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의 궤변 "대변인이 성범죄자면 당의 행위인가"
정당해산심판 변론서 이석기 재판결과와 고리끊기 주력
“헌법 질서를 파괴하려는 정당의 위협을 예방하는 조치 필요하다.”
“위법행동을 한 사람이 있다면 개인을 처벌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및 정당활동금지 가처분신청’ 2차 변론에서 청구인 정부 측과 피청구인 통진당 측이 또 한번 격돌했다.
논쟁의 핵심은 ‘통진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느냐’ 여부였다. 헌법 제8조 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전날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이석기 통진당 의원에게 법원이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하면서 ‘내란음모→통진당 해산’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어떻게 끊느냐, 어떻게 연결하느냐’를 둘러싼 치열한 법리싸움을 벌어졌다.
청구인측은 RO 활동이 통진당의 위헌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한 반면, 피청구인측은 이 의원의 RO사건을 ‘개인 일탈’로 꼬리자르기를 시도했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위협 현실화 되면..."vs"남북 대치상황에 이념공세 악용되면..."
양측은 변론을 통해 RO의 목적과 행동이 통진당 내에서 머리였느냐 꼬리였느냐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구체적으로는 RO가 계획한 것으로 알려진 ‘폭력혁명’ 등 헌법질서 파괴 행위에 대한 ‘사전 사고예방’과 ‘향후 위험성 검토’로 의견이 갈렸다.
청구인측 참고인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정당해산제도는 헌법 질서를 파괴하려는 정당의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적 조치”라며 “구체적 위험성만 가지고 (정당해산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은 해산심판제도를 무력화시키는 조치이고, 목적이나 활동 중 하나만이라도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난다면 정당해산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교수는 “남북 대치하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에서 위협이 현실화된다면 정당해산 심판만으로는 (민주주의 파괴, 폭력혁명 등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측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진보당의 위헌성을 판단하려면 숨겨진 목적까지 확인하고 목적과 활동을 연계해 판단해야 한다”면서 “공식적 의사결정을 통하지 않았더라도 당원 여럿이서 정당 성격에 부합하는 활동을 했다면 목적을 고려해 활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피청구인측 참고인 정태호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정당해산제도는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고안됐지만 악용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며 “예방적 차원의 해산까지 가능하게 한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진보 정당에 대해 툭하면 이념 공세를 펼쳐 해산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반박했다.
정 교수는 이어 “헌재에 의한 정당해산심판은 양날을 지닌 날카로운 무기여서 엄격한 절차적 기준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같은측 송기춘 전북대 로스쿨 교수는 “소수의 정치적 사상을 대변하는 정당을 해산해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것에 대한 관용과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원칙에 따라 심리해야 한다”며 “정당해산제도는 민주주의를 그 적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반면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 말했다.
R0가 통진당 활동인가? "조직적 연계 따져봐야"vs"당 대변인 범죄가 당의 행위냐"
장 교수는 “어제 1심 판결이 나왔지만 내란음모를 한 RO가 진보당과 조직적으로 연계돼 있는지, 진보당 활동으로 귀속되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라며 “진보당의 전체적 흐름이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강령에 따른 통진당 활동이 사실상 계급투쟁적 성격을 가진다면 위헌성을 판단할 수 있다”면서 “강령의 표면적 의미뿐만 아니라 숨겨진 목적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발언과 활동 등 포함한 통진당의 움직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숨겨진 목적’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도 통진당이 이 의원의 당원 자격도 정지하지 않고 오히려 지원한 점을 위헌판단의 핵심 근거로 들었다. 김 교수는 이어 “통진당의 강령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사회’를 추구하며 계급주의를 지향해 사회주의적 색채를 지니고 있다”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등을 명시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 교수는 “적기가만 불러도 처벌할 수 있는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과 국정원 체계가 갖춰진 곳에서 일부 개별 당원이 아닌 당 전체가 은밀히 북한을 추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헌재가 진보당 해산을 결정하면 사상공세가 너무 쉽게 먹히는 우리 현실에서 진보 정당의 운신 폭이 그만큼 더 좁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공개변론에 앞서 피청구인측 이재화 변호사는 헌재 기자실을 찾아 “예를 들어 정당 대변인이 블로그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올린 거나 성범죄 등 범죄행위를 한 것을 당의 행위로 보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RO와 통진당의 연계를 부정했다. 이 변호사는 “어제 이 의원에 대한 1심 판결과 통진당에 대한 해산여부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며 “판결문에도 당과 관련이 있다는 문장이 한 줄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통진당이 (이 의원의 RO활동 등을) 비호한 것 아니냐고 하는데, 통진당은 이 의원의 활동을 옹호한 적이 없다”며 “이런 논리대로라면,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과 관련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새누리당이 비호했는데, 새누리당이 스스로 해산할 것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종북세력 5천만 국민의 심판 받아라"vs"그들만의 세상 영원히 이어가려는 의도"
앞서 이날 헌재 앞에는 “통진당 해산하라”, “이석기 사형하라”, “종북정치 박살내라”는 등 보수단체의 구호가 울렸다. 이들은 공개변론이 열리기 2시간 전부터 “통진당 해산심판 즉각 단행하라”, “종북정치세력 명명백백하게 발본색원하고, 5천만 국민의 심판을 받아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들은 이 의원의 얼굴에 ‘X’표시가 그려진 푯말도 들어올렸다.
어버이연합과 서울시안보단체협의회 등 보수단체 회원 200여명은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태극기와 애국가를 부정하는 세력을 놔둬서 되겠는가”라며 “국회까지 진출한 내란음모 종북세력을 몰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 공안탄압규탄대책위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의원 내란음모 사건 판결은 권력에 굴종한 정치판결”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에 맞춘 판결을 하려는 정치적 고려가 개입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법정에는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통진당 지도부가 찾아와 굳은 표정으로 변론을 참관했다. 이 대표는 변론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의 뜻에 반하는 자에겐 언제든 반역의 올가미를 씌울 수 있다며 위협하는 이유는 민주와 진보세력을 뿌리부터 잘라내 그들만의 세상을 영원히 이어가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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