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아이파크 8개동 전면 철거 후 재시공
입주예정자 "늦었지만 통 큰 결단에 감사"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가 발생한 지 100여일 만에 '전면 철거 후 재시공'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사고 이후 안전과 관련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팽배해진 데다 자칫 이번 사고로 등록말소 행정처분까지 내려질 위기에 내몰리면서 신뢰회복을 위해 강수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4일 정몽규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 용산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주예정자의 요구이신 화정동의 (화정아이파크) 8개동 모두를 철거하고 새로 아이파크를 짓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안전과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회사의 존립가치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조금이라도 안전에 관한 신뢰가 없어지는 일이 있다면 회사에 어떠한 손해가 있더라도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화정아이파크는 1, 2단지로 나뉘며 사고가 발생한 201동이 속한 2단지와 1단지 모두 4개동씩 총 8개동으로 이뤄져 있다. 아이파크에 대한 불안감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다.
HDC현산은 그동안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수습을 위해 무너진 201동만 철거, 201동이 포함된 2단지 철거, 1·2단지 모두 철거 등 3가지 안을 놓고 재시공 여부를 검토 중이었다.
1·2단지 전체 정밀안전진단을 거쳐 관련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었으나 돌연 전면철거를 결정한 데는 붕괴사고 논란이 계속해서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탓으로 보인다. 기존 수주사업장에서도 시공계약 해지 요구가 잇따르고 있어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기업가치 회복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셈이다.
사고 발생 이후 HDC현산은 경기 광명11구역, 광주 운암주공3, 부산 서금사A, 경기 뉴타운맨션삼호, 경기 곤지암역세권, 대전 도안아이파크시티 2차 등에서 시공계약 해지 절차를 밟았다.
정 회장은 전면철거 후 재시공 결정 배경에 대해 "가장 빨리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며 "힘든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준공까지 70개월, 약 4000억 손실 추산
"국내 첫 사례…2차 피해 없도록 해체공법 선정 관건"
HDC현산은 주변 민원과 철거방법, 인허가 과정 등을 포함해 전면철거 후 재시공(준공)까지 70개월(약 5년8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당초 올 12월께 입주 예정이었으나 이에 따라 2028년 이후에나 입주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건축비 및 입주지연 보상금, 주거지원비 등을 포함해 추가 투입될 비용은 약 4000억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HDC현산은 지난해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손실로 1750억원을 회계상 선반영한 상태다. 올해 추가로 2000억원을 비용 처리할 예정이다.
화정아이파크 도급액이 2557억원, 붕괴 직전 공정률이 60% 수준이란 점을 고려하면 1500억원 이상의 공사비가 투입된 셈인데 전면철거 결정에 따라 이는 고스란히 손실로 잡히게 됐다.
HDC현산은 이번 결정에 따라 입주예정자들과 조만간 관련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관련 소식을 접한 입주예정자들은 HDC현산의 이 같은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승엽 화정아이파크예비입주자협의회 대표는 "전면철거 후 재건축을 요구하면서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정몽규 회장의 통 큰 결단에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주거지원 및 피해보상 절차도 결단력 있게 해주길 바란다"며 "안전한 집에 살 수 있다면 70개월보다 더 긴 시간도 버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고층 건물 전면을 철거 후 재시공한 국내 사례가 없는 만큼 주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공법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단 견해다.
김규용 충남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인허가 등 행정적인 절차는 크게 어렵지 않겠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아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별도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환경적인 피해, 2차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철거할 수 있는 공법을 선정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다만 현재 기술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며 "앞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약간의 보강을 해서 재시공하겠다는 접근보다는 HDC현산에서 전향적으로 잘 판단한 것 같다. 이 정도 대책이 나올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