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사퇴]결과 지상주의가 일그러뜨린 '영원한 캡틴'
의리사커 논란, 카르텔과 결과 지상주의 폐해의 단면
신화적 존재 축구인 홍명보 명예에도 크나 큰 흠집
'영원한 캡틴'으로 불린 홍명보 감독은 한국축구사에서 신화적인 존재다.
그를 슈퍼스타로 발돋움시킨 무대가 바로 월드컵이다. 1990 이탈리아월드컵을 통해 처음 월드컵과 인연을 맺은 홍 감독은 선수시절 무려 4회나 월드컵에 출전했고,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때는 주장까지 역임하며 브론즈볼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도자로서의 행보도 탄탄대로였다. '홍명보의 아이들'을 이끌고 2009년 청소년월드컵 8강과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에 이어 2012 런던올림픽에서 일궈낸 사상 첫 동메달 획득은 홍명보 감독을 명실상부한 '전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홍 감독은 2013년 6월, 월드컵 최종예선을 이끈 최강희 전 감독의 후임으로 A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됐다. 우여곡절끝에 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했지만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한일월드컵과 런던올림픽의 영웅이자 카리스마의 대명사였던 홍 감독 명성에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다.
축구협회는 당초 홍명보 감독에게 2018년 러시아월드컵까지 임기를 보장하는 것을 염두에 뒀지만 홍 감독은 도전을 택하며 오히려 2년 임기를 제안했다. 그만큼 브라질월드컵 성적으로 평가받겠다는 자신감이 넘쳤고, 팬들도 홍명보 감독의 그런 당당한 모습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홍명보호는 오래가지 않아 곳곳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부임과 동시에 기성용의 SNS 파문이 터졌다. 기성용이 개인 SNS에서 최강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을 비방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며 유럽파-국내파 파벌논란과 기강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홍명보호 경기력도 도마에 올랐다. 첫 출전무대였던 동아시안컵에서는 2무1패, 페루와의 평가전에서도 0-0에 그치며 무승 행진에 시달렸다. 축구협회는 홍 감독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약체 아이티와의 평가전을 추진하는 등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라는 본래의 취지와 동떨어진 행보로 빈축을 샀다.
대표팀의 경기력이 좀처럼 오르지 않으면서 조급해진 홍명보 감독도 스스로 정한 '원칙'을 잃어버리고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10월 브라질-말리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SNS 파문으로 불러일으킨 기성용을 불러들이며 최강희 감독에 대한 공식사과를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일의 선후가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당사자 최 감독 입장을 배제한 무례한 결정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 1월 대표팀의 해외전지훈련에서의 부진과 박지성의 복귀 논란도 홍 감독의 대표팀 운영에 혼란을 부채질했다. 국내파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대표팀은 브라질-미국 전지훈련에서 세 차례의 평가전 동안 1승2패의 부진에 그쳤다. 비시즌이라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 국내파 선수들의 경쟁력만 비난의 도마에 오르면서 정작 홍명보 감독의 단조로운 전술과 선수활용에 대한 문제제기는 묻힌 면이 있다.
논란을 일으킨 박지성 복귀추진에 대해서도 홍명보 감독은 취임 당시에는 "박지성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박지성의 입장을 직접 내 귀로 들어야한다"며 말을 바꿨다. 결과적으로 박지성은 무릎부상으로 대표팀 복귀를 거절했고, 결국 올 시즌이 끝나고 선수은퇴를 선언했다.
홍명보호의 몰락을 초래한 결정적인 계기는 박주영의 발탁과 최종엔트리 구성에서의 ‘의리 논란’이었다. 박지성의 복귀가 무산된 홍명보 감독은 소속팀에서 좀처럼 출전하지 못하고 있던 박주영을 월드컵을 코앞에 둔 3월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전격적으로 발탁했다.
홍 감독 자신이 정한 원칙(소속팀에서의 꾸준한 활약)을 정면으로 깨는 상황이었다. 박주영은 그리스전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건재를 입증하는 듯했지만 이후로도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리스전에서 선보인 베스트11의 대부분이 월드컵 본선까지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때부터 홍명보 감독은 여론의 비판에 눈과 귀를 닫고 철저한 일방통행을 선택했다.
이미 최종엔트리가 발표되기 전부터 박주영 등 일부 해외파선수들이 부상을 이유로 조기 귀국해 대표팀의 특별 관리를 받는 '황제훈련' 논란을 일으켰다. 예상대로 홍감독은 최종엔트리에서 자신과 런던올림픽 시절 함께 호흡을 맞췄던 애제자들을 대거 선택한 반면, K리그나 소속팀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을 외면하며 논란은 더욱 악화됐다. 홍명보호를 수식하는 '의리사커'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된 계기다.
홍 감독은 자신이 원칙을 깬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결과로서 답하겠다"며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번 월드컵이었다. 홍 감독이 이끌었던 2014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은 1무2패(승점1)로 H조 최하위를 기록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한국이 거둔 최악의 성적이다. 또 2013년 6월 취임한 홍명보 감독은 1년 1개월 동안 월드컵가지 총 19차례의 A매치를 치러 5승4무10패(승률 26.3%)를 기록했는데 이 또한 역대 대표팀 감독 중 가장 낮은 승률이었다.
월드컵 탈락 이후 귀국 기자회견에서 홍명보 감독과 대표팀에서 쏟아진 엿세례는 그동안 '뒤틀린 절차와 과정'에 대하여 누적된 국민들의 분노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홍 감독은 당초 사퇴가 예상되었으나 정작 귀국 기자회견에서 거취를 유보하며 궁금증을 자아냈다. 축구협회는 월드컵의 실패에도 아시안컵까지 홍명보 감독의 임기를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더 큰 반발을 초래했다.
하지만 홍 감독의 유임 결정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가뜩이나 축구협회의 책임회피와 면죄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에서 또 터져 나온 홍 감독의 토지 매입논란과 대표팀 음주가무 회식 파동 등은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홍 감독은 결국 자진사퇴-유임-사퇴로 일주일이나 두 번이나 말을 바꾸는 촌극을 빚으며 여론에 떠밀려 대표팀 지휘봉을 결국 내려놓았다. 공식적으로는 자진사퇴지만 결국 국민들의 손에 의하여 경질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홍 감독 본인도 리더로서 잦은 말 바꾸기와 모호한 태도로 선수시절의 신뢰도를 깎아먹은 것은 축구감독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홍 감독이 초래한 의리사커 논란은 축구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인맥-학연-지연에 의한 카르텔,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결과 지상주의'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홍명보호의 몰락은 지난 4년간 조광래-최강희호로 이어져온 한국축구의 '브라질월드컵 프로젝트'가 총체적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4년간 3명의 국내파 감독이 교체되는 혼란과 축구협회의 행정난맥상 속에 대표팀 운영은 표류했고 한국축구의 경쟁력은 뒷걸음질 쳤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 축구협회의 국내 지도자 육성계획에 따라 '황태자'로 키웠던홍명보 감독은 한국축구의 영웅에서 순식간에 역적으로 몰리며 승승장구하던 축구인생에 큰 흠집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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