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 씨, 팬 서비스는 가슴으로 역사는 머리로 보세요
<기고>이편에 서면 퇴출, 저편에 서면 영웅되는 연예계
문화권력 비위 맞추며 승승장구하는 잘못된 생존전략
한 집안이 있다. 누가 봐도 콩가루 집안이고 온갖 추한 꼴은 다 저지르는 재미있는 집안이다. 그런데, 이들이 밖에만 나가면 늘 옳은 말만 하고 정의에 불타는 사람으로 포장된다. 우리는 종종 이런 집안들을 자주 보는데, 그 대표적 집안이 바로 ‘연예계’라는 곳이다. 연예계는 흔히 좌파들이 말하는 자본주의의 폐해인 불균형과 불평등의 최전선에 있는 직업이다.
수많은 연예인들 중 겨우 3~5%만이 엄청난 수익을 얻고 있을 뿐, 대부분의 연예인들이나 연예기획사들은 굶어 죽어 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참 재미있게도 정치적 행위를 하는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그 안에 포함된 자들이다.
김제동의 1인시위와 이승환의 국정화 반대 콘서트로 세상이 시끄럽다. 뭐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늘 그렇듯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역겨운 기분이 드는 것도 마찬가지로 새삼스럽지 않은 감정이다. 그렇게 세상이 밝아지길 원한다면 자신들이 속한 그 집안(연예계)의 잘못된 것들을 먼저 잡고 나서 외치는 것이 진정성이 있어 보일 것이다.
세상 모든 직업 중에서 가장 더티한 직업에 속하는 이곳은 아주 쉽게 영웅을 만들어내고, 아주 쉽게 그 영웅을 폐기 처분시킨다. 그것은 그들이 진짜 영웅이라서가 아니라 정치계와 연예계, 대중들의 무지함이 교묘히 맞아 떨어져 만들어진 1회용 영웅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성근 같이 철저하게 정치와 영화계를 넘나들며 노골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국회의원 한번 하지도 않고 모 정당의 최고위원까지 올라간 위대한 영웅(?)도 있기는 하다.
그렇게 세상이 밝아지길 원하고 정의를 외치는 자들이 왜 내부 집안 연예계 문제에는 침묵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안의 문제를 꺼내면 자신의 이윤을 포기해야 하고, 영웅이 되면 이윤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무지한 대중들의 열렬한 환호성은 그들이 늘 원하는 극단적 이익의 ‘보증수표’다.
그들은 말한다. 표현의 자유를 말하고, 연예인의 정치적 개입 권리를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똑 같은 이유와 권리로 그들과 다른 말을 하면 왜 연예계에선 매장당할까? 단지 보수 국회의원을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보수라는 이유만으로 사라지는 연예인들이 있다.
가수 김흥국이나 개그맨 심현섭을 비롯해 많은 보수성향의 연예인들이 브라운관을 떠나게 됐다. 그러니 표현의 자유와 연예인의 정치적 개입권리를 연예계가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에, 필자는 서두에 그들의 모습에 역겨움을 느낀다고 한 것이다.
김제동은 그 난리를 치면서도 살아남고, 심현섭은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졌다. 표현의 자유와 정치개입에 대한 권리는 그저 핑계일 뿐이다. 한쪽의 말할 자유만이 존재하는 곳이 연예계를 넘어 전반적인 문화계의 현실이다. 그러니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자신이 행동하는 양심인양 하는 액션을 취하는 연예인들은 그걸 계기로 자신의 연예계 생명을 연장하려는 생명연장의 수단으로 삼을 뿐이라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답변이 될 것이다.
배우 김규리는 미국산 소고기 파동 때 ‘청산가리’ 발언을 하고 개명을 한 이후, 조연급에서 일약 주연급으로 치고 올라가 활동하고 있고, 배우 최민식은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시위에 앞장서며 문화훈장까지 반납했지만 명량의 이순신 장군이 되는 쾌거를 이뤘다. 한쪽에 서야만 살아남고, 다른 쪽에 서면 죽어야 하는 곳. 그곳에서 과연 정의를 외칠 수 있을까? 그런 곳에서 살아난 자들이 외치는 정의와 권리는 얼마나 역겨운 것인가?
그들의 말은 분명 다양한 의견 차원에서 인정되는 부분이지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래서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냥 그들만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직업의 특성상 그들은 대중들의 시선을 받아야 살아남기 때문이고, 문화권력의 비위를 맞춰야만 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잘못된 생존전략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이들은 국민들뿐이다. 각 방송사의 시청자 위원회의 역량을 늘리게 제안을 하고, 시청자들의 의견을 내보내는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이런 정치적 행동을 하는 연예인들의 문제를 제시해야 한다.
필자는 연예인이 공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누군가 선동용으로 활용하기에는 최적의 소모품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예전 스크린쿼터 시위의 첫째 날, 당시에 가장 핫하게 떠오르던 모 남자배우가 추운 날 피켓을 들고 있자, 여고생들이 “스크린쿼터가 뭔지 모르겠지만 000 오빠가 추위에 떨며 서 있으니까 우린 무조건 반대예요!”라며 격앙하던 모습의 기사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모습은 10년이 지난 지금, 국정화 반대 시위현장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외치는 여고생의 모습으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스크린쿼터가 뭔지 모르듯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여고생들은 모른다. 그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시청자 의견을 제시하면 방송국은 따를 수 밖에 없다.
방송국 역시 지금까지 보였던 무언의 일방적 동조를 끝내야 한다. 그들이 외치는 표현의 자유와 정치개입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이젠 어느 한쪽만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사라져야 하는 관행을 스스로 거부하고 좌우 양쪽의 이야기들이 모두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 밖으로 나간 연예인들은 그런 거창한 이야기를 말만 하기 전에 스스로 행동하길 바란다. 연예계 내부의 불평등을 없애려 노력하고,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연예인들이 사라지는 것에도 똑같은 논리로 분노하고 행동하라!
또한 자신들의 능력과 상관없이 높게 책정된 개런티로 인해 한국의 영화발전이 저해되고 있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배우들과 스탭들의 권리를 갈취하는 모순도 스스로 해결하시길 바란다. 물론 자신들의 이윤을 많은 부분 포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대들은 말하지 않았는가? 다같이 잘 살자고.
추신) 김제동 씨, 머리와 마음이 왜 두 개로 나누어져 있는지 아십니까? 마음으로는 뜨겁게 팬들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역사는 냉철한 머리로 차갑게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글/최공재 독립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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