 낸드플래시 생산업체인 일본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문의 지분 20%를 인수하기 위해 제안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액은 3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인수에 성공한다면 SK하이닉스는 그동안 D램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낸드플래시 부문을 단번에 크게 강화할 수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낸드플래시 분야 세계시장 점유율 19.8%인 도시바와 기존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부문(10.4%)을 합치면 세계 1위인 삼성전자(36.6%)에 필적하는 수준까지 단숨에 뛰어오른다.
SK하이닉스는 올 하반기 충북 청주에 낸드플래시 공장 신규 착공을 계획하는 등 낸드플래시 사업 규모를 급속하게 확장하고 있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6일 경영설명회에서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7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청주 낸드플래시 공장에 2조2000억원, 중국 우시 D램 공장 경쟁력 유지에 9500억원이 투입되며, 여기에 도시바 메모리사업부문 인수까지 성사되면 투자액 대부분의 용처가 윤곽을 드러낸다.
SK하이닉스의 올해 투자액 7조원은 SK그룹 내에서도 가장 큰 규모다. 지난해 승진과 함께 SK 주력 계열사 CEO 중 유일하게 잔류한 박성욱 부회장이 투자를 진두지휘한다.
박 부회장은 지난 2년간 6조원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바 있으며, 최태원 회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올해 더욱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는 것이다.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장동현 사장이 CEO로 배치된 SK(주)도 연초 LG실트론을 6200억원에 인수하는 대형 M&A 소식을 알렸다.
SK(주)의 LG실트론 인수는 지주회사로서 자체적으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사업구조를 구축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종합 반도체 포트폴리오 구축’이라는 그룹 차원의 큰 청사진과도 연관돼 있다.
SK(주)는 지난해 반도체용 특수가스 제조업체인 SK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며 반도체 소재 사업에 진출한 데 이어, 반도체용 프리커서 합작법인인 SK트리켐과, 반도체용 식각가스 합작법인인 SK쇼와덴코를 각각 설립했다.
여기에 300mm웨이퍼 분야 세계 4위 기업인 LG실트론을 인수함으로써 반도체 핵심 소재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게 됐다.
그룹 전체적으로는 SK(주)의 반도체 핵심 소재와 SK하이닉스의 D램·낸드플래시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가 갖춰진 것이다.
지난해 말 SK이노베이션 사장으로 취임한 김준 SK에너지 사장도 연초부터 공격적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SK이노베이션은 연초 3조원 규모의 투자계획과 함께 화학사업과 석유개발사업 분야의 국내·외 M&A 및 지분 인수 등을 추진하는 한편, 배터리 공장 증설 및 배터리 분리막 사업 확대 등 신사업 분야에 대한 투자도 지속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후 지난 2일 4200억원을 투자해 다우케미칼의 에틸렌 아크릴산(EAA) 사업을 인수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고부가 화학제품인 에틸렌 아크릴산 사업 진출은 기존 정유 중심 사업구조를 탈피해 수익구조 다변화·고부가가치화를 추구하겠다는 SK이노베이션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도 화학과 윤활유 등 비정유 부문의 선전에 따른 것으로, 앞으로도 비정유 부문 투자를 강화하는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다.
SK텔레콤의 새 수장인 박정호 사장은 아직 구체적인 투자계획은 내놓지 않고 있지만, 조만간 대규모 M&A의 포문을 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SK테레콤은 연초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자율주행·5G 등 정보통신기술(ICT) 신산업에 3년간 11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시장 선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미래성장 사업들인 만큼 해당 분야에서 선행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해 단번에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효과적인 투자가 될 수 있다.
특히 박 사장은 과거 SK C&C와 SK하이닉스 등 굵직한 인수합병을 주도한 M&A 전문가로 알려져 있어 이런 예상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SK그룹 관계자는 “대내외 경영환경이 불확실할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미래 먹거리 발굴과 기존 사업의 고부가가치화에 매진해 급격한 산업의 변화 속도에 대응해야 한다는 게 최태원 회장의 지론이고, 각 CEO들도 이에 공감하고 있다”면서 “계열사별 공격적 투자 행보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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