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의 결단, 조선-해운 살리는 불씨 될까
<이강미의 재계산책>한진해운, 25일 자율협약 신청
최대주주의 '경영권포기' 노조와 정부도 상응한 역할을
한진해운 백기사 역할을 자처했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67)이 22일 한진해운 경영권 포기라는 '각골지통(刻骨之痛)'의 용단을 내렸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재무구조 개선 및 경영정상화를 위해 오는 25일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키로 했다.
수조원대 적자로 침몰위기에 처한 조선·해운업에 대한 정부차원의 기업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에서 조 회장의 ‘경영권 포기’소식에 재계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펼쳐왔던 조 회장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몸을 던졌다. 약 2조원에 달하는 유동성 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지난해 영업흑자를 기록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끝내 한진해운 자율협약 신청을 결정한 것은 한 배를 타고 끝까지 가기에는 자칫 그룹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경영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 회장의 '한진해운 경영권 포기'는 최대주주로서 또다른 형태의 책임경영을 실천한 것이다.
재계는 “안타깝지만, (조 회장이)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향후 해운업계 구조조정 추이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현재 한진해운 부채는 5조6000억원에 이르고, 당장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규모 역시 6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이에 한진해운을 살리려다 되레 그룹 전체가 발목을 잡히지 않을까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져갔던게 사실이다.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이란 독배를 마시게 된 것은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한진해운은 지난 2006년 고 조수호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 후 2009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독자경영을 해왔다.
문제는 당시 외부 영입 경영인이 해운업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단기적인 실적에만 급급해 적절한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지 못했다. 여기에 업종이 호황이라는 이유로 고가에 선박을 대량 구매하는 등 무리한 확장에 열을 올려 재무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말았던 것. 결국 한진해운은 2013년 기준 부채비율이 1400%, 영업적자가 3000억원에 달하는 등 악화일로를 걷게 됐다.
이에 조 회장이 한진해운 살리기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세계 경제의 장기 불황, 컨테이너 선사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선복 공급은 계속 증가했고, 우위를 점하기 위한 선박 대형화 경쟁도 심해졌다. 이런 와중에 초대형선 도입 확대와 선사간 인수합병(M&A) 등으로 경쟁이 심화되면서 공급 증가로 인한 운임시장이 붕괴 수준에 이르게 됐다.
설상가상, 해외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해운업의 중요성을 감안해 저금리 지원 등을 통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경쟁력에서도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어려운 상황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는 비단 한진해운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현대상선,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해운업계가 처한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조 회장으로서도 독자적인 자구노력만으로는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고심 끝에 채권단 자율협약 신청이라는 특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이 그룹의 연쇄부실을 막기 위해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기로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결정이다.
지금은 기업의 용기가 필요한 때다. 기업과 최대주주가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구조조정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이 인력감축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노력이 강성노조의 반대에 부딪쳐 흔들려서는 안될 일이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무조건 '칼날'부터 들이대는 식은 안된다. 하지만 병든 부위에 대한 진단이 내려졌다면, 환부를 도려낼때는 정확하고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 아울러 기업의 재활노력이 성공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재정비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해운업은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타 산업보다 훨씬 큰 산업”이라며 “국가 기반산업인 해운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상왕’ 장보고의 후예답게, 국내 조선·해운업이 격랑을 딛고 다시한번 전 세계에서 위용을 떨치기를 그려보는 것은 섣부른 기대일까. ‘수송보국’을 꿈꿔왔던 조 회장의 용단이 ‘구조조정 수술대’위에 놓인 국내 조선·해운업계를 살리는 불씨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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