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봉중근·포수 문선재…LG ‘파괴로 힐링’
KIA전 접전 속 고육책으로 포지션 파괴
1년 전 ‘포기 파괴’와 다른 집념 돋보여
LG 트윈스 김기태 감독은 지난해 9월 '투수 대타 기용'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지난해 9월, 0-3으로 패색이 짙던 SK전 9회말. 상대팀의 연이은 투수교체에 불만을 품고 마지막 타석에서 신인 투수 신동훈을 대타로 세워 경기를 포기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 것. 결국, 김기태 감독은 KBO로부터 엄중경고와 벌금 징계를 받았다. 팬들 사이에서도 감독의 자존심 때문에 '승부를 포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약 9개월이 흐른 2일 KIA전. LG 벤치에서는 또다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투수 대타뿐만 아니라 대주자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내야수가 포수 마스크를 쓰는 기행도 벌어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1년 전 사실상 승부포기 선언이었다면, 이번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집념의 의지가 포지션 파괴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LG는 선발 양현종 호투를 앞세운 KIA에 눌려 8회까지 0-4로 끌려갔다. 하지만 마지막 이닝이었던 9회 KIA 소방수 앤서니를 두들겨 동점을 만들었고, 연장 10회초 ‘히어로’ 문선재 역전 2루타에 힘입어 기적 같은 대역전승(5-4)을 완성했다.
LG는 9회초 세 타자 연속 안타로 무사 만루 기회를 만들었다. 김기태 감독은 다음 타석에서 포수 최경철 대신 이진영을 대타로 기용했다. 이날 선발로 나선 윤요섭은 7회 이미 교체된 상황. 엔트리에 있는 포수 2명을 모두 소진한 LG는 동점이나 역전을 허용하더라도 마지막 이닝 투입할 포수가 없는 상황을 감수한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이진영이 밀어내기 볼넷으로 걸어 나간 이후에는 베이스러닝이 불편한 이진영을 대신해 투수 자원인 임정우가 투입되기도 했다. 총력전을 펼치다가 8회 이전에 백업 야수자원을 모두 소모한 상황에서 그나마 투수자원 중 러닝이 준수한 임정우를 택한 것. 임정우는 손주인 동점 적시타 때 홈까지 파고들어 득점에 성공했다.
4-4 동점 상황에서 9회 수비에 나서야했던 LG는 부랴부랴 문선재에게 포수 마스크를 씌웠다. 문선재는 초등학교 때 포수 마스크를 써본 경험이 전부였다. 하지만 문선재는 연장까지 2이닝 동안 투수의 볼을 안정적으로 받아내며 든든하게 안방을 지켜냈다. 특히, 연장 10회에는 짜릿한 결승타까지 뽑아내며 공수 양면에서 이날 승리의 최대 주역이 됐다.
마무리투수 봉중근이 10회 타석에 나선 것도 대타 자원이 없었던 LG의 고육책이었다. LG는 9회말 수비 때 봉중근을 마무리 투수로 기용하면서 8번 타순에 이름을 올렸다. 10회초 공격 때 타석에 선 봉중근은 비록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마운드에서는 끝까지 리드를 지키며 승리를 따냈다.
야구에서 보기 드문 변칙 장면이 많이 연출된 하루였지만, 핵심은 LG의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승리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것은 지난해 투수 대타 해프닝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LG 팬들에겐 ‘힐링야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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