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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불황 나비효과…'역대급' H형강 수주전


입력 2016.10.14 08:00 수정 2016.10.14 09:41        이광영 기자

동국제강 BH빔 공급 시작, 포스코·현대제철 ‘발등에 불’

동국제강 BH빔이 제작되고 있는 모습.ⓒ동국제강

조선업 불황에 따른 후판 공급과잉이 건설용 강재인 H형강 시장까지 뒤흔들어놓았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H형강 시장에서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강 ‘빅3’ 간 물고 물리는 '역대급 수주전'이 전개되고 있다.

대형 건설현장에서 이들의 수주전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 이유는 BH빔(Built up H-Beam)의 등장 때문이다. 후판을 용접해 생산되는 BH빔은 기존 H형강(Rolled H-Beam) 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최근 연이은 지진 발생으로 내진설계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후판으로 만들어져 기존 H형강 대비 항복비(강재의 항복점과 인장 강도의 비)가 낮은 BH빔은 연성이 더 좋아 쉽게 부러지지 않는 장점을 갖췄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내진설계에 사용할 수 있는 강재 가운데 성능을 보장할 수 있는 강재로 평가하고 있다.

H형강 시장이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2014년 3월 신세계 ‘동대구 복합환승센터’ 공사 입찰에서 BH빔을 들고 나온 포스코가 현대제철을 누르고 최종 입찰사로 선정된 것이 계기다. 이후 포스코는 부산 센텀시티, 삼송 복합 아울렛에 BH빔 수주를 연이어 따내며 H형강 공급사인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을 위협했다.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은 동국제강의 BH빔 공급이다. 동국제강은 포스코가 BH빔을 제작한 이후 현대제철과 포스코에 치여 수주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특히 현대제철 외에는 생산되지 않는 대형 규격(700mm 이상)의 공백은 실수요 대응에 한계로 작용했다.

삼송 복합 아울렛 수주전에서도 BH빔은 포스코가, H형강은 현대제철이 수주를 따내면서 동국제강의 설자리는 좁아졌다.

이에 동국제강은 올해 초부터 실수요 대응을 위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 전문 인력을 확충했고 지난 4~6월까지 3개월에 걸쳐 자사 BH빔의 구조성능평가를 마무리했다. BH빔 공급이 가능해지면서 대응이 불가능했던 대형 규격은 물론 기존 H형강 중소형 규격까지 패키지로 공급할 수 있는 시너지가 생겼다.

그 결과 동국제강은 9월 초 경기도 광주 소재 대형 물류창고에 투입되는 100억원 규모의 철골 자재 1만6000톤 수주의 주인공이 됐다. 7000여톤의 BH빔과 H형강·후판·일반형강 등 9000여톤을 일괄 공급하게 된 것.

이제는 현대제철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형 규격 H형강 공급을 독점하며 시장 지위를 굳건히 지켜왔던 현대제철은 포스코는 물론 동국제강의 BH빔 공급으로 대형 규격의 가격 하락 또는 판매 감소를 걱정할 처지가 됐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현대제철이 BH빔 공급에 뛰어들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형 규격 대비 대형 규격 H형강이 톤당 20만원가량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고 이 제품의 영업이익만 연간 수백억대에 이를 것”이라며 “현대제철이 BH빔을 본격 공급하는 것은 독점 공급 중인 대형규격의 수익성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이유로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과거 열린 강구조물 관련 세미나에서도 각사 발표를 통해 BH빔의 안정성 문제를 놓고 소리 없는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는 전언이다.

포스코 역시 동국제강의 BH빔 공급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BH빔을 수주한 초창기에는 경험 부족으로 납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납기가 늦어진 일부 긴급물량의 경우 현대제철이 납품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경험을 축척하면서 수요가의 신뢰를 쌓고 있는 가운데 패키지 영업이 가능한 동국제강의 등장은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포스코는 건축 설계를 도맡고 있는 콜럼버스(대표 채흥석)와 업무협약을 통해 기존 H형강과 BH빔의 단점을 보완한 ‘POS-H’를 개발했다. POS-H는 주문에만 의존하던 BH빔을 H형강에 일대일로 대응하도록 규격화한 것이 특징이다. 대형 규격은 물론 중소형까지 전 규격 대량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다양한 강종과 규격 수요에도 효율적으로 대응이 가능해졌다.

다만 업계에서는 포스코가 독자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중소형 규격 BH빔 공급이 원가상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라고 입을 모은다. 또 전 규격 대량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기에는 비용과 물리적인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전 규격 판매를 선언하면서 수익성에는 의구심이 생길 수 있지만 현대제철, 동국제강과 같은 조건에서 영업이 가능해졌다”며 “이에 H형강 사용만을 고집했던 건설사들도 서서히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BH빔의 수요는 조선업 불황에 따른 후판 공급과잉의 나비효과로, 시시각각 변하는 고객의 요구에 철강업계가 부응하면서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물고 물리게 된 ‘빅3’ 간 H형강 수주전이 향후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광영 기자 (gwang0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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