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노 직접 낸 소송에서 친부와의 혈연관계 확인
한국인 아버지 유전자 검사 거부하는 등 우여곡절 많아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이른바 ‘코피노(Kopino)’가 국내 법원에서 친부와의 혈연관계를 확인받았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가정법원 가사2단독 권양희 판사는 필리핀에 사는 A군과 B군이 한국에 사는 C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A군과 B군은 C씨의 친생자임을 인지한다”고 판결했다. 코피노가 직접 국내 법원에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해서 이긴 첫 사례다.
사업가 C씨는 한국에서 결혼해 자녀들을 낳았으나 필리핀으로 건너가 회사를 운영하다가 현지 여성 D씨를 만나 동거했다. 둘 사이에서 A군과 B군이 태어났다.
하지만 C씨는 이들을 뒤로하고 10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C씨는 다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으나 이후 연락이 끊겼다.
D씨는 C씨의 이름과 사진만 갖고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불법 체류 위기에서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를 통해 만난 변호사 도움을 받아 지난 2012년 12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군과 B군, C씨의 유전자 검사를 관련 기관에 보냈다. 이 과정에서 C씨가 유전자 검사를 계속 거부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검사결과 C씨와의 혈연관계가 객관적으로 확인됐다.
권 판사는 필리핀에서 작성된 아이들 출생증명서에 C씨가 아버지로 기재된 점과 유전자 검사를 통해 혈연관계가 인정된 점 등을 바탕으로 지난달 30일 A군과 B군의 친자확인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에 D씨는 C씨에게 정당하게 양육비 등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D씨를 무료 변론한 조동식 변호사는 “단순히 금전 취득을 위해 소송을 낸 것은 아니다”며 “A군과 B군을 C씨 호적에 편입시켜 한국에서 키우고 싶어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판결 이후 비뚤어진 한국 남성의 성문화와 책임의식으로 필리핀에 존재하는 다른 코피노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