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도 다소 높음' 9월 1일 개봉
'박화영' 극사실주의 표현으로 호평과 함께 논란
최근 미디어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이다.
사실 하이퍼리얼리즘은 미술 용어로 현실에 존재하는 것을 마치 한 장의 사진을 보듯 정교한 기법으로 완벽하게 그려내는 방식이다. 미디어 속 하이퍼리얼리즘은 가상 세계 속 설정이 아닌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을 실감 나게 옮겼다.
유튜브 구독자 100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피식 대학', 웹드라마 '좋좋소', JTBC 드라마 '알고 있지만' 등이 하이퍼리얼리즘을 추구한다. 코로나19로 당연했던 일상이 어려운 시대가 된 지금, 일상의 가치를 콘텐츠로 간접 체험하는 동시에 미래를 예측하기 불안한 상황에서 편안함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미디어에서 대세가 된 하이퍼리얼리즘은 최근 쏟아지고 있지만 사실 독립영화계에서는 이미 정착돼 있다. 세트를 짓고, 스타 배우를 섭외하고, 로케이션을 할 수 없는 독립영화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현미경처럼 확대해 자세하게 스크린에 담고 있다.
9월 1일 개봉 예정인 '습도 다소 높음'은 하이퍼리얼리즘의 성격을 극대화한 코미디 영화다. 코로나19 시국, 극한의 습도가 엄습해온 여름 날, 에어컨을 꺼버린 극장에서 벌어지는 하루를 담았다.
국가 비상사태인 현재, 존폐 위기에 놓인 극장을 혼자 사수하며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 찰스, 코로나19 확산 방지 이유로 에어컨을 틀지 않는 사장, 예술에 취한 독립영화감독, 마스크는 착용하지 않으면서 공짜 음료 제공을 요청하는 평론가, 영화에 출연했지만 얼굴이 편집돼 실망하는 무명의 배우 등 현실을 반영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습도 다소 높음'을 연출한 고봉수 감독은 자연스러운 대사나 상황 설정으로 생활 밀착형 코미디를 선보여왔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4명의 남자들이 4중창 대회 참가를 준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델타 보이즈', 고교생 레슬러들의 땀 내나는 고군분투기를 담은 '튼튼이의 모험' 등은 현실을 반영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델타 보이즈'는 17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CGV 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 21회 인디포럼 올해의 관객상, 4회 무주산골영화제 나봄상, 전북영화비평포럼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250만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졌지만 암울한 현실 속에서 콩트 같은 코미디를 완성시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치트키는 '고봉수 사단'으로 불리는 배우들이다. 백승환, 김충길, 신민재, 윤지혜 등은 '튼튼이의 모험' '델타 보이즈' '습도 다소 높음'까지 모두 출연,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하기 힘든 표현력으로 영화의 매력을 높였다.
고봉수 감독이 하이퍼리얼리즘을 코믹하게 터치했다면 홍성은 감독은 1인 가구의 삶을 화려한 기교 없이 직설적으로 접근했다. 주인공 진아(공승연 분)는 업무 시간 외에는 이어폰을 꽂으며 타인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걸 차단한다. 콜센터를 직장으로 선택한 이유도 직접적인 대화가 아닌, 수화기 너머의 사람을 매뉴얼대로만 대응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 업무 시간에 쓰는 헤드폰과 칸막이는 진아의 폐쇄적인 성격과도 적합한 환경이다.
집 안에서도 암막 커튼을 치고 침실 안에서만 생활하며 불필요한 시야와 움직임을 제한하는 모습 등은 1인 가구의 삶을 미화 없이 하이퍼리얼리즘으로 그려냈다.
이와 함께 고립을 선택한 혼자 사는 사람들을 향해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상실감과 미래에 더욱 극심해질 고립을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이환 감독도 '박화영',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방황하는 10대들의 생존기를 담았다. 가출, 낙태, 성매매, 학교 폭력 등 가정과 학교 울타리 밖에서 벌어지는 청소년 문제를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정제되지 않은 10대들의 말투나 행동, 생각을 불편할 정도로 가감 없고 솔직하게 표현했다.
청소년 문제를 고발하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환 감독은 두 작품을 통해 청소년의 비행이 방관자인 어른들로 인한 결과라고 도출하지 않는다. 그저 '10대들은 이렇다'라는 걸 보여주고 판단을 관객들의 몫으로 넘겼다.
어쩔 수 없는 선택 속에서 이뤄진 흐름이지만, 독립영화들은 저마다 특색 있는 하이퍼리얼리즘을 활용하며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하이퍼리얼리즘에 대중이 열광하는 지금, 독립영화감독들의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나 센스 있는 연출, 집요한 탐구가 더 돋보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