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2020년 홈캠 속 배우자 대화 외부 유출…법원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아냐"
법조계 "우연히 자동녹음된 대화, 현행법상 금지되는 '몰래 녹음'으로 볼 수 없어"
"종료된 대화 녹음물로 재생, '청취' 아냐…현장서 실시간으로 엿들어야 처벌"
"유출 행위로 명예훼손 문제 발생한다면…민사상 손해배상 책임 인정될 수도"
홈캠에 담긴 자신과 가족의 대화 내용을 별거 후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아내가 제3자에게 누설했다며 남편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선 피고인이 대화를 일부러 녹음한 것이 아니라 홈캠에 우연히 자동녹음된 것이고, 이 녹음물을 재생하는 행위도 통신비밀보호법에서 금지하는 '청취'로 볼 수 없기에 무죄 판단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유출 행위로 인해 명예훼손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면 민사상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최모 씨의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지난달 29일 확정했다. 앞서 2018년 11월 남편 A씨와 결혼한 최씨는 2020년 12월부터 친정집에서 생활하면서 주말부부로 지냈다. 두 사람은 A씨의 외박 등 문제로 2021년 2월부터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고 최씨는 그 해 5월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상대방의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 이혼소송이 진행되던 도중 A씨는 홈캠에 녹화된 시댁 식구들의 대화 내용을 누설한 최씨의 과거 행적을 문제삼았다.
재판에 넘겨진 최씨에게 1심은 통비법 위반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별도 조작 없이 홈캠의 자동녹음 기능으로 대화가 녹음된 것을 근거로 "(최씨가) 추가로 어떠한 작위로서 녹음행위를 했다거나 그러한 행위를 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최씨가 녹음하지 않았더라도 청취하는 것으로 볼 수는 있다는 주장을 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도 "종료된 대화의 녹음물을 재생하여 듣는 것은 대화 자체의 청취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단을 확정했다.
전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종료된 대화의 녹음물을 재생해 듣는 행위도 통비법 상의 ‘청취’에 포함시키는 해석은 타인간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엿듣는 행위를 의미하는 ‘청취’의 범위를 너무 넓혀 금지 및 처벌의 대상을 과도하게 확장할 수 있다"며 "이에 재판부는 녹음물은 통비법에서 보호하는 대상이 아니라고 보아 무죄판결을 내린 것이다. 해당 판결은 통신비밀법상 ‘청취’의 의미가 쟁점이 되어 청취의 의미를 확인한 데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몰래 일부러 녹음한 것이 아닌 홈캠에서 우연히 자동녹음된 것이라면 통비법상 녹음으로 보기 어렵다. 대법원은 '청취는 현장의 대화를 청취하지 않은 이상 나중에 녹음된 대화를 재생시켜 들은 것은 청취라고 보기 어렵다'고 원칙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며 "다만, 애초부터 일부러 녹음했다면 통비법 위반이 문제되고 녹음 내용을 외부에 유출했다면 명예훼손 등의 추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자동 녹음 기능의 홈캠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악용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이혼 사건에서 홈캠이 증거로 자주 활용되는 까닭에 수사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며 "이혼 사건에서 증거로 제출된다면 과연 자동녹음 기능을 활용하여 녹음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형사고소가 빈번해 질 것이다"고 부연했다.
이동찬 변호사(더프렌즈 법률사무소)는 "통비법에서는 공개되지 않은 대화를 몰래 듣는 행위를 죄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의 배우자가 애초에 홈캠 설치를 동의했기에 자신의 대화가 홈캠에 녹음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따라서 녹음된 내용을 다시 듣는 행위가 '청취'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우선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직접 대화를 듣는 것이 아닌, 녹음된 파일을 다시 듣는 행위는 통비법상 청취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개념을 명확히 한 판례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