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책임론' 목소리 높이는 친문
비대위 구성·전당대회 시점 '신경전'
당권 놓고 '일전 불사' 긴장감 고조
끝내 당권 놓친다면…다음 수순은
170석 원내 1당 더불어민주당이 혼돈에 휩싸였다. 2016년 총선·2017년 대선·2018년 지방선거·2020년 총선까지 전국 단위 선거 4연승의 영광스럽던 시절을 뒤로 하고, 2021년 보궐선거·2022년 대선·2022년 지방선거까지 3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성자필쇠(盛者必衰)는 역사의 이치라지만 '질서 있는 후퇴'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3·9 대선 패배 직후에는 이재명 의원이 기록한 0.8%p라는 근소한 격차에 위축됐던 친문(친문재인) 의원들이 6·1 지방선거 참패 직후 부쩍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친문 진영의 당면 과제는 △비대위 구성 과정 주도 △전당대회 전 '이재명 책임론' 점화로 보여진다.
비대위가 8월 전당대회까지 활동한다고 하면 불과 두 달여다. 2014년 9월 출범해 이듬해 2·8 전당대회까지 활동했던 '문희상 비대위'가 4개월여 동안 전당대회 관리만으로도 바빴던 것을 고려하면, 새로 출범할 비대위가 혁신 활동을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전당대회를 관리할 '관리형 비대위'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고 비대위 구성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희상 비대위'는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시 대권주자였던 문재인 당대표 후보에게 유리한 여러 가지 결정을 내렸다. 일반국민여론조사에서 '지지 후보 없음'이라는 응답을 분모에서 제외하는 등의 결정이 그것이었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중도 사퇴한 후보의 득표를 분모에서 빼버렸던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때와 유사한 결정이었다고 보면 된다"며 "이번에도 비대위가 전당대회 룰을 확정할 때 대권주자인 이재명 의원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기 때문에, 친문 진영이 이를 견제하며 비대위 구성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게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기 전당대회를 저지하고 8월 전당대회까지 남은 기간 동안 3·9 대선, 6·1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과 책임을 충분히 논의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과제다. 이를 통해 '이재명 의원은 당권 도전에 나서서는 안될 사람'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수도 있다. 홍영표 의원은 최근 "(이재명 의원이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는 게 합리적이라고) 그렇게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그렇다고 (이재명 의원이 전당대회에) 나오지 않을 사람은 아니지만, 바로 링에 올라가서 맞붙으면 체급 차이 때문에 승부가 되지 않는다"며 "미리 선거 패배 책임론으로 이재명 의원의 체력을 충분히 빼놓고, 그 뒤에 '이제 링에 올라오라'고 하는 전략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신당 창당하려면 대권주자 있어야"
심상찮은 호남 바탕으로 이낙연 구심?
"광주 투표율 37.7%는 민주당 탄핵"
귀국 시점 맞물릴 4·5 재보선이 관건
다만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렇게까지 하더라도 친문 당권주자가 이재명 의원과 싸워 당권을 차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상당하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8월 전당대회에 나설 것으로 거론되는 친문 당권주자들의 이름을 열거하더니 "(이재명 의원을 이기기에는) 택도 없다"고 일축했다.
친문 진영이 끝내 당권을 놓친다면 어떻게 될까. 8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당대표는 2024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한다. 최근 "이재명 대표가 당대표가 되면 당이 쪼개질 수 있다"며 분당론(分黨論)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신당을 창당하려면 의원들만 모여서는 의미가 없다. 신당 창당의 핵심 요소는 구심점이 될 대권주자의 존재다. '정치 9단'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신당을 창당하려면 국민이 바라볼 수 있는 대선후보가 있어야 한다"고 언명했다.
'친문 신당'에서 '국민이 바라볼 대선후보'의 역할을 맡을 인물은 이낙연 전 대표일까. 이 전 대표는 6·1 지방선거 참패 직후 "민주당은 대선을 지고도 패배를 인정하는 대신 '졌지만 잘 싸웠다'고 자찬하며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방선거를 치르다 또 패배했다"며 "광주 투표율 37.7%는 현재의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탄핵"이라고 지적했다.
광주 투표율을 지목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호남의 전직 중진의원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표출된 호남의 실망감이 큰 것 같다"며 "아예 호남 사람들이 투표를 안해버렸다"고 전했다. 호남 41개 기초단체 중 무소속 후보가 10곳에서 당선됐다. 호남에서 내리 4선을 하고 전남도지사까지 지낸 이낙연 전 대표가 정치적 기반인 호남의 민주당에 대한 실망 여론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내년 4·5 재선거가 공세 포인트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이상직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에 따른 전북 전주을 재선거가 내년 4월 5일에 치러진다. 국민의힘에서는 이 지역구에서 당선된 적 있는 정운천 의원이 몸을 푸는 모습이라, 선거 판세가 녹록치는 않아보인다.
이재명 의원이 당대표가 돼서 처음 치르는 재·보궐선거인데, 호남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패배한다면 정치적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새정치연합 분당도 문재인 대표 체제였던 2015년 4·29 재·보궐선거 당시 광주 서을에서 천정배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던 게 기폭제가 됐다.
7일 출국하는 이낙연 전 대표는 "(귀국 시점을) 어떻게 알겠느냐만은 1년짜리 비자를 끊어서 간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 본인도 내년 4·5 재선거 직후 정도를 귀국 시점으로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신당 '현재형 대권주자'만이 견인 가능
이낙연, 추동력 있는 대권주자 맞는가
나이는 차치하고서도 지지율이 중요
"차기 대권 여론조사가 지표될 것"
이낙연 전 대표에게는 정치적 승리의 경험도 있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이 분당될 때, 이 전 대표는 열우당에 가지 않고 민주당에 남았다. 이후 대선을 한 해 앞둔 2006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광주시장·전남지사를 당선시키고 호남 41개 기초단체 중 20개를 석권했다. 전북지사 1곳과 9개 기초단체에서 승리하는데 그친 열우당은 직후 백기를 들고 민주당과의 재통합에 나섰다.
총선 한 해 전인 2003년 분당, 2004년 총선,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당시의 타임테이블과, 20년 후인 지금의 정치적 스케쥴은 공교롭게도 완전히 일치한다. 차이점은 2004년 총선 당시 민주당은 대통령이 직접 만든 집권여당 열우당을 상대하느라 힘겨웠지만, 지금 친문과 친명(친이재명)이 쪼개진다면 그것은 야당과 야당의 대결이 된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의 최대 관건은 과연 이낙연 전 대표는 지금 현재 대권주자냐는 점이다. 신당은 '과거에 대권주자였던 사람'으로는 만들고 이끌어갈 수가 없다. 지금 현재 대권주자인 사람만이 견인할 수 있다.
바른미래당은 손학규 대표가 과거에는 분명히 대권주자였지만, 당시에는 국민이 차기 대권주자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유지될 수 없었다. 정동영 대표가 이끌었던 민주평화당도 마찬가지다.
나이의 문제는 아니다. 이낙연 전 대표는 1952년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960년생이며, 차기 대선에서 국민의힘 주자로 나설 것이 유력한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1961년생, 안철수 의원이 1962년생,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964년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전 대표의 나이가 많은 것은 일단 사실이다.
하지만 역대 사례를 보면 1946년생인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한 직후 1941년생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돼 대통령의 나이가 뒷걸음질 친 적이 있다. 또 1924년생 김대중 대통령은 70대 중반의 나이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낙연 전 대표는 5일 김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는데, 시사하는 점이 있어보인다.
결국 국민이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관건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 지지가 쏠리면 자신이 대통령 꿈을 전혀 꾸고 있지 않았더라도 대권주자가 되고, 나아가 대통령도 된다"면서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아무리 스스로를 대권주자라고 자칭하며 대선후보 경선에 몇 번을 뛰어들더라도 (신당을 추동할 수 있는) 대권주자는 아닌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새 정부 출범 직후라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가 아직 없지만 언젠가는 시작될 것"이라며 "거기에서 이낙연 전 대표의 지표가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따라, 친문 진영도 이 전 대표를 중심으로 모여들든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든지를 결정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