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르렁 국감장 카메라 불꺼지자 갑자기...
<국감 뒷담화>여야 의원끼리 협상하다 불 들어오면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공방
지난달 14일 서울 계동 보건복지부 청사에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오전 내내 기초연금을 둘러싼 야당 의원들의 파상공세가 이어졌고, 오후 질의에선 자료제출 문제로 정회하는 사태를 맞았다. 이때까지 여당 의원들도 특정 야당 의원의 실명과 질의 내용을 거론하며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정회 후 방송용 ENG 카메라가 꺼지자 국감장 상황은 180도 바뀐다. 한 여당 의원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야당 의원들에게 다가가 협조를 구했다. 내용인즉 복지부가 청와대에 보고했던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회하면 그 자료나 청와대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으니 좀 참아달라는 것.
잠시 후 야당 의원들은 증인석의 이영찬 복지부 차관을 불러 은밀한 대화를 나눈다. 이들이 당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속개 후 상황이 모든 정황을 설명해줬다. 이후 국감은 해당 자료 없이 진행됐다. 여야 의원들, 이 차관 간 모종의 합의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방송 카메라가 꺼지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전파를 타고 생중계되는 순간엔 다시는 안 볼 사이처럼 서로 물어뜯다가도 카메라가 꺼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친분을 과시하거나 거래를 나눈다.
이 같은 상황은 댓글 사건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국정원 국정감사 때도 반복됐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파행 등 돌발상황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됐지만, 국감은 한 차례의 파행도 없이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오히려 “국감을 앞두고 논란이 들끓어 걱정했는데, 너무 좋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는 후문이다.
당시 피감기관 증인 신분으로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정치인들이 다 카메라, 언론이 있을 때만 큰소리 치고 싸우지, 막상 아무도 없이 비공개로 진행되니 조용하더라”고 전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사퇴, 검찰의 국정원 수사팀장 교체 문제로 격론이 오갔던 법사위원회 국감도 마찬가지.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국감 내내 얼굴을 붉혀가며 타당 의원에게 독설을 내뱉었지만, 정회나 산회 후 언론이 물러서고 나면 “너무 심했던 것 아니냐”는 등 농담을 주고받으며 국감장을 나섰다.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배석했던 한 보좌진은 “정회하고, 산회했는데도 계속 싸운다는 건 정말 싫다”라며 “언론이 보고 있고, 말고를 떠나 링 밖에선 인간적으로 친하더라도 링 위에 올라갔을 때 치열하게 싸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감기간 동안 보도자료를 둘러싼 의원실 간, 의원실과 언론 간 경쟁도 과열된다. 의원실은 자신들이 보좌하는 의원을 ‘국감스타’로 만들기 위해 특종을 발굴하고, 언론사들은 특종을 보도하기 위해 의원실로부터 자료를 받는다. ‘대박자료’를 찾은 의원실은 언론사들을 놓고 저울질을 하기도 한다.
이 같은 특종 거래는 대개 보좌진과 기자 간 친분관계에 의해 성사된다. 기자들과 만남이나 식사 자리가 잦은 보좌진은 국감기간 내내 쏟아지는 전화를 받다가 하루를 보내기 일쑤다. 한 보좌관은 “이제 국감이 끝나 덜한데, 얼마 전까진 특종이나 보도자료를 넘겨달란 전화를 수도 없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의원실은 보도될 기사의 비중, 분량 등을 고려할 때 되도록 친한 기자에게, 혹은 보도자료의 내용과 성격이 맞는 언론사에 자료를 넘겨줄 수밖에 없다.
실제 민주당 소속 모 의원 측은 지난달 한 금융기관이 언론사들을 상대로 금품을 제공한 정황을 포착했고, A 일간지 기자에게 이 사실을 제보했다. 하지만 A 일간지는 내부 사정으로 보도를 포기했고, 해당 자료는 B 일간지를 거쳐 C 주간지로 넘어갔다. 결국 C 주간지는 이 자료에 ‘단독’을 달아 보도했다.
반대로 의원실이 각 언론사, 기자들에게 먼저 연락해 보도자료의 기사화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쟁점이 적은 비인기 상임위의 경우, 법사위, 정보위 등 인기 상임위에 밀려 보도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로 이 같은 요청은 지면의 제약이 없는 인터넷 매체 기자들에게 집중된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