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호흡곤란? 정치권 집안 싸움이 더 숨막혀
새누리는 '국회법 개정안', 새정치는 '혁신' 놓고 집안싸움 중
민생법안 산적한 상황에 또 다시 '식물국회'라는 오명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확산에 대다수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음에도 여야 모두 당내 계파 갈등에만 몰두하고 있어 정치권에 민생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본회의에서 그동안 케케묵어 있던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면서 여야 간 정쟁은 조금 사그라들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당시 합의 사항에 포함돼 있던 '국회법 개정안'이 여야는 물론, 여당 내에서 조차도 엄청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은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맞지 않으면 국회가 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 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로 한 법안이다. 야당이 협상 과정에서 이 법안을 끝까지 연계했고 여당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즉각 반발하며 당·청 갈등이 촉발됐다. 박 대통령은 1일 이에 대해 "정부의 기능이 마비될 우려가 있어서 걱정이 크다"며 "국회법 개정안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국정이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대통령 거부권 행사 의지를 내비친 것이었다.
이에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는 법 조항에 강제성이 없음을 재차 강조하며 '국회법 개정안은 입법부가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법안'이라는 청와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당·청이 어느 쪽 하나 양보 없이 계속해서 각자의 입장만을 고수하자 이번에는 새누리당 내 친박계 의원들이 가만 있지 않았다. 이들은 당·청 갈등의 원인을 청와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협상을 이끈 유승민 원내대표 탓으로 돌리며 사퇴를 요구했다.
친박계 의원들이 주도하는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은 2일 세미나를 열고 국회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특히 김진태·김용남·이장우 등의 의원은 이 자리에서 '유승민 퇴진론'에 잔뜩 힘을 실었다.
새누리당 집안 싸움은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김 대표가 "어긋난 말로 서로를 비방하는 것은 정치 불신을 자초하는 행위"라며 사실상 친박계를 겨냥하자 서청원 최고위원이 "다른 최고위원들의 발언에 대해 나무라는 식으로 회의를 이끌지 말기 바란다. 대단히 유감스럽다"라고 되받아친 것.
새누리당 핵심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이어진 비공개 회의에서도 신경전을 지속했고 김 대표가 "내가 오해라고 몇 번 말했나"라고 고성을 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 간 갈등에 이어 당청 갈등, 이에 따른 계파 갈등까지 여당 입장으로서는 더 이상 수습이 어려울 정도까지 사태가 진전된 것이다.
계파 갈등 속 워크숍 떠난 야당, 혁신 외치다 말았다는 비판
야당의 입장이라고 별반 다를 바 없다. 4·29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친노와 비노 간의 계파 갈등으로 혼란을 겪어 온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2일, 1박 2일 일정으로 경기도 양평 가나안농군학교에서 워크숍을 떠났다.
문재인 대표는 '끝장 토론'을 제안하며 "정말로 계급장 다 뗀다는 그런 마음으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나갈 때에는 우리가 일치된 모습을 보이자"고 말했다. 그러나 워크숍은 정작 '끝장'을 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는 평가다.
3일 비공개 원탁토론에서 의원들의 발언 시간에 제한을 둔 것이 화근이었다. 특히 박지원 의원은 토론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미친X들, 이게 뭐하자는 것이냐. 의원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100분토론 연습하는 것이냐"라고 지적했다. 이후 자신의 SNS에도 "무제한 끝장토론으로 멱살잡이 싸움이라도 해서 미래로 가도록 해야 했지만 원탁회의라는 미명으로 토론을 봉쇄했다"고 비판했다.
정세균 의원도 "나도 할 이야기가 있는데 할 기회가 없어 못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뿐만 아니라 계파를 초월한 여러 의원들도 "쇼하자는 거냐", "고등학생용 토론인가"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혁신하기 싫으면 말하지도 마라'가 이번 워크숍의 표어였지만, 정작 의원들이 말을 하고 싶어도 발언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아 제대로 된 혁신을 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로 1박 2일을 보내버린 것이다.
'공갈 막말'로 인해 최근 대중의 주목을 받았던 정청래 의원은 3일 오후에야 워크숍에 참석했다. 정 의원은 자신이 막말을 했던 주승용 의원에게 "미안함을 전달하는 게 당에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주 의원은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할 수 없다"며 정 의원과 악수했다.
그러나 이들은 겉으로는 화해를 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지만 속마음은 여전히 풀지 않았다는 평가다. 정 의원은 이날 당 윤리심판원에 재심을 신청하기도 했다.
또한 안철수, 김한길, 조경태 등 비노계 대표적 인사들이 행사에 아예 불참하며 시작부터 김이 샜다. 완전체가 아닌 상태에서의 치른 야당의 이번 행사는 '혁신을 외치다 만 워크숍'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메르스·경제활성화 법안 등 챙겨야 할 민생 산적, '식물 국회' 오명 벗어야
5월 임시국회는 공무원연금 개혁 정국에 꽉 막혀 한 동안 숨을 쉬지 못하다 29일 본회의에서야 ''취업후 학자금 상환특별법 개정안',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등 민생법안을 포함한 50여개의 법안이 통과됐다. 오는 8일 열릴 6월 임시국회에서도 처리해야 할 법안들은 산적하다.
정부·여당이 일찍부터 추진해 온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 △의료법 개정안 △관광진흥법 개정안 등은 아직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기업 투자나 일자리 창출이 늦어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지만 야당은 이를 '국민 해코지법'이라고 규정하며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가 집안 싸움에만 매달리는 있는 것은 국민의 정치 불신을 더 키우는 행위일 뿐이라는 지적이 팽배하다. 또한 메르스 확산으로 인해 5일 기준 사망자가 4명으로 증가하는 등 국민의 안전에 비상이 걸린 현 시점에 여야·정이 계속해서 엇박자만 내는 것은 올바른 모습이 아니라는 비판이다.
여야가 각각 당내 갈등을 해소하고 당·청이 불필요한 기싸움을 멈추지 않을 때까지 한동안 정치권은 '민생이 실종된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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