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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떠나는 의사들, 우리도 할 말은 있다 [데일리안이 간다 31]


입력 2024.02.21 05:04 수정 2024.02.21 05:04        김인희 기자 (ihkim@dailian.co.kr)

20일 데일리안이 만난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 환자들 "기본 한 시간씩 진료 지연돼 불편"

"전공의들 이탈하면서 수술일정 연기된 환자 부지기수"…전문의들 "전공의들 떠나라고 했다"

"정부, 총선 앞두고 우호적인 국민여론 등에 업고 막가피식으로 밀어붙혀…좀 더 대화했어야"

"이대로 강대강 대치 계속 이어가다가는 국민들, 환자들만 피해볼 것…정부, 출구 만들어 줘야"

20일 오전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서울대병원. 신경과 외래진료 대기실에 환자들이 꽉 들어찼다.ⓒ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전국 종합병원의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부터 병원을 떠나고 있다. 당장 이날부터 의료현장에서 진료지연 사태가 속출하고 있고, 환자들의 불편은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전공의들의 이탈이 장기화될수록 외래환자는 물론 입원환자들의 치료와 긴급수술에도 차질이 생겨 의료대란은 현실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날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11시 주요 수련병원 100곳 수련병원 전공의의 55% 수준인 6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특히 '빅5'로 불리는 상급 대형병원 5곳(서울대학교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 비율은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외래병동의 진료대기현황판. 짧게는 25분, 길게는 한 시간 가까이 진료가 지연되고 있다.ⓒ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내원 환자 수는 그대로인데…진료와 처치 모두 지연


이날 오전 데일리안은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에 위치한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외래진료 병동에 들어서자 많은 진료 대기 환자들이 자리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특히 고령 환자 비율이 높은 신경과와 류마티스내과에는 내원환자와 보호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발디딜틈이 없었다.


한달에 한 번 정도 신경과 진료를 받으러 온다는 우모(71·남)씨는 진료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냐는 질문에 "평소에도 20분 정도 늦는 것은 예사였지만 오늘은 유난히 진료 대기줄이 안 빠져서 벌써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다"며 "레지던트(전공의)들이 사표를 냈다더니 그 영향인가"라고 되물었다.


바로 옆 정형외과 외래진료실도 사정이 비슷했다. 이날 정형외과 외래진료에 나선 전문의는 4명인데, 모두 짧게는 25분, 길게는 한시간 가까이 상담이 지연되고 있었다.


이 날 따라 평소보다 많은 환자가 방문해 진료가 지연됐을 가능성도 있을까 하여 진료접수 키오스크 안내 직원에게 물으니 "평소와 비슷한 숫자"라고 답했다. 결국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영향을 미쳐 외래진료의 지연 현상을 심화시킨 것이었다.


관절통증으로 한 달 전부터 정형외과 진료를 예약해 이날 내원한 박모(47·여)씨는 "한 시간 기다려서 교수(전문의) 상담과 X선 촬영까지 하고 퇴행성 관절염 질환으로 진단돼 약물주사치료를 받기로 했다"며 "진단 이후 주사 처치를 받기까지 또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고 전했다.


병원의 진료는 전문의의 환자 상담과 진찰이 먼저 이뤄지고 증세와 병명이 확인되면 전문의의 지시에 따라 전공의들이 처치를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전문의가 진찰을 마쳤더라도 전공의들의 처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환자들은 병원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전공의 자리 오래 비우면 입원환자들까지 위험


이날 오후에는 서대문구 신촌동에 있는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이 곳에서도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 영향으로 외래환자들의 진료 지연이 발생하고 있었다. 여기 입원환자들 역시 이날 오전 회진부터 전공의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담낭염 진단을 받고 지난주 입원해 수술을 받은 뒤 회복중인 강모(58·남)씨는 "오늘 아침 교수 회진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긴 했는데 같이 들어오던 의사들이 확 줄었다"며 "난 수술이 잘 끝나서 간호사들만 잘 해줘도 별 불편한 게 없는데 의사에게 직접 처치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아무래도 영향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수술을 지난 금요일에 받았는데 며칠 늦었으면 수술을 못 받을 뻔했다"며 "내가 입원한 병동만 해도 수술 일정이 뒤로 밀린 환자들이 몇 명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20일 서울대병원의 소아청소년병동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데일리안 김인희 기자
◇의사들 "정부에서 의사들을 '정치범'으로 내몰고 있어"


하지만 전공의들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전문의들도 이들을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빅5 병원 가운데 한 곳에서 2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한 교수는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전공의들에게 너희들은 떠나라고 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환자들과의 약속이 돼 있어 못 떠나지만 너희들이 떠나는 것은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설사 의사들이 이기주의로 보이고 못마땅하더라도 정부가 좀 더 의사들과 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총선 앞두고 우호적인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막가파식으로 밀어붙히고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은 정부가 출구를 만들어 줘야 한다. 이대로 강대강 대치를 계속 이어가다가는 국민들, 환자들만 피해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천우리병원의 최성환 진료부장은 "전공의들의 이탈이 장기화될수록 수술 여건이 급속도로 악화될 것이고 이로 인한 의료사고 역시 대폭 늘어날 것"이라며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의사처벌법'을 만들어서 수술실에 CCTV 설치하고 의사의 입지를 대폭 줄여놨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의사가 자기 면허를 걸고 위험한 수술을 하려고 하겠느냐"고 한탄했다.


수도권의 A 대형병원 전문의는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면 전공의들의 의사면허 박탈까지 고려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될 경우 의사 국가시험 재응시까지 막을 가능성이 높다"며 "왜냐하면 이번 단체행동에 참여하는 전공의들을 정부의 정책에 맞서는 '정치범' 성격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다른 B 대형병원 전문의도 "이번에 전공의들이 이탈하면 PA간호사(수술실 간호사 또는 임상전담 간호사)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하는데, 이건 간호사 단체에서는 환영할 일이지만 의료사고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라며 "의사들은 의료사고를 줄이는 데 집중하자는 것이고 그래서 무리하게 의대 정원을 늘리면 안 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김인희 기자 (ih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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