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테슬라·BMW, 줄줄이 배터리 내재화 선언
기존 배터리사 겨냥 배터리 기술 및 원가 경쟁력 도전장
K배터리 위기감 고조…LG-SK, 법적 다툼으로 경쟁력 상실 우려
전기차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하면서 배터리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떠올랐다. 한국·중국·일본 기업 등 기존 배터리 제조사들이 장악해오던 과거와 달리 글로벌 완성차업체까지 이 산업에 뛰어들면서 배터리발(發) 춘추전국시대가 열리는 모습이다.
세계 2위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그룹은 최근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했다. 폭스바겐 뿐 아니라 테슬라, BMW, 도요타까지 자체 배터리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해당사자인 K배터리에 대한 위기감이 떠오르는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아직까지도 상호 비방을 일삼고 있어 어부지리 우려가 제기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15일(현지시간) '파워 데이'에서 오는 2030년까지 유럽에 대형 배터리 공장인 '기가팩토리'를 6개 설립한다고 밝혔다. 2023년부터 새로운 통합 셀을 도입해 2030년까지 자사 전기차 80%에 탑재하겠다는 중장기 전략도 공개했다.
전기차 1위 업체인 테슬라는 작년 독일 배터리업체 ATW오토모티브를 인수하며 배터리 수직계열화 작업에 나섰다. ATW는 20개 이상의 생산라인을 가동해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에 배터리를 공급해왔다.
BMW는 2019년 LA오토쇼에서 배터리 개발 기술을 내재화하고 전기차에 최적화된 배터리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도요타도 꿈의 배터리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적극적이다.
글로벌 완성차들이 베터리 내재화 선언은 가격 경쟁력 때문이다. 통상 배터리는 전기차 제조 원가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급형·고성능·픽업트럭 전기차 등 전기차 활용도에 따라 배터리 성능과 가격도 달라져야 하는 만큼 완성차업체가 직접 배터리 스펙을 조정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폭스바겐은 파워 데이를 통해 2030년까지 전기차에 통합 셀을 장착함으로써 배터리 비용이 50%까지 절감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따라 배터리 제조 방식은 LG·삼성·SK 등 K배터리나 중국 CATL 등 전문 기업 생산에서 완성차가 개발한 배터리셀을 배터리업체가 위탁 생산하는 방식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어제의 '고객'이 오늘의 '경쟁자'…비상걸린 K배터리
완성차업체들이 속속 배터리 시장에 등판하면서 기존 배터리 제조사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그간 '고객'이었던 완성차업체들이 하루 아침에 '경쟁자'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경쟁력 제고를 위해 완성차들의 배터리 자체 생산은 그 전부터 예견돼왔다"면서 "다만 그 시기가 예상 보다 빨리 온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의 배터리 기술 개발은 세계 각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유럽연합(EU)은 29억 유로(약 3조8900억원)을 투입해 테슬라, BMW 등 42개 기업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배터리 자급 체계를 신속히 갖춤으로써 수입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2030년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전기차 인프라 확충에 대대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은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공격적으로 기술 개발에 나서면서 기존 배터리 제조사들과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힐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더욱이 완성차들이 기존 K배터리와의 공급 비중을 점진적으로 낮추게 될 경우 이들의 타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폭스바겐이 LG와 SK의 주력 제품인 파우치형 배터리를 줄이겠다고 밝힌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폭스바겐은 LG와 SK 배터리를 완전히 '손절'하겠다는 것은 아니나 중장기적으로 자사 비중을 크게 늘리겠다는 방침이어서, 새로운 '빅바이어'를 찾는 것이 LG와 SK의 과제다. 폭스바겐의 대중 브랜드 전기차 플랫폼인 MEB 플랫폼의 경우 유럽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최대 공급업체이고, SK이노베이션이 2위 공급업체로 알려졌다.
반면 중국 CATL은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얻으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더 높일 것으로 보인다. 폭스바겐은 CATL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폭스바겐이 채택한 각형 배터리는 CATL이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은 2017년부터 4년 연속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폭스바겐 사태를 통해 배터리사들의 기술 개발과 원가 절감 방안이 최대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배터리 내재화 선언은 모두 비용 절감을 위한 것으로, 배터리사들에게 원가를 낮추라는 신호와 다름 없기 때문이다.
배터리사들의 생존 셈법이 분주해진 상황에서 K배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과의 화해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이 팽창하면서 배터리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면서 "기술력 다툼은 원가 경쟁으로 이어지게 되고 최종 승리한 쪽이 배터리 시장을 선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LG와 SK가 퍼스트 무버로 자리잡기 위해선 법적 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부터 걷어내야 한다"면서 "지속되는 반목은 제 2의 폭스바겐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SK-LG 배터리 전쟁③] 시리즈 기사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