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정두언의 ‘후흑’ 만감
'권력자가 되려면 얼굴 두껍고 마음 검어야' 중국 역사학자의 처세술
다소 야윈 얼굴에 한쪽 발을 다쳐 지팡이를 짚고 나오는 모습을 보며 ‘권력 무상’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지난 1월 1일 새벽, 국회가 예산안 처리를 위해 본회의를 열었을 당시 항소심 형기 만료로 석방돼 참석한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의 모습을 보면서다.
서울 서대문을에서 17, 18, 19대 총선에 내리 당선돼 지역구 의원으로 탄탄한 기반을 갖췄을 뿐 아니라 자타가 공인하는 이명박 정부의 개국공신으로 한때 ‘실세 중의 실세’였던 정 의원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초창기 ‘권력사유화’ 발언 이후 정치적 시련을 끊임없이 맞이했고 2012년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되면서는 영어의 몸이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더구나 아직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의원 신분으로 의정활동이 가능한데도 재보궐선거 이야기만 나오면 우선 순위로 꼽히는 지역이 됐다. 과연 정 의원에게 정치적 재기는 가능할까 곱씹어 보게 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런 정 의원이 2014년 설을 맞아 책 선물을 보내왔다. 정 의원은 설이나 추석 등 명절 때마다 지인들에게 선물로 책을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는 지독하게 현실적인 처세학이라는 ‘후흑’을 선택했다.
중국의 역사학자 리쭝우 선생이 어떻게 하면 권력자가 되는지를 고민하다가 권력자들의 공통적인 속성을 파악하면 답이 나오겠다 싶어 연구한 결과가 바로 ‘얼굴이 두껍고 마음이 검어야 한다’라는 ‘후흑론’으로 이를 풀어쓴 책이다.
책 서문에서도 밝히듯 “희로애락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음을 후(厚)라 하고, 속마음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것을 흑(黑)이라 한다”는 ‘후흑론’은 “큰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그 얼굴이 성벽만큼이나 두꺼워야 하고, 그 마음은 숯만큼이나 검어야 한다. 역사 속의 영웅호걸들이 성공한 비결은 면후심흑(面厚心黑), 즉 ‘두꺼운 얼굴과 검은 마음’이었다(리쭝우)”라는 해석이 곁들여졌다.
누구보다 정치적 굴곡이 심한 정 의원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스스로는 “사실 전 처세술에 관한 책은 좋아하지 않지만”이라면서 “새 정권 출범 2년차를 앞둔 시점에서 특히 인사가 만사라는 면에서 참고할 점이 많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제7장 45절과 같은 사례는 과거의 정부가 왜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대목”이라고까지 설명했다.
그래서 펴봤다. 제7장 45절. 제7장은 ‘거리의 미학,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마라’는 제목으로 45절의 소제목은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다.
“일반적인 경우에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은 합심하여 협력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파하지 않는 잔치가 어디 있겠는가? 같은 이익을 바탕으로 한 배를 탔다고 해도 언젠가는 배에서 내려 제 갈 길을 가야 한다. 그러므로 세상을 살면서 경계심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한때 자신과 한 배를 탔던 사람이 자신에게 가장 큰 해를 입힐 수도 있다.”
이 내용은 새 정부 인사에 대한 제언이기도 하지만 정 의원 자신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더 컸다. 아울러 다시 시작하는 ‘정치’에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물으며 단련하기 위한 몸풀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정 의원은 “후흑을 읽으면서 절망에 빠졌었다”며 “자신의 속마음이 개꼬리처럼 얼굴표정에 그대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인간인데다가, 지난 정부에서 어떤 장관이 기자들에게 나를 평했듯이, 포커를 치면서 패를 다 보여주며 치는 그런 무모한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애저녁에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정 의원이지만 하나같이 몸을 사리는 정치판에서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그를 따르는 당내 소장파들에게 문제의식을 던져왔던 그의 재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 볼 단초가 되지는 않을까.
‘정관의 치·복지국가’ 등 고민 엿 볼 책 선물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정 의원은 명절 때마다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하기로 유명하다. 그 책을 통해 그 당시 당시 정 의원이 고민하는 화두는 무엇인지, 정치적 현재 상황은 어떤지 엿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2008년 초 ‘권력사유화’ 발언 이후 물밑 행보를 이어가던 2009년 설, 정 의원이 선택한 책은 ‘정관의 치’였다. 당 태종의 일대기를 그린 책으로 선정이유는 ‘납간(納諫·간언을 잘 받아들인다)’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던 셈이다.
2011년 설에는 비정규직과 복지에 관련된 책을 보냈다. ‘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과 ‘복지국가’였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복지논쟁이 뜨거웠고 그해 10월에는 결국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서울시장 재보궐선거가 이뤄지기도 하던 해이다. 아울러 정 의원은 1년 후에 있을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라면 ‘한국의 보수’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천착하던 때이기도 하다.
대선의 해인 2012년 추석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과 부총리를 역임했던 김병준 국민대학교 교수의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는 책을 선물했다. 이 책은 ‘정권교체’ ‘정권재창출’보다 더 중요한, 획득된 권력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해내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이 때문에 정 의원은 김병준 교수에게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는 감사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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