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류현진' 괴물이 기운 빠진 날
상위타선 요리 잘하고 하위타선에 통타
4점 리드에도 주도권 빼앗긴 피칭 실망
'코리언 몬스터' 류현진(26·LA다저스)이 메이저리그 데뷔 후 가장 힘든 경기를 치렀다.
류현진은 21일(한국시각) 미국 볼티모어 캠든야즈 오리올파크서 열린 ‘2013 MLB' 볼티모어와의 원정경기 더블헤더 1차전에 선발 등판, 6이닝 8피안타(2피홈런) 2볼넷 6탈삼진 5실점(5자책점)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가장 좋지 않은 내용의 투구였다.
4-0으로 앞서고 있던 2회말 J.J. 하디에게 2점 홈런을, 4회 말에는 놀란 레이몰드에게 솔로 홈런을 얻어맞았다. 한 경기 피홈런 2개는 4경기 만에 처음이다. 6회말에는 다시 무사 1,3루 위기에서 하디의 희생플라이로 동점을 허락했고, 스티브 피어스에게도 역전 1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팀 타선이 7회초 1점을 뽑은 덕에 패전투수는 면했지만, 2점대였던 시즌 평균자책점은 4점대(4.01)로 치솟았다. 다저스는 류현진의 부진한 피칭과 불펜의 난조 속에 5-7 역전패했고, 밤잠 설치며 류현진 선발등판 경기를 시청했던 국내 팬들은 아쉬움 속에 눈을 비볐다.
우천 연기에 따른 여파가 컸던 것일까. 류현진 볼 끝에서는 평소의 예리함도 묻어나지 않았다. 6개의 삼진을 잡아내긴 했지만, 패스트볼 최고구속이 91마일(147km)에 불과했고, 전반적으로 공이 높게 형성됐다. 볼티모어의 힘 있는 타자들은 그런 류현진의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류현진 피칭은 두 가지 면에서 평소답지 못했다. 1~3번 타자들을 상대한 5회말을 삼자범퇴로 간단히 끝내는 등 볼티모어의 1~5번 타자들을 상대로는 5회까지 2안타만 허용했다. 1회에는 4번 맷 위터스를 병살로 잡아 위기를 넘겼고,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2번 타자 매니 마차도도 류현진 앞에서는 3타수 무안타로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하위타선을 상대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홈런을 뺏어낸 하디와 레이몰드는 6번과 8번에 배치된 타자였다. 물론 하디는 지난 2년 동안 52개의 홈런을 쏘아올린 무시할 수 없는 강타자다. 레이몰드도 좌투수 상대 장타율이 6할대를 기록할 정도로 좌완에게 강점이 있다.
그러나 하디는 이날 경기 전까지 시즌 타율이 0.190에 불과했고, 레이몰드도 정교함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다 드러난 상태였다. 철저한 연구 속에 대비책을 마련했다면, 상위타선을 효과적으로 봉쇄한 투수가 하위타선에 이렇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집중력도 하위타선을 상대로는 높지 못했다. 그 결과 홈런으로만 3점을 내줬고, 쫓기는 분위기에서 또 하위타선을 막지 못해 역전까지 허용했다. 평소의 ‘괴물’ 류현진에게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4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한 것도 류현진답지 않은 피칭 내용. 야구는 결국 투수와 타자의 호흡이다. 타자는 득점으로 투수를 지원하고, 투수는 안정감 있는 피칭으로 타자들에게 신뢰를 심을 수 있어야 시너지효과가 일어난다. 그런 면에서 류현진의 실점 타아밍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투수가 1회 흔들리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다. 볼티모어 선발 제이슨 해멀이 딱 그랬다. 해멀은 1회 안드레 이디어의 3점 홈런 등 2회까지 4실점, 자칫 대량실점으로 조기 강판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3회부터 안정을 되찾고 6회까지 다저스 타선을 2안타로 묶으며 승리투수 요건까지 갖추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해멀이 안정을 찾을 수 있던 것은 2회말 터진 하디의 2점 홈런 덕이다. 볼티모어 입장에서는 그 추격의 한 방이 시발점이 됐고, 흔들리는 투수를 진정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타자들의 도움을 얻은 투수가 신뢰할 수 있는 피칭으로 화답한 것.
반대로 다저스 입장에서는 쉽게 잡을 수도 있는 경기를 선발투수의 난조로 날리고 말았다. 침체에 빠져있던 다저스 타자들이 모처럼 1~2회에만 4점을 뽑아줬음에도 류현진은 그 점수를 지키지 못했다. 타자들의 지원에 화답하지 못한 투수, 쫓기는 입장이 된 다저스 타자들이 변변한 타격을 보여주지 못한 원인 중 하나다.
선발투수는 한 시즌 30번 이상의 등판 기회를 가진다. 그 많은 경기 중 5점 이상의 많이 점수를 허용하는 것이 몇 차례 나오는 것은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다. 그 정도 점수를 내주면서 6이닝 이상 책임졌다는 것은 류현진의 또 다른 강점이다. 이날의 부진이 류현진의 기량이나 능력 자체를 평가절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냉철히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특히, 이번 경기에서 류현진의 피칭은 이미 잡은 주도권을 지키는 피칭이 아닌, 상대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피칭이었다는 점에서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괴물답지 않은, 류현진답지 않은 피칭은 이번 한 번으로 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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