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단일화 블랙홀, 박근혜와 대결구도 안서"
책 '1219 끝이 시작이다' 공개, "후보단일화 그늘 컸다"
작심발언(作心發言).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작심한 듯 속에 담아 둔 이야기를 거침없이 토해냈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을 대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를 두고 박근혜정부의 정통성에 대해 의문성을 제기했다. 또 지난해 총선과 대선과정에서 느낀 민주당을 향한 불만도 여과 없이 쏟아냈다.
문 의원은 오는 9일 출간을 앞두고 5일 미리 공개한 자신의 저서 ‘1219 끝이 시작이다’를 통해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패배를 거울 삼아야 한다”며 지난 1년여간의 소회를 털어놨다.
“국정원 대선개입, 국가기관 동원과 권력 사유화...민주주의 규칙이 깨진 것”
문 의원은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야말로 대선 승리와 집권 연장을 위해 국가기관을 동원하고 권력을 사유화 한 일”이라며 “그것이 실제로 선거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느냐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선거의 공정성과 정당성이 무너졌다. 민주주의의 규칙이 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기가관이 개입해 선거의 자유와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것은 민주정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말 그대로 국기 문란”이라면서 “국가 최고의 권력기관이 나서서 조직적으로 범법 행위를 했다는 것은 독재정권체제하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군사정권에서나 있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문 의원은 박 대통령을 향해 “설령 그 자신은 몰랐다 해도 새누리당 정권하에서 자신을 당선시키기 위해 자행된 일이었다. 박 대통령이 그 수혜자”라면서 “박근혜 후보 본인과 선대위가 직접 선거운동에 악용하기도 했는데도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박 대통령의 태도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문 의원은 특히 “정권의 정통성은 그런 행태로 무너지는 것이지 야당이 비판을 한다고 무너지는 건 아니다”며 “박 대통령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권 정통성에 대한 일종의 콤플렉스가 아닐까 싶다”며 “진상을 제대로 밝히고 책임을 엄중하게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개혁을 확실하게 하는 길만이 정통성 시비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거론한 뒤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박 대통령이 그런 자세로 임하기만 한다면 정통성까지 공격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오직 정직하고 겸허한 대응만이 불행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에 진정성이 담겨 있다고 보지 않았다”
문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경제민주화’와 ‘복지’에 대한 공약에 대해서도 “대선이 끝난 지 10개월, 핵심 비전이나 공약들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나와 선명성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복지 공약의 핵심은 이미 파기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솔직히 대선 때,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에 진정성이 담겨 있다고 보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우리의 의제를 선점했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에 역점을 뒀고, 워낙 파격적인 공약까지 내놓았기 때문에, 그 절반만 실천해도 큰 발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지적했다.
문 의원은 박 대통령의 복지 공약에 대해 “복지 공약의 신기루 같은 호상은 모두 부족한 재원 때문”이라며 “재원 마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현실적 대안 없이 대선에서 그저 표를 모으기 위해 무책임하게 쏟아 낸 복지 바겐세일이었다”고 주장했다.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본직절인 내용에 접근조차 하지 못한 채 입법의 조기 종결을 선언했다”면서 “총수 일가가 소수의 지분으로 거대한 재벌 집단을 황제처럼 지배하는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상법개정안도 물 건너가는 분위기”라고 쓴소리를 날렸다.
그러면서 “박근혜정부는 단기 실적의 유혹에서 벗어나 지난 대선 때의 초심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며 “그것이 경제와 민생을 살리는 길”이라고 꼬집었다.
“부산지역 단수공천을 두고 쏟아진 비난, 나로서는 기가 막히고 황당할 뿐”
민주당을 향한 질타도 이어졌다. 지난 2011년 ‘민주통합당’의 탄생 당시부터 지난해 대선과정, 그 이후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오기까지 발생한 사건들을 거론하며 조목조목 비판의 목소리를 울렸다.
문 의원은 지난 2011년 민주당과 시민단체의 통합으로 탄생한 ‘민주통합당’과 관련, “당시 야권 통합 과정을 보면 혁신 부분에서 큰 아쉬움이 남는다”며 “정당의 혁신을 전제로 한 통합이었다. 민주통합당을 창당하면서 창당선언문에서 혁신을 약속했는데 창당 이후 그 약속을 실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 쪽에서는 처음부터 혁신의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면서 “민주통합당 창당 때 어떻게 하든지 혁신을 실천하는 데까지 갔어야 했다는 후회가 남아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2012년 치러진 19대 총선 공천과 18대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 과정에 대한 불만도 털어놨다.
문 의원은 총선 공천에 대해 “민주당은 공천의 원칙이나 기준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다”며 “개혁적인 공천을 위해 외부 위원을 다수로 하는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국민들 눈에는 여전히 계파 간 나눠 먹기식 공천으로 비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부산 지역의 단수 공천을 거론하며 “처음부터 반발을 자초한 셈이다. 기준이나 평가 방법이 명료하지 않으니 ‘친노 패권주의’라는 등의 터무니없는 비판에도 속수무책이었다”면서 “그로인해 나는 졸지에 친노 패권주의를 조종한 보이지 않는 손이 되고 말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는 당시 민주통합당 지도부도 아니고, 그저 수많은 공천 신청자 중 한명일 뿐이었다”며 “그런데도 경선을 생략한 부산 지역 단수 공천의 비난이 내게 쏟아졌다. 나로서는 기가 막히고 황당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나치게 소모적인 당내 경선, 다시 하나 되기 힘들 정도로 당을 분열시켰다”
문 의원은 18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진행된 당내 경선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소모적이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문 의원은 “당내 경선은 승자에게 힘을 모아 주는 축제처럼 치러야 하는데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며 “본선에 들어가기도 전에 사람을 탈진시켰다. 끝난 후 다시 하나가 되기 힘들 정도로 당을 분열시키는 경선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경선의 개념부터 잘못 설정됐다”며 “민주당 사람들 뇌리 속에는 2002년 같은 드라마틱한 경선 흥행의 극적효과를 재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지만 2002년과 2012년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고 주장했다.
문 의원은 “경선 시작과 함께 시작한 룰에 관한 시비는 후보들간의 비전이나 정책 경쟁마저 잠재워 버렸다”면서 “지역 경선에서 일부 극렬 지지자들이 단상을 향해 던진 물병과 오물과 욕설보다 우리끼리 던진 공격의 언어가 더 처참하고 아팠다”고 털어놨다.
이어 “경선 중반이 지나면서 이미 승패는 굳어졌고, 남은 경선 절차는 피차에게 고단함 그 자체였다”며 “물병이 날아올까 봐 후보로 선출되고서도 스탠드를 돌며 대의원들에게 손을 흔들 수도 없었다. 한마디로 바보 같은 경선 일정이었다”고 비판했다.
“대선 패배의 결정적인 요인은 종북프레임, 민주당은 아무런 대응책이 없었다”
문 의원은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새누리당이 내세운 ‘종북 프레임’을 꼽았다. 또한 민주당이 이 같은 새누리당의 전략에 아무런 대응책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또다시 북풍이나 색깔론을 들고 나오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라며 “그래서 나는 색깔론의 위세가 과거만큼은 못할 거라고 봤지만 오산이었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종북 프레임의 성공이 박 후보의 결정적인 승인이었다”면서 “거꾸로 말하면 그 프레임에 무력했던 것이 나와 민주당의 결정적 패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특히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 비열한 프레임에 우리가 속수무책이라 할 정도로 무력했던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당해 오고도 또 그렇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이 우리 내부에 있지 않느냐는 것”이라며 “앞으로 민주세력의 재집권을 위해서도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후보단일화, 한쪽이 협상 늦추거나 벼랑 끝 전술로 버텨도 속수무책”
야권후보단일화에 대한 아쉬움도 표시했다. 단일화의 상대였던 안철수 무소속 의원에 대해서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문 의원은 안 의원이 대선 당일 미국으로 출국한 것에 대해 “선거가 끝나기 전에 선거 결과를 낙관했거나, 그것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안 의원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간접적으로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단일화의 효과를 더 극대화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우리는 후보들 간에 마지막으로 의견을 교환하거나 최종 의사를 통고하는 마무리 절차가 어떤 형태로든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다못해 전화 통화라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상, 단일화 과정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다.
후보단일화 자체에 대해서도 “단일화가 내게 엄청난 도움을 줬지만, 사실은 그늘도 컸다”고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문 의원은 “단일화의 블랙홀이 워낙 커서 단일화가 끝날 때까지 나와 박 후보간 대결 구도가 서지 않았다”며 “매일같이 정책을 발표해도 단일화 이슈에 묻혀 버렸다. 그 때문에 정책에서 박 후보와의 차이가 부각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지난 대선에서 단일화는 모든 것이 후보간 협상에 맡겨졌다”면서 “한쪽이 협상 시작을 늦춰도 속수무책, 벼랑 끝 전술로 버텨도 속수무책, 협상이 평행선을 달려도 속수무책이었다”고 협상 당시 안 의원의 행동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친노-비노 프레임, 우리 스스로 악용하면서 민주당을 해치고 있는 게 문제”
이와 함께 문 의원은 당내에 팽배한 친노-비노간 대립 구도에 대해 “당권 경쟁 등 계파적인 목적을 위해 그 프레임을 우리 스스로 악용함으로써 민주당을 해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도 친노-비노 프레임이 나와 민주당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켰다”며 “총선 패배도 친노 패권주의 탓으로 돌렸다. 대선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지도부를 전부 퇴진시켰다”고 지적했다.
문 의원은 “이어서 선출된 지도부도 친노 패권주의에 의해 선출됐다는 공격으로 무력하게 만들었다. 끝내 대선 기간 중에 퇴진시켰다”면서 “대선캠프 실무진에서 참여정부 출신을 배제했다. 대선이 끝난 후 대선 패배의 책임도 친노 패권주의 탓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정치에 입문함과 동시에 친노의 대표로 규정지어졌고, 친노 패권주의의 책임자가 됐다”며 “그 분열의 프레임을 우리 스스로 거부하고,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신뢰받는 정당으로 바꿔 나가는 데 곡 필요한 절실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노무현의 한을 풀어주기 보다는 오히려 한을 더 키웠다는 회한이 내게 있다”
아울러 문 의원은 최근까지 제기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논란’에 대해 “해당 논란을 둘러싸고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이 노 전 대통령에게 퍼붓는 공격과 비난을 보면서 나는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무서운 악의가 되풀이되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내가 특히 더 아픈 것은 만약 내가 대선후보로 나서지 않았더라면 그가 다시 이렇게까지 심한 표적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라며 “이미 고인이 된 분을 부관참시하는 듯한 모독도 내가 대선후보였기 때문에 더 혹독하게 자행된 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그의 한을 풀어주기는커녕 오히려 한을 더 키웠다는 회한이 내가 있다”고 덧붙였다.
문 의원은 NLL을 둘러 싼 논쟁에 대해서는 “NLL은 북한과 합의 없이 임의로 이어진 선이므로 분쟁의 소지가 있다”며 “북한으로서는 적어도 남한에게 해상 불가침 경계선 재획정을 위한 협의를 하자고 요구할 나름의 근거가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래서 강구된 방안이 NLL상에 남북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해 NLL을 그대로 두고서도 분쟁과 군사적 충돌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없애자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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