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DIZ 논란 후 이어도 해역은 '안녕들하십니까'
"해저영토" 주장 일지만 전문가들 "평화적으로 대응해야"
이어도 상공을 둘러싼 방공식별구역 논란은 가라앉았지만, 이어도 해역의 '긴장의 파고'는 여전히 출렁이고 있다.
새로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이 지난 15일 발효되면서 이어도의 하늘은 안녕하게 됐지만, 주변 해역은 아직까지 안녕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학계와 정치권, 군사전문가 등은 이어도 해역에 대한 실효적 지배권을 강화하는 방안을 잇달아 내놓으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당부하고 있다.
"이어도 '수중암초' 아닌 '해저영토'라고 해야" 주장 나와
이런 가운데 김을동 새누리당 의원은 "이어도를 '수중암초'가 아닌 '해저영토'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도는 독도처럼 영토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아니다. 지난 2003년 해양과학기지를 세워 태극기가 휘날리는 곳이지만, 섬이 아닌 수중 암초이기 때문에 국제법상 우리영토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다.
김 의원은 "일반국민들에게 이어도 주변수역의 해저지하 자원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이어도를 수중암초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및 대륙붕에 있는 해저영토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1947년 10월 일본정부가 맥아더라인 안에 이어도를 포함시켜 일본영토라고 주장하여 맥아더사령부에 보고한 사실에 있고, 이는 일본이 이어도를 영토로 해석하고 있다는 근거가 된다"며 "그런데 왜 한국 외교부는 일본정부와 달리 '이어도를 영토가 아니다'고 해석하고 있냐"고 따졌다.
이어도는 평상시에 수면 아래에 있기 때문에 영토개념에서 벗어나 있지만, 상황에 따라 일본이나 중국이 '떼쓰기'를 할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재 김 의원의 이러한 제안은 '정치적 메시지'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다만, 국제법이나 외교협상에선 통용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어도 번지수' '이어도의 날' 왜 제정못하나 vs "인기영합식 대응할 일 아냐"
하지만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정치인의 '이어도 구호'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인기영합식, 국민감정을 자극하면서 대응할 일이 아닌 외교로 풀어야 할 일"이라는 지적이다.
정치인들이 내놓은 정책들이 대부분 국민들의 민족성을 자극하는 '조미료'를 넣어 입맛을 맞춘 내용이기 때문이다. 외교실리 보단 국민감정에 초점을 맞춘 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칫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 궤도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어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반복되어 온 '이어도의 날' 추진 논란이다.
지난 2008년 이어도 해역을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이 촉발됐을 당시 제주도의회에서 "매년 1월 18일을 이어도의 날로 제정하자"는 조례안을 냈지만, 외교부의 만류로 무산됐다. 당시 외교부는 제주도의회에 보낸 공식 공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어도 수역은 엄연히 우리측 수역으로서 정부 차원에서 이어도 해양조사기지를 설치하고 주변해역 연구조사 활동을 실시하는 등 실효적으로 관할 중이다. '이어도의 날' 조례가 발표될 경우 중국측이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중국측의 이의 제기로 인해 이어도 수역이 국제분쟁지역이라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방공식별구역 논란 직후인 지난 13일에도 제주도의회에서 '이어도의 날 조례안'이 상정됐다가 보류 의견이 제출되면서 무산됐다.
보류 의견을 낸 구성지 제주도의원은 "이어도의 날 조례는 의도와 달리 정부와 중국측이 조례의 명칭만을 가지고 동북아지역에 새로운 긴장국면 조성으로 이어질 수 있 있다"며 "이로 인해 정부가 미일중과 긴밀하게 협의해 추진한 우리측 방공식별구역 조정 결과와 외교 성과가 반감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감정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제규범으로 풀어야"
무엇보다 중국 내에서 '반한(反韓) 여론'이 커질 경우, 제주도 관광산업에 직격탄이 될 수 있어 제주도의회 입장에선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구 의원은 "이어도의 날 조례가 제정될 경우 관광객 유치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며 "제주도의 경제적 이해관계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김부찬 제주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이어도 문제는 해양법과 관련된 국제법적 문제인 동시에 중국의 움직임과 관련된 국제정치적 함의도 갖고 있다"며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양법상 관할권 근거를 보다 분명하게 구축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도록 외교력을 강화해 나가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성대 제주대 지리교육과 교수도 "중국측이 말하는 대로 이어도는 국제법으로 규정된 섬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한국의 영토가 아닌 양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EEZ내에 있을 뿐"이라며 "이어도 문제는 중국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제적 규범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우리 정부나 국민들이 감정을 앞세워 중국 측을 자극하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리적이고, 국제적 규범에 의해 풀어가야 한다. 중국의 이어도 공정이 영토 침략으로 이어질 우려가 큰 만큼, 정치지리학적 원칙인 '원교근공(遠交近攻)'이 아닌 정반대의 '원교근경(遠交近警) 정책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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