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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도 아니라는 '민영화' 춤추는 괴담 맛들린 야당


입력 2014.01.14 10:47 수정 2014.01.15 11:06        김지영 기자

<기자수첩>진짜 민영화하려면 국회가 의료법 개정해야

프레임에 휘말린 정부 해명에 급급 갈등비용만 급증

노환규 의협 회장 겸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 총파업 관련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민영화다. 원격의료와 병원의 영리사업을 허용하는 정부 정책에 야당이 또 다시 민영화 프레임을 덧씌웠다. 정책의 타당성은 제쳐두고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민영화’, ‘불통’, ‘공약파기’, 문제의 본질과 상관없이 국민의 입장에서 가장 민감한 단어를 앞세워 여론을 호도한다. 다른 말로 선동이다.

국내 최대 의사들의 이익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정책에 반대하며 총파업을 예고했다. 야당은 의협에 편승해 정부 정책에 의료 민영화란 딱지를 붙였다.

하지만 저지 투쟁의 선봉에 선 의협의 주장에 민영화란 단어는 없다. 민영화는 민주당과 진보성향 시민단체가 만들어낸 표현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의협의 반발, 야권의 공세가 뒤섞여 마치 의협이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듯 보인다. 의협이 자신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야권의 도구로 전락한 꼴이다.

정부 역시 야권의 민영화 공세에 제대로 된 정책홍보는 시작도 못하고 해명에만 몰두하고 있다. 여당 의원들과 복지부 관계자들은 연일 라디오 인터뷰 등에 출연해 “민영화가 절대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국민들 상대로 한 정책홍보, 정치권 및 의료계 관계자들과 토론에 열을 올려야 할 시기에 말이다.

의협이 정부 의료정책을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의료사고에 대한 우려와 비정상적인 의료수가체계의 고착화다. 정부가 의료기관을 공공성을 띤 복지기관으로 보고 있다면 의협은 의료기관으로 한정한다.

원격의료의 경우 의료의 질을 떨어뜨려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고,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가속화해 동네의원을 고사시킬 것이라는 게 의협의 주장이다. 원격의료는 대면진료와 비교해 오진의 우려가 크고,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그간 동네의원을 찾던 도서벽지 주민들도 대형병원을 찾을 것이란 설명이다.

병원 영리사업 허용에 대해서도 의협은 ‘꼼수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병원의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한 의료수가는 손도 대지 않고, 부대사업을 통한 돈벌이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의협에 따르면 병원이 받는 진료비는 환자 본인의 부담비용과 건강보험동단의 의료수가로 이뤄지는데, 의료수가가 비현실적으로 낮아 병원은 환자에 선택진료, 상급병실 사용, 비급여치료 등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환자로부터 부족한 수익을 충당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의협은 부수입이 아닌 의료서비스를 통한 수입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리사업이 허용되면 병원은 환자가 아닌 사업에 눈을 돌리게 되지만, 의료수가가 인상되면 환자 진료에만 집중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경우 비급여 진료 남발, 3분 진료와 같은 잘못된 관행도 사라질 거라는 관측이다.

문제는 의협의 주장에 ‘민영화’란 단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투장이 민영화 투쟁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의협은 전체 의료기관의 95%가 민간자본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민영화란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미 병원은 민간기관이고, 따라서 민영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 하에서 ‘민영화’, ‘영리화’란 단어가 부합하려면 당연지정제 폐지, 민간 건강보험 도입 등이 선행돼야 한다. 진료비 책정권이 정부에서 병원으로 넘어가려면 의료법이 개정돼야 하고, 건강보험이 민영화되려면 건강보험법이 개정돼야 한다. 국회의 협조 없이 실질적 민영화는 불가하다.

정부도 민영화가 아니라 하고, 의협도 민영화가 아니라 한다. 야권이 만들어낸 실체 없는 주장에 의협의 요구가 ‘민영화 저지’로 호도되고, 정부는 해명에만 급급해 민영화 블랙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적으로 표현해 괴담의 목적은 선동이다. 민영화의 실체가 없다면 민영화 저지도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일을 목적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애초에 목적이 없거나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야권은 민영화 등 민감도가 큰 단어를 활용해 여론을 유도하고, 대정부 투쟁이란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이 같은 선동은 전 정부에서부터 계속돼왔다. 이해 당사자들이나 일반 국민들의 목소리는 일면 타당하지만, 여기에 정치적 목적을 가진 괴담이 덧씌워지면서 괴담은 곧 국민의 목소리로 호도됐다.

대표적인 예가 광우병 파동이다. 2008년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서울광장으로 뛰쳐나온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검역주권 포기였지만, 자칭 진보세력은 이를 악용해 ‘인간 광우병’ 괴담을 퍼뜨렸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독소조항 폐기, FTA 재협상을 통한 검역주권 회복에서 광우병 자체로 옮겨갔다.

지난 철도파업 때도 논쟁의 핵심은 수서발 KTX 사회사 설립이라는 정책의 타당성이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민영화 논란으로 소모전만 계속됐다.

국민의 건강, 삶과 직결되는 단어를 이용해 프레임을 선점하면 여론을 선동하기는 쉽다. 하지만 정부에 흠집을 내는 것 외에 국민에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여야는 정책의 타당성을 따져 최선의 대안을 도출해야 하지만, 야권은 정책에 특정 프레임을 걸어 존폐를 결정지으려 한다. 정치가 아닌 투쟁이다.

이번 의료정책도 그렇다. 실체가 없는 민영화를 두고 싸우다보면 정책은 발전하지 않는다. 정부 정책이 민영화라 우기는 야권, 민영화가 아니라 항변하는 정부, 이 사이에서 결론이 나올 리 만무하다.

괴담은 여론을 호도하고 선동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수단이지만 본질을 왜곡시킨다. 본질이 왜곡되면 정책은 발전 없이 강행되거나 가로막힐 수밖에 없다. 이게 국민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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