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주자들, '개각' 발표에 처지 따라 대응수위 달라
안철수·박원순 "물러나라" 사실상 하야 언급
문재인·안희정 '계속 이런 식이면 중대결심' 다소 소극적
야권 대선주자들은 2일 박근혜 대통령의 개각 발표에 '하야'를 거론하며 일제히 반발했다. 하지만 주자 별로 비난의 강도에서 약간씩 수위차를 보여 눈길을 끈다. '데일리안'은 이들 야권 대권주자들의 발언 강도(별점 5점 만점)와 이면 사정을 분석해봤다.
박원순(강도:★★★★★)
청와대발 개각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박 시장은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에 또 다시 분노하게 된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야한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이번 개각을 '일방적인 발표'로 규정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조각권(내각을 꾸릴 권리)을 행사할 자격을 이미 상실했다"며 개각 자체를 부정했다. 그는 여당인 새누리당에게도 "농간은 즉각 중단돼야한다"며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또한 박 시장은 "저는 국민과 함께 촛불을 들겠다"라며 박 대통령의 하야를 압박하기 위한 '행동'에도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 각층이 모여 조직된 비상시국회의에 참여할 것"이라며 "앞으로 이 시국회의가 진행하는 평화로운 집회가 안전하고 질서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서울시는 모든 행정편의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안철수(강도:★★★★★)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 공동대표의 발언도 역대 어느 발언보다도 강경했다. 이날도 검은 넥타이를 매고 정론관에 나타난 안 전 대표는 개각을 "국민에 대한 모욕이자 국민을 조롱한 폭거"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라"며 두 번이나 힘줘 말했다.
특히 안 전 대표는 "더 이상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 "당신에게 더 이상 선조들의 피땀으로 일군 대한민국을 끌고 갈 명분이 없다"등 박 대통령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뱉어 평소 유약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안 전 대표는 이날 정론관 기자회견 직전 의원총회에서도 자신의 발언에 대해 의원들과 상의하고 의원들 중 일부는 발언 수위에 우려를 표했음에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부겸(강도:★★★★☆)
일찌감치 대권도전을 선언하고 활동중인 김부겸 더민주 의원도 상당히 강경한 어투로 이번 개각을 비난했다. 김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은 야당의 하야 투쟁을 강요하는가?'라는 제하 글에서 "이제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조차 접는다"며 자신의 목소리를 전했다.
김 의원은 글에서 "(박 대통령의 김병준 총리 내정은) 야당을 백안시하고, 들끓는 민심을 짓밟는 사실상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다"며 "야당으로서는 이제 대통령의 주도권을 인정하든가, 아니면 하야 투쟁으로 나서야 하는 선택을 강요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사실상의 '하야 투쟁 선언'이다.
문재인(강도:★★★☆☆)
야권 대권주자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이 분노한 민심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라면서 "대통령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문 전 대표는 '국민'의 입을 빌려 박 대통령의 '하야'를 간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 국민들의 압도적인 민심은 박대통령이 즉각 하야하고 퇴진해야 된다는 것"이라며 "저는 그 민심을 잘 알고 있고, 그 민심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치적 해법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저도 중대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문 전 대표는 박원순·안철수 등 자신을 뒤쫓고 있는 야권 대권주자들의 잇따른 '하야' 언급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하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우리 헌정사에 큰 비극이 되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어떤 국정의 혼란이나 공백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된다"며 "가능하다면 정치인으로서 정치의 장에서 정치적인 해법을 모색해보는 것이 정치인의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희정(강도:★★☆☆☆)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며 현직 도지사인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박수현 대변인을 통해 기자들에게 소감을 밝혔다. 안 지사는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들과 협의하기 바란다"면서 "그 길만이 지금의 국정의 표류상태를 막을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안 지사는 또한 김병준 내정자의 총리 수락에 대해서는 "지금 그 부분을 이야기할 대목은 아닌 것 같다"면서 "박 대통령이 정말 이 국면을 수습하고 싶다면, 의회 지도자들과 이 문제를 풀어야한다. 박 대통령이 내각을 추천하는 일은 지금 현재 이 정국의 엄중함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부자가 몸조심 한다"
각 야권 대권주자별 온도차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부자가 몸조심 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야권내 단연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는 친노세력의 강경 주문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하야 역풍'을 조심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에 비해 차기가 아닌 차차기에도 충분히 '젊음'을 유지하는 안희정 지사는 급하게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하야했을 때 가장 이익을 볼 사람은 현재 선두인데, 선두인 문재인 전 대표가 '하야'에 대해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조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너무도 뻔히 보이는 눈앞에 이익이니 함부로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안철수 전 대표와 박원순 시장의 강경한 반응에 대해서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주장하는 '하야' 문제에 선제적으로 나서면서 이를 선점하고 지지율 반등을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표는 야권내에서 문 전 대표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으며 단 한번도 문 전 대표를 뛰어넘어본 적 없다. 박 시장도 한때 중위권으로 올라서며 존재감을 과시했으나 최근 하위권으로 떨어진 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안 전 대표와 박 시장이 강경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라며 "문 전 대표는 자기가 지켜야할 지분이 큰 상황이지만, 안 전 대표는 이대로 가면 무난히 '지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문 전 대표가 '하야'에 강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오히려 안 전 대표에게는 일정정도 리스크(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상황을 역전시키도록 도전해볼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한편 김만흠 원장은 "'하야'와 '탄핵'은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의미에서는 같지만 그 방식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만큼 반드시 구분해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크게 볼 때 '하야'는 국민적 여론에 의해 대통령이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고 '탄핵'은 국회에서 법적절차를 밟아 강제로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이다. 김 원장은 "과거의 탄핵 역풍은 말그대로 강제로 끌어내리려 했기 때문"이라며 "하야 상황에도 역풍이 불지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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