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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봇, 머스크가 부활시킨 펩시맨? [박영국의 디스]


입력 2021.08.27 11:40 수정 2021.08.27 11:50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수십 년 로봇 개발한 업체들도 휴머노이드 완벽 구현은 시기상조

로봇 개발 경험 전무한 테슬라가 1년 내에 구현 힘들어

미국 현지 매체들도 '무리수', '비현실적' 지적 잇달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휴머노이드 테슬라봇 복장으로 분장한 무용수를 소개하는 모습(왼쪽), 롯데칠성음료의 펩시맨 퍼포먼스. ⓒ테슬라 AI 데이 영상 캡처/뉴시스

울트라맨, 우뢰매, 펩시맨. 사람에다 라텍스 한 장 뒤집어 씌워 간단히 구현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다. 온갖 혁신 기술로 가득한 요즘 시대에 더 이상 그런 유치한 캐릭터는 등장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됐지만 ‘혁신의 아이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지난 19일 테슬라의 AI(인공지능) 기술 이벤트 ‘테슬라 AI 데이(Tesla AI Day)’에 울트라맨, 펩시맨의 뒤를 잇는 테슬라봇을 등장시킨 것이다.


흑백의 단출한 디자인(뭔가 급히 만들어진 듯한)의 라텍스를 뒤집어쓰고 등장해 막춤을 선보인 이른바 ‘테슬라봇(Tesla Bot)’은 세계인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물론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의 선두주자로 도약하거나 스페이스X가 재활용 로켓 시대를 열었을 때와는 다른 의미의 놀람이다.


이날 머스크는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을 탑재한 이 휴머노이드를 내년에 실제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동안 테슬라 전기차와 스페이스X 로켓을 통해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 왔던 머스크였기에 로보틱스 분야에서도 뭔가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점이 내년이라니.


테슬라봇 제원 소개 모습. 테슬라 AI 데이 영상 캡처

머스크가 내년에 프로토타입으로 내놓겠다고 발표한 테슬라봇은 키 173cm, 무게 57kg에, 2족 보행을 하고 여러 개의 손가락을 가진, 사람과 거의 유사한 외양에 사람 대신 자동차 수리나 쇼핑 등의 작업을 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다.


그동안 로보틱스 분야에 뛰어들었던 유수의 기업들이 과연 미적 감각이나 활용도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이런 형태의 휴머노이드를 만들지 못했던 것일까.


일본 혼다는 1996년 ‘아시모’라는 휴머노이드를 선보인 뒤 20년 이상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도 인간과 유사한 형태와 기능은 구현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 2018년 굳이 인간형 로봇에 집착하기보다는 좀 더 실용적인 로봇 개발에 집중하겠다며 아시모 개발을 중단했다.


토요타는 2005년 휴머노이드를 첫 선보였으나 여전히 토요타의 로봇 시리즈 ‘파트너’는 인간 활동을 보조하는 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국내 현대자동차그룹도 오랜 기간 작업 현장의 근로자들이나 하반신 마비자들이 착용할 수 있는 작업용‧의료용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해 왔고, 지난해에는 본격적으로 로보틱스 사업 진출을 선언했으나 자체 기술력으로 단기간 내에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만들어내겠다는 허황된 비전을 제시하진 않았다.


대신 휴머노이드와 4족보행 로봇 등에 필수적인 보행 제어 알고리즘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해 로보틱스 R&D 역량을 단숨에 업그레이드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2족보행 로봇 아틀라스. ⓒ현대자동차그룹

인간과 유사한 모습과 동작을 하는 휴머노이드의 존재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그걸 구현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을 과거의 사례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머스크는 그걸 단 1년 만에 해내겠다고 장담했다. ‘테슬라 AI 데이’를 지켜본 이들이 놀란 것은 ‘혁신에 대한 감탄’이 아닌 ‘무리수에 대한 경악’의 표현에 가깝다.


지금껏 로봇 비슷한 것이라고는 실물로 선보인 전례가 없는 테슬라가, 라텍스를 뒤집어쓴 무용수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뒤, 1년 뒤 그 속을 사람이 아닌 기계로 채워 넣겠다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런 미심쩍은 시각은 머스크와 다른 국적의 입장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미국 주요 매체들도 내년 테슬라봇의 등장을 실현 가능한 비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일론 머스크는 그동안 시제품(prototype) 수준의 상품을 출시하고 양산을 시작하기 전부터 비전만을 가지고 판매를 시작한 사례가 많다. 또한, ‘테슬라봇’이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선도하겠다는 테슬라의 미션과 어떻게 부합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블룸버그)


“머스크는 자동차 및 우주항공 업계에서 혁신을 이뤄냈다 하지만 기존 발표된 일정을 지키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야심찬 목표를 발표한다는 평판을 받았다.”(CNN)


“머스크는 흥미를 일으키기 위해 종종 이러한 설정(행사에서 사람이 로봇 차림을 하고 무대에 오른)을 이용한다. 그는 2년 전 행사에서도 무인차량 100만대 이상을 운영하겠다고 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월스트리트저널)


“테슬라 AI 데이에서 선보인 모형 로봇은 단순히 서있기만 했다. 머스크는 테슬라와 스페이스 X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 실현되지 않는 혁신을 선보이거나, 약속된 일정보다 늦게 출시되는 경우가 많았다.”(LA타임즈)


“테슬라는 그동안 제품 공개나 출시에 대해서 과장한 이력이 있다. 2019년에 공개한 사이버트럭은 아직까지도 인도되지 않고 있고, 차세대 배터리 셀 역시 아직까지 탑재되지 않았다.”(워싱턴포스트)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확실히 흥미로웠으나, 머스크는 지난 수 년간 실제로는 실현되지 않은 야심찬 계획만을 발표해 왔다. 무대에 실제로 등장한 것은 로봇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었으며 다른 자동차 회사가 이와 같은 발표를 했다면 분명히 조롱을 받았을 것이다.”(포브스)


로보틱스가 미래 유망 사업 중 하나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만큼 화제성 이벤트로 관심을 끌기에 좋은 아이템이기도 하다. 머스크가 내년 이맘때 ‘펩시맨의 흑백 버전’보다 좀 더 나은 결과물을 들고 나오기 전까지 테슬라봇에 대한 기대는 잠시 접어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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