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매트릭스’가 돌아왔다. 제목도 부활(리저렉션, Resurrection)이다.
왜? 어떻게? 하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한 게, 1999년에 시작해 2003년 마무리한 ‘매트릭스’ 3부작으로 시리즈는 분명 막을 내렸다. 남자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 분)가 사랑해 마지않는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 분)가 이미 죽었고, 네오와 데우스 엑스 마키나(성게 머리에 아가 얼굴 형상을 한 기계의 신)의 공조 아래 손오공처럼 분신술을 쓰며 현실 세상도 매트릭스 세계도 파괴하려는 스미스(휴고 위빙 분)를 터뜨리며 평화를 얻었다.
3편 말미에서 예언자 오라클(글로리아 포스터 분)은 “이 평화는 가능한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1) 이미 천국과 지옥, 선택과 자유의지가 부여된 현실이라는 ‘세 번의 시온’을 경험했고 2) 다섯 명 구원자의 실패를 거쳐 6번째 구원자(The One) 네오에 의해 찾아진 평화인데다 3) 매트릭스 설계자 아키덱트(일종의 메타 프로그램, 헬무트 바카이티스 분)뿐 아니라 아키텍트와 대척점에 서서 질서를 흩트리는 게 주 역할인 오라클(이 또한 일종의 메타 프로그램)도 바라마지 않은 평화이기에 ‘영원한 평화’라고는 확언하지 않았으나 매트릭스 3부작의 마침표는 확실히 찍힌 터였다.
이런 마당에, 트리니티가 다시 등장하고 인류의 구원자로서 매트릭스를 파괴할 네오가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어안이 벙벙했다. ‘존 윅’의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노숙자처럼 인생과 세상을 방랑하던 키아누 리부스가 할리우드에 돌아온 김에 인기 시리즈 ‘매트릭스’도 다시 만들고 트리니티도 부활시키는 ‘그들만의 계획’을 짠 것인가, 의심의 눈초리부터 가졌다.
4편 ‘매트릭스: 리저렉션’이 한창 개봉 중이므로 그들의 부활 작전을 상세히 알리지는 않겠다. 다만, 그 결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착상’ 자체는 매우 그럴 법하다고 말하고 싶다. 많이들 꿔 봤을 것이다. 가위눌리는 꿈, 그것도 겹겹의 가위눌리는 꿈. 드디어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났다고, 몸의 마비를 풀고 깨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꿈속. 꿈에서 깨어나는 꿈을 꾼 것일 뿐이고 아직 현실의 나는 마비 상태에 있는 상황. ‘매트릭스’ 4편은 일종의 그런 상황이다.
목숨을 걸고 죽어라 평화를 일궜는데, 그게 만일 내가 디자인 한 게임 1~3편의 내용이라면 어떨까. 게임 디자이너 토마스 앤더슨(키아누 리브스 분)은 매트릭스 1~3편이 게임 내용인지, 내가 겪은 일인지 헷갈린다. 또, 게임 디자이너인 지금이 현실인지, 이 또한 또 다른 겹의 매트릭스이고 나는 이마저도 깨버리고 진짜 현실로 탈출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매트릭스’ 1편에서 보면 사람들은 매트릭스 세상에 갇혀 있다. 배양액 가득 찬 작은 기구에서 태어나 온몸에 전선을 꽂은 채 평생 꿈만 꾸고 있다. 20세기 말에 맞춰진 꿈속 세상이 진짜인 줄 알고, 꿈속이 현실인 줄 알고 살아간다.
‘산다’는 말이 무색한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하나다. 인간은 기계와의 전쟁에서 패했고, 기계가 주인인 2099년 세상에서 기계들은 인간의 꿈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기계 세상의 존속을 위해, 기계들의 배터리 유지를 위해 인간은 아무런 물리적 활동 없이 꿈만 꾸며 누워 있는 것이다. 배양기구 안에 누워 있는 수많은 인간의 모습, 그 자체로 ‘매트릭스’ 1편은 충격이었다.
메시지는 충격이었지만, 1999년에 개봉한 영화를 22년이 지난 지금 봐도 조금도 ‘옛날 영화’ 같지 않을 만큼 영상은 파격적이고 액션이 짜릿하다. 2021년 개봉한 영화라 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의 위용은 되레 ‘현재’일 때보다 ‘과거’가 됐을 때 드러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개봉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이렇게도 신선하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SF 액션 영화의 진일보다, 라는 생각에 흥분했다. 인간이 아무런 오프라인 활동 없이 온라인 세상에 접속해 있는 모습이 주는 ‘경고’는 오히려 2021년 오늘, 유의미하다.
‘매트릭스’ 1편에서 토마스 앤더슨은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 밤에는 해커로 활동한다. 이 모든 것이 매트릭스 안에서 자신이 꾸는 꿈임을 모르는 앤더슨이지만, 그 간극에 대해 의심을 지니고 추적한다.
이미 꿈에서 깨어난 자,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는 앤더슨이 오라클 예언에 의해 예고된 구원자 네오라고 생각하고 그를 매트릭스에서 구출해 현실로 데려온다. 앤더슨은 기계의 지배 아래 매트릭스에 갇혀 있는 세상이 ‘현실’임을 알게 되고, 자신이 구원자로 예고되어 있다는 것에 부담감과 의구심을 갖는다.
의구심과는 별도로 보통 사람과는 다른 빠른 적응력과 발전을 보이는 네오. 트리니티가 사랑에 빠지는 자가 구원자라는 예언, 모피어스를 구할 것인가 버릴 것인가의 기로에서 모피어스를 구하는 게 구원자라는 예언에 들어맞는 행보를 통해 구원자로 확인받는다.
여담이지만, 22년 만에 ‘매트릭스’ 1편을 다시 보니, 영화 인트로에서 초록 글씨로 쏟아져 내리는 게 숫자만이 아니라 일본 글자 히라가나임이 눈에 들어온다. 네오가 가상세계 속에서, 모피어스와의 대련을 통해 훈련받는 장소도 바닥이나 문의 격자가 일본풍임이 보인다. “나 이제 쿵푸를 안다”는 네오의 말에서는 중국이 연결된다.
2편에서 오라클을 지키는 라파엘(예성 분)이 하는 무술도 쿵푸고, 모피어스가 입은 옷도 중국풍이고, 네오가 황비홍 같은 옷을 입고 황비홍이 잘 쓰던 장대를 이용해 스미스들을 상대하는 장면 역시 중국식 무술영화를 연상하게 한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배우 등 K-콘텐츠에 주목하는 현재와 비교하니 격세지감이다. 20년 동안 상전벽해, 뽕밭이 바다가 될 만큼 대단한 성장이 있었음이 여실히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