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임설' 읍참마속 없는 한국축구, 과정 넘더니 결과도?
충고 귀담아 듣지 않고 자신만의 전술에 빠져 자멸한 케이스
‘의리사커’ 논란과 결과에 대한 책임 없다면 진짜 죽은 축구
역사소설 '삼국지연의'에는 유명한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일화가 나온다.
제갈량은 유비의 충고를 무시하고 마속에게 전략적 요충지를 맡겼다가 참혹한 패배를 맛보며 북벌 전체가 좌절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마속은 분명 재능 있는 인물이었지만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역량에 비해 너무 큰일을 맡았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한국축구와 홍명보 감독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홍명보 감독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톱스타 출신이자, 축구협회의 '황태자'로 불릴 만큼 축구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고속 성장한 인물이다. 그러나 한국축구는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그 과실이 여물기도 전에 섣불리 열매를 따려다가 농사를 망친 인상을 줬다. A대표팀 경험이 일천한 홍 감독을 2012 런던올림픽 성과만 믿고 차원이 다른 월드컵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지휘봉을 맡겼다.
그러나 결국 홍 감독을 택한 것은 패착이 됐다. 대표팀은 1무2패로 조별리그 최하위에 그치며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 가장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박주영, 윤석영, 김보경, 지동원, 정성룡 등 소속팀에서도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던 '홍명보의 아이들'에 집착하며 '의리사커' 논란을 낳으면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친 것은 마속이 자신만의 전술 이론에 집착해 제갈량의 충고를 무시하고 산 위에 진을 쳤다가 오히려 고립돼 자멸을 초래한 장면과 흡사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실패 뒤 책임을 지는 자세다. 마속은 가정 전투를 앞두고 제갈량에게 '군령장'을 써놓고 출정했다. 임무에 소홀하거나 실패했을 때 책임을 지겠다는 서약이다. 가정 전투에서 자신의 잘못으로 북벌이 실패하자 마속은 스스로의 몸을 결박하고 제갈량 앞에 나와 죄를 청한다.
홍명보 감독과 축구협회의 행보는 이와 정반대다. 홍 감독은 불과 1년 전 취임 기자회견 당시 짧은 준비기간에 대한 우려에 대해 "변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표팀 운영과정에서 빚어진 잦은 잡음에 관해서도 "결과로서 말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해왔다.
하지만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 후 3일 만에 선수단과 함께 귀국한 홍명보 감독의 태도는 책임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자신의 향후 거취에 대하여 "비행기를 장시간 타고와 피곤해서 지금 말하기 어렵다"고 답변을 피했다.
"자신이 부족했다"고 말했지만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명도 없었다. 오히려 월드컵을 통한 젊은 선수들의 경험을 얘기하는 등 형식적인 유감표시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월드컵 탈락으로 악화된 여론의 눈치를 살피던 축구협회의 대응도 답답하다.
홍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월드컵을 치렀고, 조만간 아시안컵도 다가온다는 명분으로 홍 감독 유임설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이는 곧 브라질월드컵의 결과를 부정하고 면죄부를 주려는 발상에 불과하다.
홍 감독에 대한 검증은 이미 끝났다. 취임 1년간 각종 평가전과 월드컵 포함 5승4무10패(승률 26.3%) 18득점 28실점이 홍명보호가 남긴 성적표다. 다른 국내파 감독이나 혹은 외국인 감독이었다면 이런 성적표에도 인내할 수 있을까.
홍 감독이 한국축구를 위해 쌓아온 경험과 재능은 무시할 수 없다. 언젠가 다시 한국축구를 위하여 유용하게 쓰일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대표팀 감독으로서 자신이 해놓은 결과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우선이다. 이는 홍 감독을 선임한 축구협회도 마찬가지다. 선택이 아니라 의무의 문제이기도 하다.
홍명보 감독이 월드컵을 망친 가진 큰 이유는 '의리'였다. 지금 축구협회가 홍명보를 지키려고 하는 것도 잘못된 의리의 재탕에 불과하다. 홍명보를 지켜냄으로서 자신들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은폐하려는 축구협회의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은 홍명보 감독은 결코 '희생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홍 감독을 문책하는 것만이 이번 사태 해결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홍 감독을 유임시키자는 것은 아예 시작도 안하겠다는 발상과 마찬가지다. 임기보장이나 아시안컵을 핑계로 홍 감독을 지켜야한다는 주장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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