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신공항 유치 준비 현장을 가다 - 부산>
시민들은 '무관심·포기' 시민단체는 '울분·참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발표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어디로 선정되든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현 집권여당의 경우 지역적 배경인 '영남'은 TK와 PK의 연합이었지만 이제 '영남'의 분열은 다가올 대권 레이스에서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된듯하다. 데일리안은 신공항으로 들끓고 있는 대구와 부산을 각각 찾아 현지 민심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영남권 신공항 선정 문제로 활화산 된 부산을 찾아가니...
"신공항 때문에 부산하고 새누리당은 결별한 거나 마찬가지야. 이 말은 신공항이 밀양으로 거의 확정됐다는 거라.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는 완전히 결별한거지." 부산 금정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모 씨(56)는 신공항 입지 선정 얘기를 꺼내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신공항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반응은 대개 '자포자기'거나 '무관심'으로 나눠졌다. 가덕도가 선정돼야 한다는 식의 열변을 토해내는 경우는 드물었다.
16일 오전 11시 30분 '데일리안'이 찾은 부산역 앞 광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당 가덕신공항 유치 추진위원회가 삼삼오오 흩어져 가덕신공항 유치를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광장은 유동인구로 북적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덕신공항 유치! 부산부활의 첫걸음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프린트물을 내미는 손길을 쳐다도 보지 않고 무관심하게 지나쳤다. 서명을 받기 위해 설치해놓은 천막에선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는 관계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 부산 시민들 '무관심'하거나 '자포자기'거나
영남권 신공항의 위치 결정이 다가오면서 영남지역 5개 광역자치단체간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부산시장은 신공항이 가덕도에 오지 않으면 사퇴하겠다는 배수진까지 쳐놓은 상태다. 부산역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40대 여성은 "잘 모르겠는데, 부산에 가덕신공항이 오면 가기는 더 수월타 아니가. 밀양은 산이 많아서 안 될낀데. 그 산에 사는 사람 다 내쫓으면 보상비도 줘야돼고..."라고 했지만 어쩐지 말에 힘이 없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던 여대생 황모 씨(27)는 "가덕도나 밀양, 어디가 되든 상관이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함께 온 일행은 "밀양에 신공항이 유치되면 김해공항 없어지는 거 아닌가"라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황 씨도 곧장 입장을 선회했다. "김해공항이 없어진다면 (신공항이) 밀양으로 가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면 가덕도로 와야죠. 밀양이 되면 산을 많이 깎아야 돼서 환경보호 차원에서라도 밀양은 안 되겠네요"라며 웃었다.
부산 시민들 사이에는 밀양에 신공항이 들어서면 김해공항마저 흔들릴 것이란 위기감이 깔려 있었다. 신공항이 밀양으로 들어서면 적자를 면하기 위해 국내선 운항도 불가피한데 차량으로 1시간 거리의 김해공항 국내선과 밀양 국내선이 함께 운영되면 동반 부실이 예상돼 결국 김해공항의 폐쇄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다. 김해공항가덕이전 시민추진단 측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론적으로 봤을 때 김해공항이 사실상 사라진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부터 10년을 끌어온 이슈인만큼 자포자기의 심정인 시민도 다수였다. 연제구에서 과일가게를 하는 김모 씨(68)는 "나는 부산 사람이니까 밀양보다는 가덕도로 가야 된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우리가 뭐라고 한다고 그게 되는가"라며 "우리보다 정치권에서 더 난리다. 정치적으로 너무 시끄럽다"고 토로했다. 부산시청 앞 공원에서 만난 60대 여성도 "가덕도에 유치되는 게 부산 경제에는 낫겠지"라면서도 "그런데 그거 밀양으로 결정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운수업을 하는 이모 씨(53)는 "가덕도나 밀양이나 부산에서 가기는 다 거기서 거깁니다. 오히려 가덕도는 가본 적도 없어서 마냥 멀게 느껴지는데 밀양은 기차타면 1시간 정도 밖에 안 걸리는데. 두 지역 모두 그게 그건데 그냥 정치인들 입김싸움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가덕도가 선정돼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는 이들도 있었다. 서면역 인근에서 만난 60대 남성은 "당연히 가덕도로 가야지. 대구 사람들이 왜 난리인가 모르겠네. 물어볼 것도 없는데 뭘 물어봐싸!"라며 열을 올렸다.
◇ 참담한 부산시민사회 "결과 절망적으로 본다"...대책은?
"지금 (신공항 입지 선정이) 밀양으로 기울어진다는 여론이 돌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가덕도에 신공항이 들어서지 않는다면 서병수 시장이 옷을 벗는 것만으로 문제가 수습될 게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 할겁니까? 부산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오늘 심각하게 거론이 돼야 합니다."
이날 부산에서는 김해공항가덕이전 시민추진단 주최의 '비상총회'가 열렸다. 분위기는 참담했다. 서세옥 시민추진단 운영위원은 "불공정한 게임이 시정되지 않고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한 것 아니냐. 그 결과는 어떻게 수용하겠나"라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 14일 중구 광복로에서 시민 3만여 명이 모인 궐기대회를 공동주최했던 시민추진단은 이날 당초 불복 선언과 정부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호소문 발표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용역이 사실상 마무리된 상황에서 고정 장애물 누락 등 불공정 용역에 관한 반발과 불복 선언보다 대국민 여론전을 통해 정부의 정무적인 결정에 영향을 주자는 것으로 풀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장을 채운 공기는 결의보다는 패배감에 가까웠다.
시민추진단은 호소문을 통해 신공항 건설 경위와 가덕 입지의 타당성, 현재 진행 중인 용역의 공정성 훼손 등을 설명하고 "이번 신공항 입지 결정이 역사에 또 다른 과오가 되지 않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눈과 귀가 되어 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총회에서는 호소문과는 별개로 불복, 대정부투쟁 등 강경한 입장을 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고정 장애물 고의 누락 등 불공정한 용역이 진행된 만큼 밀양에 유리한 결과가 우려되므로 용역 자체를 무효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 운영위원은 "발표가 어떻게 나든 간에 밀양으로 결정될 경우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복종이나 불신임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대정부투쟁을 할 수 있는 방향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희로 공동대표는 "저는 결과를 절망적으로 본다. 불공정한 용역이 진행된 현 상황에서는 용역 무산 선언 외에는 별다른 카드가 없다"고 밝혔다.
간간히 분을 이기지 못한 듯 날카로운 고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화살이 가리키는 방향은 정치권이었다. 정창식 운영위원은 "20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서병수 시장이 지역 국회의원을 대동하고 나서서 강경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며 "대구는 국회의원들이 다 앞장섰다. 우리 부산은 새누리당 당 대표까지 했던 사람이 본인은 대표이기 때문에 입장이 곤란해서 결정하지 못한다는 그 따위 소리를 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김 공동대표는 "부산에서 선출된 사람들은 과연 공항에 대해 얼마쯤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토론이 끝난 후에는 공정한 용역을 촉구하는 얼음깨기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망치를 들고 '깜깜이 용역 NO' '맞춤형 용역 NO' '불공정 용역 NO' 등의 글자가 적힌 얼음을 내리치는 시민추진단 대표들의 모습에서는 사뭇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신공항 사전 타당성 검토 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은 오는 24일 이전에 신공항 입지 선정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서 시장은 오는 20일 서울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의 민자유치 공항 건설과 대구지역 발전방안을 동시에 제시한 상생안을 발표하고 정부 협조를 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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