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발 '개헌론' 관통하는 핵은 ‘반 문재인’ 전선
"대세론 맞서려면 개헌으로 판 흔들어야"…안철수 비토론도 제기
야권발 개헌론의 중심축은 반(反) '문재인 대세론'이다. 개헌 외에는 거물급 후보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맞설 방안을 찾기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대선 본선에서 문 전 대표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간 3파전이 전개될 경우,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매개로 한 '반철수(반기문+안철수)' 연합이 구축될 거란 전망도 공공연히 나온다.
더민주 내 비문(非 문재인) 그룹에선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 그간 여야를 넘나들며 '개헌 파트너'를 물색해온 김 전 대표는 최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정의화 전 의장을 만나 '비 패권지대'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안 전 대표의 '제3지대'와 차별화 하겠다며 김 전 대표가 직접 만든 단어다. 그는 "반기문 총장이 비패권지대로 온다면 연대할 수 있다"며 러브콜을 보내는가 하면, 문 전 대표와는 만날 계획이 없다고 확언했다.
대권 도전을 선언한 김부겸 의원도 분권형 개헌에 적극적이다. 김 의원은 이미 지난 7월 같은 당 민병두·박영선·진영 의원 등과 개헌 관련 의원대담을 공동개최하고,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 중 민 의원은 야권 전략통이자 '반기문-안철수' 연합 가능성을 가장 먼저 제기한 인물이다. 아울러 문재인 대세론에 제동을 걸고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 역시 권력 분산을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표해왔다.
개헌론은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뜨겁다. 문병호 전략홍보본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당내 개헌에 대한 요구가 높아 조만간 공론화 절차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새누리당 친박(親 박근혜)계와 더민주 친문(親 문재인)계를 제외한 세력이 개헌을 매개로 뭉쳐야 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분권형 개헌이 어렵다면, 새누리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야권에서조차 진영을 넘나드는 개헌론이 활발히 전개되다 보니, 자칫 여권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차기 대통령 임기 초에 개헌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지금은 물리적으로 늦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자기들의 집권 연장을 위해서 플레이하고 있다”며 온도 조절에 나서기도 했다.
물론 야권 내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 전 대표 측은 개헌에 대한 원론적 입장만 유지한 채, 분명히 거리를 두고 있다. 현 상태가 계속되면 야권 내에선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굳이 개헌을 꺼내 판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다만 '반철수' 시나리오의 주인공인 안 전 대표조차 소극적인 모습이다. '국민의 기본권 향상'이라는 원칙적 입장에 머물 뿐,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한 개헌과는 담을 쌓고 있다.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도 "돌파구가 안 보이는 양당에서 이런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는 것 같은데, 나는 관심 없다"고 일축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20대 국회 개회사에서 개헌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한 데 대해선 "정치권에서는 권력구조 이야기만 한다"며 논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도 했다.
특히 안 전 대표의 '폐쇄성'도 견고해지고 있다는 것이 당 안팎의 중론이다. 개헌론은 물론, 문 전 대표를 향한 벽도 더욱 높아졌다. 안 전 대표는 지난달 “내년 대선에서 양극단 세력과의 단일화는 절대 없을 것”이라며 친문 진영을 ‘양극단 세력’으로 규정했다. 문 전 대표가 더민주 대선후보가 될 경우, 단일화를 하지 않고 본인이 국민의당 후보로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두 사람은 2012년 대선 단일화를 거친 뒤, 안 전 대표의 갑작스런 후보 사퇴를 둘러싼 ‘진실 공방’을 벌이면서 완전히 등을 돌린 바 있다. 구 민주당과 통합을 전격 결정했지만, '친노 패권주의'를 꾸준히 비판하다 문재인 체제에서 탈당을 감행하고 신당을 창당한 안 전 대표로서는 이번 대선을 '완주'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의 이같은 태도가 계속되자, 당내에선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현재 3자 대결 구도로는 승산이 없는 만큼 △야권 통합에 협조하거나 △여권과의 연대를 통한 '하향 지원'을 해야 한다는 요구다. 실제 지난달 김동철 의원 등이 내세운 ‘통합 경선’은 현실성이 상당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안 전 대표를 압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띄웠다는 평이다. 아울러 최근 유성엽 의원이 ‘안철수 후보론’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유 의원이 지난 9일 안 전 대표의 ‘공정성장’을 두고 “한가한 소리”라고 비판하자, 안 전 대표 측은 “같은 당 대선후보를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에 유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 전 대표가 국민의당 대선후보인지) 아직 모르겠다. 조금 성급하고 적절치 못한 표현”이라고 직격탄을 쏘았다. 본인을 국민의당 후보로 확정하고 대선 완주를 고집하는 안 전 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안 의원은 본인이 대선 후보라고 생각하지만, 내부에선 현실상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금부터 분권형 개헌이나 제3지대론 등을 꺼내고 있다. 즉 안 의원이 총리를 하고 내각을 구성하자는 것"이라며 "안 의원으로 하여금 개헌을 찬성하도록 만든 뒤, 국민의당이 개헌 주도권을 쥐고 새누리당도 화답하는 방식으로 반 문재인 연대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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