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정국속 '조기 대선론' 급부상, 실현 가능성은?
후폭풍 거센 탄핵보단 '질서있는 권력 이양' 가능해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적 개각으로 사퇴 여론이 더욱 거세지는 가운데, 정치권을 중심으로 ‘조기 대선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정 공백과 혼란, 급박한 일정 등으로 후폭풍을 몰고 올 탄핵보다는 1년 4개월 남은 차기 대선을 앞당기는 방안을 선택해 권력 이양에 질서를 부여하자는 시나리오다.
조기 대선을 위해선 국회의원 재적 3분의2 이상의 동의로 헌법을 개정한 뒤 대통령 임기를 일시적으로 줄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 필요한 조건과 같으면서도 부담과 혼란은 상대적으로 적다.
현재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져 사실상 식물대통령 상태로 전락한 상황에서 남은 임기 그대로 국가원수 직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대선을 앞당기되 그 전까진 여야 합의로 결정된 총리가 권한을 대행하며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과도거국내각’ 형태가 효율적일 거란 전망이 힘을 얻는다. 다만 조기대선을 바라보는 야권의 셈법이 달라 향후 조율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정치권에서 조기 대선론을 가장 먼저 제시한 건 심상정 정의당 공동대표다. 심 대표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하면, 여야 4당이 국회의장 주재로 과도중립내각을 확정해야 한다"며 "권력이양 일정이 확정되면 '조기대선준비특위'를 구성해 선제적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조기대선 실시에 따른 문제점과 혼란을 미연에 방지해야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일정도 내놨다. 단계적으론 ‘하야선언’ ‘과도중립내각 구성’, ‘조기대선’ 순으로 실시하고, 2017년 4월 10일로 예정된 재·보궐선거일에 동시 선거로 치르자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의 실제 사임은 조기대선일 60일 전에 이뤄지며, 과도중립내각의 역할은 △권력이양 일정관리 △헌정유린 사태 진상규명·헌정유린 사범 단죄 △경제·안보 등 국가위기 관리로 규정했다.
더불어민주당 전략통으로 불리는 민병두 의원도 최근 SNS에 ‘조기대선이 해법’이라는 제목으로 과도거국내각과 조기대선 로드맵을 선보였다. 민 의원이 제안한 시나리오는 △과도거국내각이 성역 없는 수사와 검찰개혁, 선거관리를 담당하고 △6개월 후 조기대선을 치르는 식으로 정리된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매일 열리는 민주당 비상 의원총회에서도 이 같은 안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의에 따라 선출된 권력이 아닌 과도내각이 1년 이상 지속되는 것은 당장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대선을 6개월 후로 앞당기자는 게 민 의원의 주장이다. 이럴 경우 △차기 후보들이 준비를 마치고 경선에 참여할 수 있으며 △국민들에게 미래권력에 대한 판단기회를 제공하며 △향후 정치 일정이 분명해져 안정된 권력이양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야당에선 조기대선이 주요 이슈로 활발하게 거론되는 모습이다. 특히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야권의 간판급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자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조기대선에서 맞붙는 시나리오를 이미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 역시 박 대통령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없을 땐 조기대선이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을 표했다고 한다. 다만 안 전 대표는 “지금은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며 직접적으론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섣불리 선거를 앞당겼다가 민주당에게 유리한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공존한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대통령이 하야하면 60일 내에 후임자를 선출해야 하는데, 제1당 후보의 영향력이 막강한 상황에서 단 60일 안에 판을 흔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에서다.
조기대선이 곧 선거 필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여권에서는 조기대선론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대신 거국중립내각 구성과 대통령 2선 후퇴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선제공격’이 오히려 조기대선론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 원내대표는 지난 5일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면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밖에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하야하면 60일 내에 후임자를 선출해야 하고, 공무원은 선거 90일 전에 미리 사퇴해야 한다는 규정(공직선거법 63조)을 고려할 때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등 야권의 대다수 잠룡들이 출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작성한 문건에서는 대통령 궐위 상황에 의한 보궐선거 시 자치단체장은 선거 30일 전까지만 사퇴하면 된다는 해석을 내놨다. 이 문건에 따르면, 선관위는 현직 자치단체장의 대선 출마가 가능한 것으로 규정하고, 후보등록을 선거 23일 전까지 마치도록 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단체장들의 대권 출마에도 더욱 힘이 실릴 전망이다.
한편 민주당 소속 대권 주자 5인방(문재인·박원순·안희정·이재명·김부겸)은 오는 7일 여의도 소재 식당에서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조찬 회동을 갖고 정국 해결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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