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둘러싼 정부와 야권 엇갈린 이해관계, 박 대통령 직접 나서 정리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을 둘러싼 정치권의 기싸움에 거듭 답답함을 토로했다. 민생법안 처리가 시급한 상황에 여야 모두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달 예정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와 베트남 방문, 오는 10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 등 남은 일정들을 고려하면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정부와 여야가 협의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하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국정원 사태 해결을 위한 회담만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금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과 전월세난, 일자리 문제 등 서민과 중산층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민생지원 법안을 조속히 처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민생과 거리가 먼 정치와 금도를 넘어서는 것은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정치를 파행으로 몰게 될 것이고 그것은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정치권에 국정원 사태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멈춰줄 것을 촉구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나는 야당에서 주장하는 국정원 개혁도 반드시 이뤄낼 것이다. 우리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국정원 조직개편을 비롯한 국정원 개혁은 벌써 시작됐다”며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국정원을 거듭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논란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야권의 요구대로 국정원 개혁 해결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다른 측면에선 경제민주화, 경기활성화, 투자활성화 등 민생정책이 국정원 이슈에 매몰돼 국정원 사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회담이 답보 상태에 빠진 배경에도 결국 국정원을 둘러싼 엇갈린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박 대통령은 “나는 민생회담과 관련해서는 언제든지 여야 지도부와 만나서 논의할 생각이 있다”며 “국민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민생안정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존재하는 것이다. 국민의 뜻에 부응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드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되 논의 대상은 민생으로 한정지었다. 박 대통령이 회담의 명칭을 임의로 ‘민생회담’이라 명명한 것만 보더라도 발언의 의중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말한 민생회담은 대통령과 여야 대표·원내대표가 참여하는 5자회담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양자회담 제의에 비서실장 명의로 “각종 국정현안이 원내에 많은 만큼 여야의 원내대표를 포함한 5자회담을 열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 상황에서 양자회담이나 3자회담을 수용한다 해도 정부와 여야가 민생을 논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국정원 이슈 장기화로 후반기 민생입법은 물 건너갈 소지가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박 대통령이 택할 수 있는 카드는 사실상 5자회담뿐이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도 회의가 끝난 뒤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의 오늘 발언은) 민생과 관련한 5자회담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박 대통령의 의도대로 5자 민생회담이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측이 국정원 빠진 회담 제의를 수용할리 만무하고, 민생법안별 여야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기 때문에 회담이 성사된다 해도 협의 과정 상에서 갈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