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허제 확대 적용 첫날…매수·매도 관망 ‘뚜렷’
지난 주말까지 뜨거웠던 잠실도 조용한 분위기
행정구역상 묶인 거여·마천은 울상·분노 감지
정부가 지난 19일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 일대 아파트에 대해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을 확대 재지정했다. 앞서 지난달 12일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 지역의 토허제를 해제한 지 불과 35일만이다. 규제 해제 이후 집값이 단기간에 급등하자 시장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한 달 여 만에 180도 선회한 것인데 일관성 없는 결정으로 정책의 신뢰도는 하락했고 시장의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혼란이 커지고 있는 서울의 집 문제를 권역별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주 목요일(정부의 토허제 확대 재지정 발표 다음날·20일)부터 주말(22~23일)까지 매도·매수자들이 몰려 정신이 없었다. 갭 투자(전세 낀 매매)를 포함한 매매는 지난 주말까지 대부분 다 계약했고 지금은 조용하다.”
토허제 확대 재지정 시행 첫 날인 지난 24일 오전 기자가 찾은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아파트 상가 공인중개업소들은 여느 때와 다르게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중개업소 벽면의 매물 정보란에는 가격을 지우고 단지와 평형만 적혀 있는가 하면 아예 문을 열지 않은 곳도 더러 있었다. 문을 열어 놓은 중개업소들에서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토허제 확대 재지정 발표와 적용 시점간 갭(Gap·간격)으로 인해 갭 투자 등의 수요가 한창이던 지난 21일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상가에서 만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지난 4일간(20~23일) 막차를 타려는 매도·매수자들이 몰려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는 토허제 재지정으로 양쪽 모두가 관망세로 돌아선 만큼 당분간 조용한 분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갭 투자가 원천 봉쇄된 점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주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대부분의 업소에서 최소 2~3건 이상 팔았을 것”이라며 “이제 전세 낀 매물은 다 들어갔고 현재 나와있는 매물은 매도자 입장에서 급한 물건이 아니다”고 말했다. 토허제 시행에 따른 호가 하락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도 “갭 투자를 포함한 매매는 지난주까지 대부분 다 계약했다”며 “이사철도 아니어서 전세 매물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송파구의 핵심 알짜 지역인 잠실은 지난 19일 토허제 확대 재지정이 발표되자 매도와 매수 수요자가 규제 시행을 앞두고 서두르는 모습이 가장 강하게 나타났던 곳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주일도 채 안 되는 기간에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 셈이다.
이같은 모습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강남3구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지난달 잠삼대청의 토허제 해제 이후 나타난 집값 상승, 그리고 확대 재지정 발표 이후 시행되기 직전까지의 기간 동안 늘어난 매도·매수 문의, 시행 첫 날 차분하다 못해 적막해진 분위기까지 판박이였다.
토허제 확대 재지정 발표와 적용 시점간 갭이 발생한 기간 잠삼대청 지역에서는 실제로 매물이 늘어났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잠실동은 지난 18일 매물이 1809건이었으나 21일 1955건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삼성동도 654건에서 681건, 청담동도 678건에서 691건으로 각각 늘어났다.
하지만 토허제 재시행으로 이들 지역에서 집을 매수하려고 했던 이들도 과감하게 매수한 이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관망세로 돌아선 모습이다. 특히 금융권 대출 규제 강화까지 겹치며 거래 위축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일부 중개업소에선 기존 집을 처분한 뒤 상급지로 갈아타려는 수요자들이 대출이 막힐까봐 계약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포착됐다.
이번 토허제 확대 재지정으로 울상인 곳들도 있다. 강남3구에서 상대적으로 외곽에 있어 그동안 집값 상승의 수혜를 덜 입었음에도 자치구 별로 이뤄진 이번 확대 재지정으로 토허제의 굴레에 휘말려 들어간 염곡·내곡동(서초), 수서동(강남), 위례·거여·마천(송파) 등이다.
이 날 기자가 찾은 거여·마천동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그동안 아파트 가격 상승에서 소외돼 왔는데 행정구역상 송파구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토허제로 묶인 것에 대해 분노의 기운도 감돌았다. ‘똘똘한 한 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근 실수요 시장으로 급격하게 재편되고 있는데 토허제라는 폭탄을 맞으면서 매매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거여동 인근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잠실이 토허제에서 풀리면서 집값이 오르자 그 수혜를 받으려고 하니 토허제로 묶였다”며 “실제로 가격은 오르지도 않았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주말에 보통 1~2건 정도 급매물이 나왔고 지난 주말에도 급매가 나왔는데 어제 계약이 됐다”면서도 “이제는 전세 매물도 거의 없을 정도로 조용해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토허제와 같은 조치는 정교함이 필요한 이른바 핀셋 규제로 이뤄져야 하는데 자치구 단위로 광범위하게 지정한 것에 우려를 나타낸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대표는 “토허제 지정 단위를 동이 아닌 구 단위로 지역 범위를 확대하는 바람에 거여동과 마천동처럼 집값이 크게 오르지도 않았음에도 행정구역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날벼락을 맞은 주민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매수자가 강제 입주를 해야 하니 전세물량은 감소하고 내년부터 입주물량까지 급감하기 때문에 전세가격은 더욱 강세가 될 것”이라며 “이들이 인근 주변지역뿐만 아니라 경기도 과천·판교 등 수도권 인접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풍선효과가 더욱 강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염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