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추천 총리' 다시 꺼내든 야권, 속내는 '제각각'
'주도권' 잡자는 국민의당은 적극 제안, 민주당은 '타협' 모양새 꺼려
탄핵시 황교안 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 막기 위해선 선결과제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차관 인사를 단행하고 LCT 비리 관련 수사를 지시하는 등 대통령 직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이에 대응해 야권은 당초 내던졌던 '국회 추천 총리' 카드를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이달 9일 당시만 해도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해 국회 추천 총리를 받아들이겠다며 낮은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 촛불집회를 계기로 보수층 재집결이 가능하다는 측근 그룹의 판단에 따라 퇴진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등 정면돌파 의지를 내비치는 모습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외교부 2차관에 이어 전날엔 문체부 제2차관을 내정하며 내치 권한을 주도적으로 행사하는가 하면, 더불어민주당 친문(친 문재인)계와 새누리당 비주류 PK(부산·경남) 인사들을 겨냥한 LCT 비리 사건 수사를 직접 지시했다. 이로써 '최순실 게이트' 국면 전환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도다.
당초 야권은 국회에 국무총리를 추천해달라는 박 대통령의 요구에 "검토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한 목소리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가 요원하고 탄핵 절차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황교안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야권 일각에서 국회 추천 총리부터 인선해 박 대통령을 견제하자는 주장이 다시 나오는 이유다.
다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의 입장차가 또렷해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국회 추천 총리를 인선하자는 것은 박 대통령의 명시적인 2선 후퇴 선언 또는 자진 사퇴 후에야 총리 인선을 논의할 수 있다는 야권의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난 내용이다.
주도권 잡으려는 국민의당, 셈법 복잡한 민주당은 '끙끙'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당 비대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총리 선출”이라며 “아직은 헌법상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있기 때문에 야3당이 함께 영수회담을 해서 우선 총리를 선임하고, 그 총리가 인적 청산과 조각에 준하는 개각 후에 검찰수사와 국정조사, 특검이 진행되면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의 이러한 제안은 국회가 여전히 촛불집회에만 올인한 채 이렇다 할 방안을 내놓지 않다보니, 청와대가 반격할 시간적 여유를 벌어주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국정 수습과 대통령 견제의 주도권을 제대로 쥐기 위해선 청와대의 시간표를 탈피해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최근 박 대통령이 LCT 비리 수사를 지시한 데 대해서도 정치적 저의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것 자체에는 ‘환영’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원내 제3당인 국민의당으로서는 정국이 급박할수록 국정 주도권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민주당과는 달리 국민의당은 부산 지역구 의원이 한 명도 없는 만큼, 거칠 것 없이 이슈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셈법에 의한 대응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정의당 모두 총리 추천에 거리를 두고는 있지만 입장은 각각 다르다. 정의당은 지지층 자체가 대통령의 무조건 하야를 촉구하는 강경 노선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굳이 총리 문제까지 거론할 필요가 없다.
“제1야당 향후 플랜이 뭔지 소속 의원도 모른다”
반면 민주당의 속내는 복잡하다. 무엇보다 핵심 지지층이 가장 큰 문제다. 문재인 전 대표와 당 지도부 모두 이미 ‘무조건 퇴진’을 당론으로 정한 상황에서, 자칫 한 발 물러나 박 대통령과 ‘정치적 타협’을 시도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그간 야권 지지자들은 문 전 대표와 중앙당이 애매모호한 입장으로 일관한다며 강경 모드로 태도 변화를 촉구해왔다.
하지만 차기 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간판급 후보인 문 전 대표와 친문계 지도부는 고심이 깊다. 대응 수위를 한껏 높였다가 중도층 유권자들의 반발을 살 경우, 지난 대선의 ‘48 대 51’ 벽에 다시 부딪칠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제1야당 핵심 지지층 결집을 소홀히 하기도 어렵다. 실제 문 전 대표를 제외한 야권의 타 대선 주자들이 일찍이 ‘대통령 사퇴’를 들고 나오면서,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이재명 성남시장 등으로 빠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여기에 이미 총리 추천 제안을 거부당한 박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야당이 일방적으로 말을 바꾼 모양새인 만큼, 이번엔 박 대통령이 공을 쥐게 됐기 때문이다. 설사 수락해도 신임 총리에게 명시적으로 실권을 내어줄지는 또 다른 문제다. 추 대표가 지난 14일 박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을 제안했다가 당내 반발에 부딪혀 같은 날 철회하면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민주당 내부에선 총리 추천 문제는 차치하고, 향후 시나리오 자체가 없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당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당직을 맡은 한 의원이 발언을 신청해 “도대체 우리당의 정확한 계획이 무엇인가. 기자들이 물어볼 때마다 답을 제대로 못해서 난감하다”며 “이후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우리 플랜이 어떤 것이 있는지를 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가 자기들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면, 우리는 거기에 대응하는 수준이니까 계속 말려들어가는 것”이라며 “일반 시민들이 하는 촛불집회에 묻어가는 것 말고, 제1당만 할 수 있는 플랜을 제시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당에는 일치된 시나리오가 없는 것 같다. 누가 총대 메는 사람이 하나도 없지 않나”라고도 했다.
차기 대선에 미칠 정치적 손익을 계산하다보니 정국 수습은 물론, 일치된 모습조차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당장 대선이 눈앞에 있고, 다 이겼다고 생각하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같다”면서 “지금 우리당 관심사는 솔직히 최순실 정국이 아니라 문재인 후보의 대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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