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역들 "과거보다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 폭행서 자유롭지 못해"
새벽에도 깨워 암호 암기 시키고 징계 받더라도 감봉 수준 문제"
최근 잇따라 군부대 내에서 벌어진 성희롱 등 각종 폭행사고가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를 바라보는 여론의 질타도 거세지는 실정이다.
6일 경기도 연천지역에서 한 20대 병사가 선임병에게 맞고 쓰러진 후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어 7일에도 여군들을 자신의 공관 등에 불러 술 접대를 시켰다는 사단장이 보직 해임한 사실까지 드러나 충격을 줬다.
심지어 지난해 12월에는 강원도 육군 모 부대에 근무하는 A소령이 약혼자가 있는 여군 대위(28)에게 10여개월에 걸쳐 성적 모욕을 주거나 부절절한 관계를 요구, 끝내 해당 여군 대위가 A소령을 비난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등 군대 내 심각한 폭행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2년 3월까지 접수된 군 인권 침해 관련 진정 사건은 405건으로 이 중 폭력·가혹행위가 30.1%(122건)로 가장 많았고, 생명권 침해가 13.9%(56건), 언어폭력이 11.1%(45건)로 뒤를 이었다.
이처럼 군대 내 폭행실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졌지만 아직까지 근절되지 않은 배경에는 폭행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일각에서는 폭행 피해자가 폭행사실을 폭로할 시 되레 불이익을 받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군 기강이 세기로 유명한 전투경찰(현재 의경) 출신의 박모씨(34)는 8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군의 폭행문제가 과거보다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의경들 상당수가 선임의 폭행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안다”며 “나 역시 의경 생활 내내 수시로 선임에게 각종 물리적, 심적 폭행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박 씨는 이어 “물론, 의경의 경우 대규모 시위 등을 진압하는데 투입되는 만큼 자칫 방심할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매사 긴장감을 유지하고자 기강을 세게 잡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기강’이라는 명분 아래 별다른 이유 없이도 후임들을 구타하는 실태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회식 때마다 술 취한 선임들이 후임 병사들의 뺨을 때리는 것도 부지기수였을 뿐만 아니라 갑자기 새벽에도 깨워서 암호암기를 시키고, 틀릴 경우 무작위하게 폭행한 적도 더러 있었다”며 “심지어 일부 악질 선임은 자기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후임들에게 이유 없이 폭언과 폭행을 행사하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일부 후임들이 선임의 폭행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은폐시키거나 오히려 더 큰 보복을 받기도 했다는 것이 박 씨의 주장이다.
그는 “가령, 폭행문제가 드러나면 대체로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다른 지역으로 전출되는데 이때 피해자들이 받는 피해가 더 크다”며 “본인 기수보다 낮은 기수에 병합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이미 소문이 난 상태라 새로운 곳에서도 무시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전했다.
박 씨는 또 “오죽했으면 이런 사태를 보고 일부 선임들은 ‘덜 맞아서 신고한 것’이라며 ‘제대로 맞으면 무서워서 신고도 못한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며 “선임에게 당한 후임들 역시 일종의 보상심리로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놓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육군 대위 출신의 김모씨(42)도 “군대에서 제1의 법칙이 ‘상명하복’인데 이것이 우리나라의 왜곡된 위계질서 문화가 접목되면서 군대 내 폭행사태가 빚어지는 것 같다”며 “다행히 요즘 젊음 병사들 사이 위계질서 풍토가 사그라지고 의식수준도 향상되면서 과거처럼 군대 내 상습적인 폭행은 줄었지만 일부 잔재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또 “특히, 폐쇄적인 집단인 군의 특성상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최대한 내부에서 처리하려는 관습이 짙다”며 “그나마 지금은 각종 SNS나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피해사례가 종종 알려지고 있지만 대부분 숨기거나 은폐시키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실제로 폭행사고가 발생해도 대개 중징계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 같다”고 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유기준 새누리당 의원이 2012년 국방부 검찰단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군에서 구타(폭행)로 형사 입건된 사건은 1526건에 달했지만 이중 1051건(66.2%)이 불기소 처분돼 기소율이 절반에도 못 미친 바 있다.
이에 대해 송현민 군 인권센터 간사는 “군부대 내 폭력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징계조치를 받더라도 대부분 감봉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기 때문에 일반 병사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오히려 일부 직업 군인들 중 추후 진급 문제 등으로 피해를 당하고도 참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송 간사는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식개선이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명확한 처벌규정과 군대 법 제정 논의도 도모돼야 한다”며 “아직도 군대법상 성폭력 문제 등 폭행문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법조항이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개선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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