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규제 완화로 위탁생산 활발…업계 막론 출시 경쟁
소규모 제조업체 소외 우려도…“채널 확보 장벽 더 높아질것”
최근 국내 수제맥주 열풍이 뜨겁다. 업계를 막론하고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종류가 다양해지고 소비자 선택지 역시 대폭 늘었다. 생산이 판매를 못 쫓아갈 정도로 인기가 높자 불매운동으로 주춤해진 수입맥주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분석 마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주류 업계에서는 단시간 수제맥주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판매처 확보 장벽이 오히려 높아지는 등 당초 주세법 개정의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과당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13일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맥주시장에서 국산 수제맥주 규모는 1180억원으로 나타났다. 2017년 433억원과 비교하면 3년 만에 2.7배 성장했다. 수제맥주협회는 2023년에는 시장 규모가 37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수제맥주 열풍을 이끈건 CU의 ‘곰표맥주’다. CU에 따르면 곰표 밀맥주는 지난달 30일부터 하루 15만개 넘게 팔리며 카스와 테라를 제치고 맥주 매출 1위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편의점 자체 브랜드(PB) 맥주가 대형 제조사 제품을 누르고 1위에 오른건 곰표맥주가 처음이다.
수제맥주가 인기를 끈 핵심 이유는 최근 이뤄진 주세법 개정의 덕이 컸다. 맥주에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가격(종가세)에서 용량(종량세)으로 바뀌며 수제맥주 출고가가 낮아졌다. 일반맥주에 비해 생산 단가가 높았던 수제맥주도 가격 경쟁력을 갖춘 셈이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기점으로 수입맥주 수요가 시들해진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주류 수입량은 전년보다 13.7% 줄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더해지며 홈술 열풍이 불자 수입맥주 빈자리를 수제맥주가 채우게 됐다.
특히 주류 제조업체가 다른 제조업체 시설을 이용해 위탁생산(OEM)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소규모 브루어리를 갖춘 수제맥주 업체들이 대형 맥주 업체 제조시설을 이용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즉 더욱 다양한 맛의 수제맥주가 시장에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 너도 나도 뛰어드는 ‘수제맥주 시장’…“다양한 한계점도”
유통업체들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대세로 떠오른 수제맥주 시장에 하나 둘 뛰어들고 있다. CU의 ‘곰표맥주’가 대박이 나자 편의점 GS25는 ‘곰’을 로고로 하는 캠핑 맥주 출시를 앞두고 있고, 이마트24는 ‘야구’를 모티브로 한 맥주 상표권을 출원하며 수제맥주 시장 진출을 검토 중이다.
치킨 업계도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교촌치킨을 운영하는 교촌에프앤비는 LF 계열사 인덜지 수제맥주 사업부를 120억원에 인수했고, BBQ를 운영하는 제너시스비비큐는 2019년부터 마이크로브루어리코리아와 협업해 수제맥주 개발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맥주업계 1위 오비맥주가 다양한 이종 업체들과 컬래버레이션(협업)을 통해 수제맥주 위탁생산(OEM)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생산을 준비하고 있는 제품은 ‘백양 BYC 비엔나 라거’와 ‘노르디스크캠핑맥주’, ‘서울 IPA’ 등이다.
국내에서도 수제맥주 시장이 서서히 뿌리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인 셈이다. 소비자들이 더욱 다양한 제품을 즐길 수 있게 됐고, 선택지 역시 크게 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다만, 주류업계는 향후 수제맥주 시장이 얼마나 커질 지 여부에 대해서는 ‘글쎄’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최근 다양한 맛의 맥주들이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국내서도 조금씩 수제맥주 시장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긴 하지만, 치열한 경쟁이 결국 가격경쟁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수제맥주 제조업체 수는 지난 2015년 51곳에서 작년엔 83곳으로 늘었다. 2014년 54개에 불과했던 수제맥주 면허 건수도 작년에는 95여 개에 달하면서 3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이들이 생산해 판매하고 있는 수제맥주 종류는 700여 개에 달한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국내 수제맥주 시장이 크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 맥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 시장이 아직 작은데 플레이어가 늘어나면 경쟁이 심화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라며 “시장이 성숙하기 전 경쟁이 심화되면 아무래도 품질경쟁보다는 가격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채널 의존도가 높은 제품일수록 계약이 끝나면 한 순간에 판매채널이 사라지게 되니 망하거나 채널에 종속돼 갑을 관계가 강화될 수도 있다”며 “주세법 개정으로 인해 유통을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은 갖춰졌지만, 특정 브랜드에 한해 인기가 집중되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주세법 개정이 오히려 기존 수제맥주 업체들에게 제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아이디어를 가진 소규모 주류 제조업자들이 이제는 주세법 개정으로 OEM생산이 가능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채널 확보가 더욱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수제맥주업계 관계자는 “최근 다양한 F&B업체들이 수제맥주 시장에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기존 F&B업체들은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기본적인 판매처가 존재하지만, 채널을 확보하지 못 한 소규모 수제맥주 업체는 오히려 채널 확보의 장벽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제맥주라는 카테고리가 단순히 주류의 한 종류가 아니라 ‘다양성’ 등의 가치가 담겨야 하는데 단순히 수익이나 전망만 보고 들어오는 경우 결국엔 소비자에게 외면을 받는 일도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