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이어도 호들갑? 하늘보다 급한건 바다밑!
방공식별구역 설정 논란 국익차원서 차분히 대응해야
전문가들 "이미 실효적 지배 진짜 문제는 'EEZ획정'"
“참담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과민 대응하면 국가 이익에 도움이 안 된다.”
이어도 해역에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이 이어도와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 일부를 포함한 방공식별구역(ADIZ)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면서 거센 폭풍을 몰고 왔다. 일본을 향해 이동 중인 폭풍의 눈은 현재 이어도 해역을 지나고 있다.
이어도는 우리나라가 실효지배하는 지역이지만, 중국에 앞서 일본이 오래 전부터 이곳 상공을 자국의 방공식별구역에 포함시켜 왔다. 중국의 이번 선포로 동아시아 해양패권을 둘러싼 힘겨루기의 중심에 이어도가 휘말리게 된 형세다.
‘방공식별구역’은 한 나라가 영공을 방어하기 위해 영공 주변에 임의로 선포하는 구역으로 영공보다는 훨씬 넓지만, 국제법적으로 관할권을 인정받지 못한다. 항공기가 ‘방공식별구역’을 지날 때에는 해당 국가에 사전 통보해야한다. 하지만, 우리의 방공식별구역에는 정작 이어도 해역이 빠져 있다.
즉, ‘우리집 앞인데, 지나갈 때 마다 옆집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와 관련 군사-외교 전문가들은 방공식별구역이 국제법적으로도 근거가 불명확한 구역인 만큼, 한중일 간 힘의 논리에 따라 효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5일 논란이 일자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은 우리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선포됐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또 “중국이나 일본의 방공식별구역 설정과 무관하게 이어도 수역에 대한 우리 정부의 관할권은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외교부도 “양국은 우호적인 근린 국가이기 때문에 소통과 대화를 통해 지역의 평화안정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충분한 이해와 협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타깃인 일본에 대해선 “만약 일본이 역사를 돌이켜본다면 지역의 긴장과 불안정을 초래한 것은 중국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중국-일본 싸움에 휘말린 이어도…강경대응하면 국가이익 도움 안돼"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갈등의 불똥이 한반도에 튀었다”고 분석했다.
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은 센카쿠는 물론 오키나와 서쪽해역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일본을 겨냥한 군사적 압박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이어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 국민과 정부가 하늘과 바다 보다는 육지에만 몰입하는 영토관과 이에 기반한 외교 국방정책에서 기인한다”며 “이어도의 하늘과 바다 밑 대륙붕의 주권적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낙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강 교수는 “우리가 일본처럼 강경대응하는 태세는 국가이익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이어도 하늘 위의 KADIZ 설정도 중요하지만, 이어도 바다 밑에 대륙붕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외교안보 전문가도 “중국 측에서는 이번 논란으로 우리와 쓸데없이 싸우거나 할 생각이 없다는 시그널을 보내왔다”며 “이렇게 가다보면 조용해질 것인데, 언론 등이 나서서 너무 국민 여론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외교당국이 중국과 협상하는 과정을 조용하게 지켜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현명한 방법”이라며 “여론이 정부의 협상 진행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실제 정부는 이번 논란과 관계없이 ‘한중 해양경계 획정 회담’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오는 28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3차 한중 국방전략대화에서 ‘이어도 영유권 문제’를 협의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국방부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이 국제법상 효력이 없는 만큼 이를 인정하지 않기로 하고, 향후 협의를 통해 문제를 풀어 가기로 했다.
"우리 항공기 이어도 상공에 오르려면 일본 허락 받아야"
현재 일본의 방공식별구역(JADIZ)에는 이어도가 포함돼 있어 그동안 이어도 상공에 우리 항공기를 띄우려면 일본에게 비행계획을 통보해야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25일 ‘이어도 상공을 비행하기 위해 일본의 허락을 받아 왔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해왔다”고 했다. 그동안 이어도 인근에 우리 공군기가 출격하거나 해양연구원들이 헬기로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방문할 때에도 사실상 일본의 ‘허락’을 받아왔던 것. 이에 대한 여론은 ‘독도 수준’으로 들끓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어도에 우리 항공기가 들어갈 때 항상 30분 전에는 통보를 했다”며 “통보만 하면 되고, 그 외에 다른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중국이 이번에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인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통보도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했다.
군은 이어도가 군 작전구역과 비행정보구역에 포함돼 작전수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그동안 KADIZ에 이어도를 포함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손 놓고 있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가 그 동안 수차례 방공식별구역에 이어도를 포함시키겠다고 요구했으나 일본측의 “그러면 독도를 일본 방공식별구역에 넣겠다”는 주장에 밀려왔다. 방공식별구역이 국제법적으로 영공이 아니라는 실효성을 명분으로 사실상 ‘무대책’이었다는 지적이다. 현재 정부도 일본의 ‘독도 연계전술’에 마땅한 대응논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론은 "강경대응" 주문하는데, 전문가들은 "차분해야...진짜 문제는 'EEZ획정' 논의"
이에 우리가 이어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이어도 상공을 방공식별구역에 집어넣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어느때보다 안보-외교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방공식별구역 보다 한중 간 배타적경제구역(EEZ) 획정 논의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효백 교수는 “우리가 무리하게 논란을 부각시키면, 현재 실효적 지배구역인 이어도를 중국과 국제영토분쟁 문제로 (확산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무엇보다 대륙붕 자원의 공동개발, 해양경계의 원활한 추진 등 동북아 공동 번영과 상생을 모을 이른바 한중일 해양설립체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어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만큼, ‘평화’에 방점을 두고 경제협력 등 다른 차원의 논의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현재 우리와 중국은 이어도 해역을 둘러싼 배타적경제구역(EEZ. 해안선에서 370㎞ 이내의 경제주권이 인정되는 수역) 획정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어도 수역을 놓고 한중 양국은 모두 해당 수역이 자국의 EEZ에 포함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도는 우리나라 최남단인 마라도에서 149㎞, 중국에선 247㎞가 각각 떨어져 있지만, 중국은 해안선 길이나 배후 인구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향후 갈등의 소용돌이가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 해양법상 해상 경계의 경우 양국 간 합의로 정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한중 간 경계가 획정되기 전까지는 이어도 수역에 대한 진통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정부는 1996년 이후 중국과 14차례 해양경계획정 회담을 진행 했는데, 서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논란으로 협상이 불리해 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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