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위적 통일론보다 '통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때
최근에 제기된 통일대박론을 접하고 늦은 감이 있으나 반가웠다. 이산가족 상봉조차 성사되지 못할 정도로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는데 갑작스러운 통일론이 느닷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통일이 우리의 미래라는 주장은 신선하기조차 했다.
지난해 말 장성택 처형, 국정원장의 ‘2015년 조국통일’ 발언, 새해 들어 조선일보의 ‘통일 기획시리즈’로 촉발된 통일논의,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 신년기자회견이 줄을 이었다. 이후 여당이 통일헌법 연구에 착수하고, ‘지금이 통일의 적기다’는 등 통일담론이 쏟아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지금은 통일논의보다 신뢰구축과 교류협력, 남과 북의 통합에 대해 실천에 옮길 때이다.
무엇보다 통일론이 오히려 통일을 방해할 수 있다. 우리가 통일을 내세울수록 북은 흡수통일에 대한 불안감을 가질 것이다. 남북간의 신뢰부족, 국력의 차이, 북한 정권기반의 취약성 때문이다. 북의 지배층은 정권과 체제수호를 위해 내부 단속을 강화할 것이고 남한에 대해 도발을 벌일 수도 있다. 교류협력과 점진적인 개혁개방을 유도하려는 포용정책조차 북측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북한 권력층은 바보가 아니다. 우리의 강력한 통일론 제기는 북쪽 군부강경파의 입지만 강화시킬 것이다.
둘째, 최근의 통일론이 북한의 급변사태나 붕괴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비현실적이고 위험한 발상이다. 북쪽에 정권이 교체될 정도의 급변사태나, 정권교체가 체제붕괴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바뀌더라도 권력층 내부의 세력교체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 철통같은 북한사회에는 체제변화를 이끌만한 최소한의 세력과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이 자국의 전략적 이해가 걸린 북한의 체제변화에 수수방관할 리도 만무하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급변사태를 유도하거나 개입할 경우 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불장난이 될 것이다. 북한정권과 군부의 호전성을 익히 보아오지 않았는가? 평화통일이라는 대원칙에 반하는 일이다.
셋째, 통일은 끈질긴 인내를 요하는 점진적 통합의 과정이다. ‘통일대박론’에 과정과 방법이 생략되고 결과만 내세운다면 장밋빛 환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지금은 당위적 통일론 보다는 ‘통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답해야 할 때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극적으로 보이지만 독일통일은 장기간에 걸친 ‘동방정책’의 뒷받침이 있었다. 인적교류, 우편교류, 방송청취, 경제협력 등 교류협력을 꾸준히 추진하면서 밑으로부터 동독 주민의 의식과 사회변화의 토대를 쌓았다. 1969년에 시작된 동방정책은 1982년 사민당에서 기민당으로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기조가 계속 유지되었다. 1985년 소련의 개혁개방 추진이라는 동서냉전구도의 완화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소련이 동독정권의 보호막이 아니라 개혁개방의 압력이 된 것이다.
물론 북쪽의 극도로 경직된 체제와 핵문제, 한반도에 엄존하는 냉전구도 등 독일과 우리의 통일여건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교류협력을 바탕으로 밑으로부터의 변화와 통합을 추진해 나갔던 ‘동방정책’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신뢰를 쌓아가면서 충분한 숙성기간을 거쳐야 한다. 통일대박론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 백 마디의 통일론 보다 통합을 위한 한 번의 실천이 낫다. 장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제․사회․문화적인 통합이 곧 통일이다.
새해 들어 모처럼 국민들에게 통일에 대한 기대와 꿈을 갖게 한 통일대박론이 현실로 되기 위해서는 좀 더 치밀하고 끈기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 / 김영환 민주당 의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