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이너스로 추락한 국제유가 최근 70달러대 '하이킥'
글로벌 경기부양책 힘입어 상승 탄력…100달러대 전망도
유가 민감 업종 정유·석화는 '예의주시' 조선은 수주 확대 기대감
국제유가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다시 올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작년 한 때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유가가 최근 들어 70달러를 돌파하며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8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74.6달러로 전 거래일 보다 1.6달러(2.22%) 올랐다. 올해 초 47.2달러였던 유가가 반년 새 27.4달러(58.1%) 뛴 것이다.
최근 유가는 코로나 백신 접종 비중이 각국 단위로 크게 늘어난 데다, 각종 경기부양정책 등이 가시화되면서 원유 수요가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상승 탄력을 받고 있다. 특히 WTI 가격은 지난 2018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 같은 글로벌 흐름에 발 맞춰 국제유가는 지난해 30~40달러대의 지지부진한 흐름을 딛고 많게는 100달러까지 수직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비톨, 글렌코어, 골드만삭스 등 다국적 무역회사 및 금융기관 등은 석유 공급을 위한 투자 부족, 산유국의 감산 정책 등으로 '100달러 유가 시대'가 현실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비톨 CEO인 러셀 하디(Russell Hardy)는 연말까지 유가가 70~8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며, 만일 러시아 등 비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가 감산을 유지할 경우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언급했다. 글렌코어의 알렉스 사나(Alex Sanna) 오일 마케팅부분 대표 역시 유가가 100달러 도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세계 각국에서 친환경 정책들을 잇따라 도입하면서 이들 전망에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일례로, 네덜란드 지방법원은 글로벌 석유회사인 쉘(Shell)에 대해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45% 줄일 것을 명령했다. 석유·가스 기업인 쉐브론은 상향된 배출 감축 목표를 승인하는 투표를 실시했으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 2550억 달러를 책정했다.
기후 변화 패러다임에 발 맞추기 위해 석유·가스 회사들이 신재생 등 그린 에너지 공급망을 늘리되 기존 화석 에너지 투자는 줄이는 방식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동안 늘어난 석유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원유 상승세가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일각에선 계속 유가가 올라간다면 OPEC(석유수출기구) 등에서 산유량을 늘려 공급을 확대하기 때문에 상승세가 무한정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다만 증산 확정과 실제 이행 이전까지는 유가 상승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진단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계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OPEC+의 감산 등 공급 축소에 대한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유가가 오르고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석유 수요가 공급을 상회한다면 유가는 계속 오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 상승→소비 위축→기업 생산 감소 우려
심상찮은 유가 움직임에 국내 산업계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유가 상승은 그 자체로 원유 수입국인 한국 경제에 가계 구매력 감소와 기업 생산 비용 증가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유가가 오르면 제조 기업은 유가 상승분을 통상 제품 가격에 반영한다. 제품값 상승은 소비자들의 구매 감소로 이어지며 소비가 위축되면 기업들의 생산량이 줄어들게 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소득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증가한 생산비용을 기업이 제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경우, 채산성은 그만큼 악화된다.
만일 연관 수요가 따라준다면 원가 상승분 만큼 제품가에 적시에 반영되기 때문에 영향이 적지만 수요가 살아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칫 원재료 가격만 높아지게 되면 비용 부담만 커질 뿐이다.
KDI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 5월 발간한 '최근 유가 상승의 국내 경제 파급효과' 보고서를 통해 "국내 석유제품 대부분이 기업에서 중간재로 활용되고 있어, 석유제품 가격이 비석유제품 가격으로 전가되지 않는 경우 기업의 생산비용이 평균 0.7%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유가 상승시 생산비용이 가장 많이 오르는 업종은 운송서비스, 화학제품 등이 꼽힌다. KDI에 따르면 이들 업종의 생산비용이 각각 3.2%, 2.7%씩 오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유가가 70달러를 크게 웃돌면서 이 비용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중 석유화학 업종은 원료 및 연료를 모두 원유에 의존해 유가 상승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을 크게 받는다.
석화 산업의 주 원료인 나프타는 원유에서 정제돼 나온다. 평균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나프타 비중은 70%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유가가 상승하는 만큼 나프타 판매 가격이 오르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석화업계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특히 LG화학, 롯데케미칼, GS칼텍스 등 국내 주요 정유·석화업체들이 지난 수 년간 나프타 분해설비(NCC)를 증설하면서 공급과잉 및 마진 하락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유·석화, 유가 영향↑ 조선은 수주 확대 기대
정유사 역시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다. 국제유가 상승과 석유제품 수요 증가가 동반돼야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제마진 흐름을 보면 수요 회복으로 인한 유가 상승세라고 진단하기 어렵다. 정제마진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 등 비용을 뺀 가격을 말한다. 만일 원료비만 오르고 석유제품 수요가 지지부진할 경우, 정유사들에겐 손해가 발생하게 된다.
섬유 산업은 화섬원료 대부분이 원유에서 추출되기 때문에 원가 상승 압력 및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유가 상승에 따른 자동차 유지비 증가, 자동차 수요 감소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철강 산업은 유가 상승으로 인한 직접적인 비용 상승 보다는 자동차, 전기전자, 선박, 건설 등 수요 산업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반면 조선 산업은 유가 상승을 호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각사별로 2~3년 어치 수주 잔량을 각각 확보하고 있는 조선사들은 고유가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 보다는 해양플랜트 등 연관 제품 발주가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KDI는 "만약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산이 가속화되며 경기 부진이 발생하는 가운데 국제유가가 추가적으로 급등하는 경우, 유가의 영향을 크게 받는 상품에 대해 한시적으로 가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