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6당, 제명촉구 결의안 제출
"어떤 요인보다 큰 '악수(惡手)'"
정국 살얼음판 위인데 재 뿌린 격
탄핵 국면서 논란 키울 하나의 축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 한남동 관저 사수 집회를 벌였다는 이른바 '반공청년단' 예하 '백골단'의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을 주선한 사건과 행적을 두고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김 의원의 자멸에 가까운 실책을 두고 야권은 물론 보수 진영도 부정적인 분위기다. 기본적으로 '백골단'이 민주화 운동 탄압의 상징과도 같이 여겨지는 개념인 데다, 정치학자인 김 의원이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리 없다는 판단에서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 지지단체들도 '백골단'과의 연관성을 부인하는 가운데 정치권 관계자들은 백골단 파문을 맹목적인 충성과 터무니없는 공세와 같은 '맹윤(盲尹)'으로 규정하면서도 현시점에서 어떤 요인보다 큰 '악수(惡手)'가 됐다고 바라봤다.
앞서 김 의원은 지난 9일 오후 하얀 헬멧을 쓴 2030 청년들과 함께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 등장했다. 김 의원의 소개와 함께 시작된 이른바 '반공청년단 출범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우리는 최근 민노총의 대통령에 대한 불법체포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시위를 벌인 청년들"이라며 "우리 지도부는 조직의 공식 명칭을 반공청년단(反共靑年團)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급기야 "'백골단'은 반공청년단의 예하 조직으로 운영됨을 알려드린다"고까지 밝혔다.
'백골단'이란 1950년대 초반 등장했던 어용 정치단체를 말한다. 1950년 5·30 총선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집권여당(독립촉성국민회·국민당·여자국민당·청년단)이 전체 210석 중 57석을 획득하는 데 그치자, 1952년부터 집권 세력에 의해 조직된 '국회 해산' 요구 어용 집회가 만연했다. 백골단은 땃벌떼·민족자결단과 함께 어용단체의 일익을 담당해 비상계엄령 발동과 '부산 정치 파동'을 촉발했다.
김 의원은 이후 기자회견 주선 관련 논란이 불거지자 페이스북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윤 대통령 지지 청년들의 입장을 적극 수용해 금일 진행된 기자회견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며 "기자회견자에 대한 정보·배경을 파악하지 못한 채 주선한 데 대해 송구스럽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교수직을 역임한 김 의원이 이승만 정부 하에서 권력을 등에 업은 정치깡패와 같은 개념을 인식하지 못했던 판단부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정치학자 출신으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22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거치며 정치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정춘생 혁신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0일 국회 의안과에 김민전 의원 제명촉구 결의안 제출 후 기자들과 만나 김민전 의원이 '해당 단체가 백골단인지 몰랐다'는 취지로 해명한 데 대해 "어제 과거 기억소환이 되면서 너무 힘들었다"며 "어떻게 정치학 박사라는 사람이 모를 수 있느냐. 몰랐다면 뇌가 없는 것이고 알았다면 제정신이 아닌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김민전 의원의 행동이) 제2차 내란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의원 자질이 전혀 없다"고 했다.
야당은 김민전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김용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CBS라디오 '뉴스쇼'에서 "(김민전 의원이) 내란에 동조하는 비공식 라인들을 가동하려고 했던 게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고,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보고 있다"며 "국회 윤리위에도 제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보수 진영 관계자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정광재 국민의힘 대변인은 같은날 오전 YTN라디오 '뉴스파이팅'에 출연해 김민전 의원의 '반공청년단' 기자회견 주선 행보에 대해 "기자회견 철회가 아니라 사과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정 대변인은 해당 사안을 두고 여당 측에서도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면서 "내가 90년대 중반 (학번)인데 하얀 헬멧 쓴 사람을 볼 수 있었다"며 "그런데 1980년대에 대학 다니신 분이 백골단을 몰라 기자회견을 주선했다는 건 굉장히 놀랍다"고 쏘아붙였다.
서울 한남동에서 열리는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의 주축인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국본)와 신남성연대는 '백골단 창설 강력 반대'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해당 이슈와 무관함을 밝히고 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대국본은 "우리 단체는 백골단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음을 분명히 한다"며 "대국본은 철저히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입장을 표명해 왔으며, 어떠한 폭력 행위도 계획하거나 실행한 바 없다"고 거리를 뒀다.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도 유튜브 계정에 '백골단 창설 강력 반대' 입장문을 게시하고 "백골단 창설 움직임은 순수한 의도로 모인 시민들의 자발성을 왜곡하고, 불필요한 갈등과 폭력 사태로 이어질 위험이 높아 청년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며 선을 그었다.
상당수 관계자는 기자회견 이후 김 의원의 행적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로 김 의원은 논란의 '백골단' 기자회견 직후 긴급현안질문을 위해 본회의가 열렸던 국회 본회의장에서 눈을 감고 잠을 자는 듯한 모습이 지난 7월에 이어 또다시 포착됐다.
이미 김민전 의원 등은 지난 7월 채상병 특검법 표결 처리에 반대하며 무제한 토론이 시작된 지 1시간여 만에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잠든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논란이 인 바 있다.
이와 관련 한준호 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민전 의원이 이런 (백골단 기자회견) 대업을 이루고 나서 퍽 고단했는지,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 또다시 숙면을 취했다"라며 "오죽하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잠자는 국회의 백골공주'라고 별명을 붙였겠느냐"라고 비꼬았다.
정치권에선 비상계엄 선포와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정부·여당이 대외신인도 회복을 위해 근근이 국정을 지탱하며 살얼음판 위를 걷는 상황에 재를 뿌린 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이번 파문이 혼란한 정국 상황에 있는 여권에 어떠한 요인보다 큰 악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라며 "대행 체제로 국정을 하루하루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돌발적인 악재"라고 했다.
백골단 논란을 일으켰던 반공청년단은 백골단 이름이 논란이 되자 '해골단'으로 바꾸는 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보도되면서, 여권이 선을 긋고 있는 해당 이슈는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을 조짐이다. 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논란을 키울 하나의 축으로 사용되면서 좌우 진영 간 갈등과 대결이 격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맹윤이 '맹렬하게 윤 대통령을 옹호한다'는 뜻도 있지만, 뜻 그대로 '눈을 감는다(盲)'의 의미가 있다"며 "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한 김 의원이 민주주의의 기본을 몰랐을 리는 없다. 비판적 생각을 놓아버린, 말 그대로 눈을 감아버린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