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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도 부족해 이사회까지?…기업 경영 위협하는 '노동이사제'


입력 2021.12.21 11:13 수정 2021.12.21 11:13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노사갈등 이사회까지 확산…기업 전략적 의사결정 지연

미래 위한 투자, 주주 배당보다 노조 이해관계 중시 가능성

주주자본주의 체제에 부적합…일부 도입국도 축소 추세

손경식 경영자총협회 회장이 20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에서 송영길 대표를 만나고 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과 국회를 찾은 손 회장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과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 등 노동법안 입법을 중단해줄 것을 요청했다. (공동취재사진)ⓒ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정치권의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관련 법안 추진을 놓고 재계에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당장은 ‘공공기관’에 한해서만 적용된다고 해도, 일단 도입되면 민간기업까지 적용하라는 압력이 이어져 기업 경영에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될 것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전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찾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을 차례로 만나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손 회장은 이 자리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대립적인 노사관계 상황에서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이사회가 노사 갈등의 장으로 변질될 뿐 아니라, 효율적 의사결정의 지연, 정보 유출 등 많은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 회장의 국회 방문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데 이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까지 이에 찬성 입장을 보이면서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민주당 의원 5명 노동이사제 관련 법안 발의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의결권을 가지고 이사회에 참여하는 제도다. 현재 5명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동이사제를 공공기관에 도입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각각 발의해 놓은 상태다.


박주민, 김주영, 김경협 의원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서영교 의원은 ‘지방공기업법 개정안’을, 이수진 의원은 ‘근로자대표제 및 경영참가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내용 면에서 가장 급진적인 것은 박주민의원이 내놓은 법안이다. 1년 이상 재직한 근로자 중 근로자들의 투표로 선출된 2인 이상을 사내 상임이사로 임명토록 하며, 노동이사로 임명된 기간은 휴직한 상태로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노동이사의 지위를 사내 상임이사로 명시한 것이나 숫자를 2인 이상(500인 미만 기관의 경우 1인 이상)으로 하도록 한 것 모두 해당 기관 경영에 있어 노조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미칠 수 있는 안이다.


한국노총위원장 출신 김주영 의원이 내놓은 안은 1년 이상 재직한 근로자 중 근로자대표가 추천하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은 1인 이상을 사내 비상임이사로 선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이사 숫자는 박주민 의원안보다 적지만, 선임 방식을 ‘근로자대표’ 즉 노조위원장 추천을 통해서도 할 수 있도록 해 노조가 이사회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노동이사 선임 대상자를 ‘근로자대표가 추천한 1인 이상’이라고 명시한 김경협의원안도 마찬가지다.


서영교의원안은 지방직영기업에서 1년 이상 재직한 근로자 중 근로자대표가 추천하거나 근로자의 투표로 선출된 2인 이상을 사내 비상임이사로 선임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적용 범위 면에서는 이수진의원안이 가장 급진적이다. 이 의원이 제출한 법안은 근로자대표 또는 과반수노조의 대표가 이사회에 출석해 의견 진술을 할 수 있으며, 근로자의 투표로 선출된 1인 이상을 사외이사로, 상근감사 중 1인을 근로자 추천 감사로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다른 법안들과 달리 이수진의원안은 공공기관이나 지방공기업 운영과 관련된 기존 법안을 개정하는 게 아닌, ‘근로자대표제 및 경영참가 등에 관한 법률’를 제정하는 방식이라 민간 기업까지 아우른다는 점에서 재계의 우려가 더욱 크다.


재계에서는 공공부문의 노동이사제 도입은 민간기업에 대한 도입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민간기업까지 확대될 경우 기업의 부담은 크게 가중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노조가 상급단체에 가입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같이 활동하고 있어, 공공부문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이 의무화된다면 민간부문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 노동계에서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민간 부분까지 노동이사제를 확대하기 위한 사전 단계로 보고 있다. 심지어 이수진의원안이 통과될 경우 그런 단계를 거칠 필요도 없이 민간 기업까지 노동이사제를 도입해야 한다.


"노동이사제 도입시 이사회까지 '투쟁의 장' 될 것"


재계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을 반대하는 가장 큰 근거는 대립적이고 갈등적인 국내 노사관계 현실이다. 세계경제포럼이 지난해 발표한 2019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노사협력 부문은 141개국 중 130위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이사제가 도입될 경우 이사회는 노조측 대표자가 경영진을 윽박지르는 ‘투쟁의 장’이 될 것이라는 게 재계의 우려다.


노동이사가 회사의 중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투자나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배당보다는 임금인상이나 복지확대, 업무부담 완화 등 근로자들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노조위원장 추천이건, 근로자 투표건 간에 태생적으로 그런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노동이사가 노조측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일도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총 관계자는 “이사회는 경영목표, 예산, 운영계획 등 경영계획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최종적인 의사결정기구인데, 노동이사는 노조측 입장만 대변해 이사회 운영의 기본방향과 충돌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의사결정 방향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중요한 경영사항에 대한 신속하고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시스템에 노동이사제 도입한 국가 없어"


우리나라와 같이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체제에 근간을 두고 있는 국가에서는 노동이사제가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주주자본주의는 경영의 중심을 주주가치 극대화에 두는 것을 말한다.


실제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이사회에 노동이사가 참여하는 게 주주자본주의와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해외 입법례.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국가는 주주 외에 근로자, 채권자, 지역사회를 위한 기업경영을 목표로 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기반의 일부 유럽국가들 뿐이다.


2019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조사결과에 따르면, 노동이사제를 법률로 의무화하고 있는 국가는 조사 대상인 49개 주요 국가 중 14개에 불과하며, 그 중 중국을 제외하면 13개국 모두가 유럽국가다.


노동이사제 도입국 중에서도 독일, 체코 등 6개국에서는 실질적 경영이사회가 아닌 감독이사회에만 노동이사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경영 관련 사안을 결정하는 집행이사회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홍준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최근 온라인 플랫폼 ‘청년의꿈’ 내 ‘홍문청답’ 코너에 “독일에서는 집행기관 이사제도와 감독기관 이사제도가 있다는데, 노동자들은 감사기구인 김독기관 이사회에만 들어가고 우리처럼 집행기관인 이사회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는 글을 올리며 노동이사제에 찬성한 윤석열 후보를 간접적으로 비난했다.


일본의 경우 2014년 회사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노사공동결정제도 도입을 결정했지만 노동법학자들과 경제계의 반대로 철회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럽국가에서도 정치·경제적 상황 변화에 따라 노동이사제가 축소·폐지되는 추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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