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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신당이 사람 빼간다는 127석의 수권 정당


입력 2014.02.10 15:16 수정 2014.02.10 15:52        이슬기 기자

<기자수첩>제 집안 든든한데 짓지도 않은 공터로 나갈까

박지원 민주당 의원.ⓒ데일리안
안철수 신당이 17일 창당 발기인 대회를 앞두고 본격 행보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요즘 민주당에서 끊이지 않고 들리는 ‘소리’가 있다. 앓는 소리다.

민요 가락에는 메기는 소리와 받는 소리가 있다. 한 사람의 선창자가 다양한 내용으로 소리를 메기면, 그 뒤에는 대개 똑같은 구절의 받는 소리가 따라오는 형식이다.

최근 메기는 소리의 선창자로 나서 ‘앓는 소리’를 뽑아내는 이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다.

박 의원은 지난 6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의 ‘안철수 신당행’을 거론하며 “안철수 신당이 호남뿐 아니라 특정지역에서 민주당 소속 광역의원 20여명을 빼가려 한다더라”고 말했다.

그는 호남에서 ‘안철수 태풍’이 불었지만 이미 가라앉는 단계라고 꼬집으면서 “민주당에서 사람을 빼가는 것이 과연 국민에게 참신성을 줄 수 있겠느냐. 민주당 의원 빼가기에 성공할 뿐, 결국 국민이 바라는 새정치에는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박 의원은 “호남에서 실패한 인사들, 공천에 낙천한 세력들을 데리고서 신당이라고 선을 보이니 호남인들이 ‘전부 민주당 사람들 아니냐’, ‘거기에 무슨 참신성이 있느냐’고 한다”라며 이는 곧 안철수 신당 지지도 하락의 이유라고 주장했다.

‘카더라’로 앓는 소리하는 127석의 수권정당

문제는 정치 거물 박 의원이, 그리고 민주당이 간과한 두 가지다.

박 의원은 이날 인터뷰에서 대뜸 “(안철수 신당이) 사람 빼가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볼멘소리를 시작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카더라’임을 자인한 것이다. 그러면서 마치 확인된 사실인 양 “결국 새정치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언했다.

정치에서 공격과 방어는 필수다. 상대방의 구태를 정확히 저격하고 사실이라는 총알을 장착,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야말로 기술이고 전략이다.

그런데 ‘안철수 저격수’의 이번 총알은, 127석 수권정당의 거물 정치인의 그것 치고는 너무 빈약했다. 그 말이 나온 자리는 사석이 아닌, 공식적인 언론 인터뷰였다. 입증도 채 못한 소문을 들고 나와서 아직 창당도 안한 세력에 앓는 소리를 하는 건, 제1야당으로서 한마디로 창피한 작태다.

오죽하면 바로 다음날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한 김성식 새정추 위원장이 ‘거짓말 하지 말라’든지 ‘증거를 대라’ 등의 반격을 하기는커녕 “빼가고 말고 할 역량조차 안 된다. 우린 당도 만들지도 못했다”고 토로하겠나.

이에 대해 안 의원 측 윤태곤 비서관도 “사람을 빼가든 서명을 받든 다 떠나서 여긴 아직 창당도 안한 상황인 걸 모르느냐”며 헛웃음을 지었다.

‘제 집안 든든한데 건축도 안 한 공터로 나갈까’

이 뿐 아니다. 더 심각한 건 자존심의 문제다.

새정추 한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박 의원이 거론한 광역의원 20여명은 이른 시일 내에 기자회견을 열고 안철수 신당행을 공식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민주당의 주장대로 안철수 신당이 사람 빼가기를 시도했다 치자.

제 집안 사정은 당사자가 제일 잘 안다. 집안의 현재는 물론 더 나아가 미래를 가장 현실적으로 점쳐볼 수 있는 이 역시 집 안 사람이다.

대형 아파트에 사는 당사자가 판단할 때, 제 집안에 얼마나 비전이 없으면 아직 집도 안 지은 공터로 대거 옮겨가겠나. 공터로부터의 손짓에 제 집 식구가 뛰어갔다고 자꾸 들춰내면서, 제1야당으로서의 자존심은 어디에 던져버렸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박 의원은 “민주당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빠져나간 것”이라며 아무렇지 않은 듯 해명했다. 민주당 서울시당의 한 관계자는 “공천 못 받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거다. 별로 신경 안 쓴다”라며 “누구는 겉절이라고 부르더라”고 조소를 보였다.

앞서 박 의원도 인용했던 대로 ‘정치는 생물’이라 했다. 당 옮기기를 무조건 옳다 하려는 게 아니다. 정치인이 자신의 판단 하에 더 비전이 있으리라 생각되는 세력에 합세하는 건 무조건 손가락질 할 사안은 아니라는 거다.

한 때 소신과 전략을 공유했던 동료 의원에게 ‘겉절이였다’며 손가락질 하는 지금의 민주당은, 수권정당으로서 스스로 격 떨어뜨리기에 앞장서고 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민주당은 ‘공천 탈락자 이삭줍기’라며 안철수를 향해 손가락질하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개혁적이고 참신한 인물을 내놓았는지 자문부터 했어야 한다.

전병헌 원내대표가 종종 언급하는 ‘새정치’를 하겠다면, 창당도 안한 세력을 저격하기 전에 먼저 개혁적인 인물을 내놓고, 그 참신성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래야 민주당이 그토록 주창하는 ‘제1야당’의 수준에 맞는 경쟁이 되지 않겠나.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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