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내부에서도 "국민 동의 안할 의협의 투쟁일뿐"
의협 기득권이 결정한 일에 얼마나 참여할지 의문"
병원협회도 전공의도 '글세...' 정부 엄정 대처 방침
"의사들이 어렵다지만, 본인이 운영하는 개인병원이 안 되는 것을 '나라 탓'해서야 되겠나."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오는 10일과 24~29일 집단휴진에 나선다는 강경 투쟁방안을 내놓자 '밥그릇 챙기기'가 도를 넘었다는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서울 모 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 모씨는 4일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이번 파업은 준비도 안 된 의협의 투쟁일 뿐"이라며 "의협이 의사들을 사회적 책임을 내팽개치고 밥그릇챙기는 모습으로 비치도록 하고 있다. 전략도 없이 정부와 싸우겠다는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김 씨는 "명분도 없어서 국민의 동의와 여론을 얻을 수 없는 파업이다. 의협 기득권이 결정한 일에 의사들이 얼마나 참여할지 의문"이라며 "파업에 진정으로 참여하고 싶어서 참여하는 의사들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앞서 의협이 지난달 21일부터 28일까지 진행한 총파업 찬반투표에서 76.7%의 찬성률로 총파업을 결정했지만, 현직 의사들의 '진정성'을 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의협의 파업명분은 표면적으로 '원격의료 반대'와 '의료 영리화 저지'이지만, 속내는 '건강보험 수가(의사들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진료비) 인상'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 파업은 지난 1월 의료계와 정부 간 의료발전협의회가 도출한 '원격의료 법제화 추진'이라는 합의를 의사들이 스스로 무력화시켰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의사출신 한 인사는 "정부와의 합의를 스스로 깨고 파업을 하는데, '의사들이 파업하려고 작심을 했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나. 국민들 앞에 명분을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파업을 해도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명분없는 파업'에 동력 상실…'여론전 해보자' 24일부터 전면파업 돌입
일각에서 우려하는 '의료대란'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종훈 고려대 의대교수는 "집단휴진에 참여하는 의사들이 많지 않은데다, 대형병원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응급환자가 의사의 진료를 못 받거나 수술예정인 환자가 수술을 못 받는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3일 "노환규 의협회장이 투쟁위원장을 맡아 3월 10일 전일 파업에 돌입한다"면서도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일부 필수 진료인력을 제외한 인력이 파업에 참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협은 10일 하루 집단휴진 이후 11일부터 23일까지 준법진료와 준법근무를 실시한 다음 다시 24일부터 29일까지 6일 간 전면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의협은 6일간의 전면파업 이후 투쟁계획은 추후에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여론을 지켜본 뒤 투쟁 방향과 강도를 결정할 것"이라는 '파업 전략'이다. 의협 한 관계자도 "상황을 보고 투쟁의 전술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 의협 송형곤 대변인은 "이번 투쟁은 위험한 의료제도를 막아내고 비정상적인 건강보험제도를 정상화시키려는 정의로운 투쟁"이라며 "불의한 제도에 맞서 싸우는 의로운 주장의 힘을 믿자"고 총력투쟁을 다짐했다.
이와 함께 의협은 5일까지 행동지침과 투쟁 관련 안내문, 정부의 압박 등에 대한 대처방안을 회원들에게 전달하고 투쟁 참여를 호소할 예정이다.
실제 파업 참여율은 떨어질 듯 병원협회도 전공의도 '글세...'
하지만 '밥그릇 챙기기'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파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투쟁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더욱이 집단휴진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에 의료계 내에서도 "파업에 참여하기 부담스럽고,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실제 집단휴진으로 이어질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병원협회의 경우 의협이 주장하는 병원영리화의 일환인 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 공식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의협 내부에서도 "병원협회 없는 파업을 의사협회 파업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이 나온다.
파업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개원의들 역시 '경제적 부담', '여론악화' 등을 우려고 하고 있다. 병원에 소속된 전공의들 역시 병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2년 포괄수가제 반대 집단휴진 당시 의원급 80%가 휴진에 찬성했지만, 실제 참여한 비율은 30% 안팎에 불과했다.
앞서 지난 2000년 대규모 파업 당시에는 '의약분업'이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었지만, 이번 사안에서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 파업동력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편 의협은 지난 21일부터 28일까지 진행한 총파업 찬반투표에서 76.7%의 찬성률로 총파업을 결정했다. 투쟁위원회 위원장은 노환규 의협회장이 맡고, 투쟁위원회 위원으로는 김경수(부산시의사회장 겸 의협 부회장), 송후빈(충청남도의사회장), 정영기(병원의사협의회장), 송명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 방상혁(의협 기획이사), 김연희(의협 법제자문위원, 변호사) 등 7인으로 구성됐다.
정부 "불법 집단휴진에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
정부의 '엄정대처 방침'과 정치권의 반발도 의사들이 집단휴진 참여를 머뭇거리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여야 정치권 모두 "국민이 외면하는 파업은 의료계의 명예와 신뢰만 실추시키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 이기주의라는 국민적 비판을 면치 못할 것(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 "의협의 총파업으로 국민의 건강권이 침해받는 상황이 결코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박수현 민주당 원내대변)"라며 의협의 파업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집단휴진에 참여한 개인병원의 경우 정부로부터 각종 징계 등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이번 파업이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휴진에 참여하는 의료기관 등에 대해서는 엄중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확고히 했다. 정부는 이번 파업을 "명분 없는 집단행동이며 국민건강을 볼모로 한 불법파업"이라고 규정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3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월례조회에서 "정부가 의료발전협의회를 통해 의협과 협의결과를 공동으로 발표했음에도 의협이 이를 뒤집고 집단휴진을 강행키로 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불법 집단휴진을 강행하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경고했다.
복지부는 앞서 의사협회의 강공모드에 대해 "집단휴진을 강행하는 경우, 어떠한 요구도 응하지 않을 것이고, 그간 협의결과는 의료계 내에서 거부된 것으로 간주하여 무효화될 것"이라며 "불법적인 집단휴진 결정을 즉각 철회하고, 보건복지부와 논의하여 마련한 협의결과를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이행해 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미 공정거래위원회는 파업이 시작되면 집단행동 주도자에 대해 공정거래법 제26조(사업자단체 금지행위)를 위반한 행위로 간주하겠다는 방침이다. 김학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이날 "의협의 집단휴진 결정의 공정법 위반 여부에 대해 법리적 검토에 착수했다"며 "집단휴진 결정의 구속성이 어느 정도인지 등을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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