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분노' F세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다
최다인구층이자 잊혀진 40대 중후반 세대
'국가가 내 편이 아니다' 두번째 충격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이미 온갖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정부를 질타하는 것을 넘어 퇴진까지 요구하는 등 비난이 속출하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이 같은 움직임은 그동안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던 여론 외에도 이른바 ‘중도층’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더욱이 앞서 27일 청와대 게시판에 게재된 ‘당신이 대통령이어선 안 되는 이유’(현재는 삭제)라는 글이 다음 아고라 등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을 통해 삽시간에 퍼지면서 파장은 커지고 있다.
심지어 해당 글이 청와대 게시판에 공개된 이후 수십 만 명의 네티즌들이 청와대 게시판 접속을 시도, 한때 사이트가 마비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또한, 통상 ‘익명성’이 보장된 일반 인터넷 공간과 달리 ‘실명’으로 글을 작성해야하는 청와대 게시판에서 이 같은 정부 비판 글이 쇄도하는 점도 주목받는 대목이다.
실제로 앞서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직후부터 이번 사고와 관련, 정부책임론을 지적하는 글들은 끊임없이 양산돼 왔다. 물론, 각 사이트의 특성과 사용자들의 성향에 따라 게시물의 성격이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계속해서 급증하는 양상이다.
한 포털사이트 관계자는 29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세월호 사태 전후 네티즌들의 사이트 접속 횟수나 댓글, 관련 글 게시물 정도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는 제공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해당 사건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관련 뉴스나 댓글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허위 글이나 악성댓글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현재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국내 대표 포털사이트 내 존재하는 각종 ‘토론게시판’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난상토론이 매일같이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세월호 사건 발생 초기 해당 선박 선장과 선박회사에 대한 비난,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는 글들이 주를 이뤘던 것과는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에 대한 비판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박성미 영화감독이 쓴 ‘당신이 대통령이어선 안 되는 이유’이란 글이 27일 청와대 게시판에 게재된 지 하루만에 52만 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읽는 등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국정홍보비서관실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 홈피는 평소 일일 접속자 수가 7000명 정도 된다. 하지만 지금은 2~3배에 이르고, 동시 접속자 수도 많아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27일 당시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는 ‘청와대’가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해당 글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이와 유사한 글들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동시에 해당 글들을 반박하는 여론의 움직임도 점차 속도를 내면서 주요 인터넷 토론 공간마다 ‘정부 사퇴론’과 관련, 찬반 식 난상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가령, 일부는 청와대 게시판이나 다음 아고라에 ‘당신이 대통령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통해 반박에 반박을 가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세월호 사태로 인한 사회적 불안이 자칫 우리 사회 내 깊숙이 파고든 ‘양극화 현상’을 더욱 부축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적잖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 48% 마음 얻지 못했다”...“반정부 선동은 안돼”
여론분석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박근혜정부 출범을 반기지 않았던 48%의 국민들의 내재된 불만이 이번 사고를 통해 여과 없이 표출됐다고 분석하면서 일정 부분 정부책임론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미현 알앤서치 소장은 “이번 사고와 관련 정부퇴진 움직임까지 확산된 것은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당시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48%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는 방증”이라며 “가령, 이번 사고 직전까지 국정지지율이 70%가 넘는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실상은 달랐던 것 같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이어 “특히 현재 세월호 사고로 온 국민이 아파하고, 분노하고 있는데 그 핵심에는 ‘F세대’가 있다”며 “세월호 피해자의 유족 대부분이 고등학생 자식을 잃은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의 F세대”라고 주장했다.
F세대란 대한민국 전체 인구 구성비의 16%를 차지하고 있는 최다 인구층(Formidable member)이면서 한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잊혀진(Forgotten)세대로, 대개 나이 마흔 전후(1966~1974년)에 이른 세대를 의미한다.
이들은 대개 바로 전 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와는 달리 한 때 X세대, 신세대 등으로 불리는 등 개인의 욕구와 만족을 우선시 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반면, IMF발 취업 재수생의 원조로 저축보다 빚이 많은 하우스푸어의 고통을 처음으로 겪은 세대기도 하다.
김 소장은 “이들 대개 자식을 잃었다는 슬픔에 공감하는 동시에 무엇보다 ‘국가가 내편이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함께 함축성장을 겪었지만 이전 세대인 ‘베이비부머’와 달리 F세대들 상당수가 경제적 특혜를 누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들에게 내재된 국가에 대한 불만이 이번 사고에서 나타난 정부의 허술한 대처모습이 겹쳐지면서 ‘역시 국가는 내 편이 되지 못했다’는 분노가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의 분노가 전 세대에 걸쳐 공감을 얻으면서 이 같은 정부사퇴 여론이 확산되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더욱이 자의식이 강한 F세대에게 일부 고위관료들이 보여준 부적절한 언행도 이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며 “가령,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막내아들의 ‘국민이 미개하다’ 발언을 제대로 질타하지 않은 집권 여당의 태도도 분노를 키웠다. 이런 총체적인 사회 지도층들과 정부, 여당에 대한 불만이 정권태진 요구의 도화선이 된 것 같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내각 쇄신과 정부의 시스템 재정비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의 초동대처 미흡을 지적하면서도 대선 이후 잠적했던 일부 ‘반 박근혜’ 세력이 이번 사태를 맞아 반정부 정치행보를 보이는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소장은 “물론, 이번 일로 정부책임론은 지적될 수 있지만 자칫 반정부 세력의 선동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며 “특히, 합리적인 비판을 넘어 무조건적으로 ‘대통령 하야’ ‘정부 사퇴’를 주장하는 것은 더 큰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홍 소장은 “과거 광우병 파동, 효순이·미선이 사태에서도 문제의 본질을 떠나 일부 이를 사회적 갈등으로 증폭시킨 반정부 세력이 존재했다”며 “이런 세력들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사과를 한다고 해도 계속해서 비난만 쏟아낼 공산이 크다. 비난을 위한 비난은 위험하다”고 전했다.
홍 소장의 지적대로 박 대통령은 29일 세월호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를 전했지만 그 방식과 내용에 대한 일부 여론의 비난은 식지 않고 있다.
아울러 그는 “이제는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보다는 사태 수습에 대한 구체적인 사회적 합의가 모색돼야 되는 단계”라며 “정부 역시 이번 사태를 발판으로 다시는 이런 참사가 되풀이 되지 못하도록 대대적인 시스템 혁신을 통해 사회적 분열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