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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턴하는 한국 현대정치사


입력 2021.02.15 09:00 수정 2021.02.15 08:12        데스크 (desk@dailian.co.kr)

국가 3권이 대통령 1인 손안에

입법 전횡에 맛 들인 집권 민주당

민주주의 퇴조를 보는 심정 참담

ⓒ데일리안 DB

삼권분립의 정치구조는 국가권력을 3개의 축으로 나누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민주정치를 구현하고 지켜가게 한다는 취지와 의의가 있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의 독불장군식 변칙 리더십과 유례없는 대선 불복, 내란 선동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민주상궤(民主常軌)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입법·사법부가 건재한 덕분이었다.


국가 3권이 대통령 1인 손안에


대한민국도 미국을 흉내 내어 삼권분립 체제를 표방하고 있다. 국민 직선의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 국민의 대의원들로 구성된 입법부, 전문가 집단인 사법부 등 갖출 것은 다 갖췄다. 그런데 실제로는 ‘행정부와 그 산하 기관’이라는 구도에 갇혀 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엔 어땠는데?” 그렇게 따지지는 말기 바란다. 그 시절에 대해 저주의 막말을 퍼부으면서 지금까지 단죄를 거듭하고 있는 정권이 같은 행태를 답습하면서 할 말은 아니다. 게다가 당시 정권은 권위주의적 통치구조와 행태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정권 장악자들은 훨씬 교활하고 비열하다. 아닌 척하면서 할 짓은 다 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입법부는 180석(총선 결과. 지금은 174석)과 그 우호 의석에 의해 거의 완벽히 장악됐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충성스러운 입법 전위부대의 역할을 유감없이 수행하고 있다. 사법부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진보·좌파 최후의 보루로서 존재감을 과시해 왔다. 그는 정권에 찍힌 고법 부장판사가 사표를 제출했는데도 ‘장래에 있을지도 모를 탄핵’에 대비해 붙잡아 둘 만큼 열성적인 정권 동조자의 면모를 보인다. 스스로 이른바 ‘촛불혁명정부’의 주체로 자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 군사정권 때는 국민이나 야당의 저항에 대해 놀라기도 하고 화도 내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무시해 버린다. 집단적 결정이나 행동에는 심리적 부담감이 필요 없다. 오히려 패거리의 일원임을 확인하면서 안도하게 된다.


공수처법(안)을 패스트 트랙에 올려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의석수를 맞추느라 애쓰는 모습이라도 보였다. 그러나 작년 총선 이후엔 거칠 것이 없어졌다. 시행해 보지도 않은 공수처법을 예사로 고쳤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이나 후보 추천 관련 야당(교섭단체)의 비토권을 없애 버린 것이다. 고기를 잡자 물고 있는 미끼까지 뺏어버린 격인데, 이러고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입법 전횡에 맛 들인 집권 민주당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폐지한 ‘국정원법 개정안’ 기업 규제를 강화한 경제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과 노동조합법 개정안, 표현의 자유에 족쇄를 채운 5‧18 역사 왜곡 처벌법과 대북전단살포금지법, 세월호 진상조사를 끈질기게 이어가기 위한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법과 세월호 특검법 등도 얼굴색 하나 안 바꾸고 통과시켰다.


이뿐이겠는가. ‘가짜뉴스 뿌리 뽑기’ 운운하면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 6개 언론관계법의 처리를 공언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관인 것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다. 언론이 가짜뉴스로 손해를 입히면 3배를 배상토록 한다고 을러댄다. 명색이 언론인 출신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그 선두에 있다는 사실이 한국 정치의 기막힌 현실이다.


여기에 그칠 생각도 없어 보인다. 민주당 의원들로 구성된 ‘행동하는 의원모임 처럼회(처럼회)’는 지난 8일 국회에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했다. 검찰이 그나마 가진 부패범죄, 경제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공직자 범죄, 대형참사 등 6대 중대범죄 직접 수사권을, 중대범죄수사청에 넘긴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기소만 담당하는 기관으로 그 기능 역할 위상 규모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가만히 있으면 조국이 아니지! 그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새해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검찰청·중대범죄수사청·경찰청 분립 체제가 수립되길 기원한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수사·기소 분리는 최종적 목표였는데 “전 국민이 검찰의 폭주를 목도하고 촛불을 든 후 바뀌었다”고 했다. 단계적으로 추진하려 했지만 검찰하는 행실이 고약해 동시에 추진하기로 했다는 뜻이겠다. 그가 여전히 세도를 부리고 있는 모양인데, 이때의 ‘전 국민’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러다가는 조씨가 국민 자격증(證)을 교부하겠다고 나설까 봐 두렵다.


민주주의 퇴조를 보는 심정 참담


옛날에 일부함원오월비상(一婦含怨五月飛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더니 이야말로 조국함원검찰횡사 격 아닌가. 국가 권력 구조를 장난처럼 엎고 뒤집고 하면서도 저어하고 머뭇거리는 빛이 없다. 자가 발전해 온 집단적 정의감에 도취하여 있기 때문이다. 사회·국가·세계의 비극적 사건이 주로 이 처치 곤란한 ‘집단적 정의감’에서 비롯됐다. 문 정권의 경우는 어떤 상황을 초래할까?


이 외에도 문 정권의 뻔뻔스럽고 교활한 모순 또는 자가당착의 예는 얼마든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장의 53.1%, 전체 임원 중 11.1%가 ‘캠코더(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분석 결과가 보도됐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실이 문체부 산하 32개 공공기관을 전수 분석했다며 14일 공개한 내용이다. 작년 국민의힘이 공공기관·정부 산하 기관 임원을 전수 조사했을 때는 17.1%가 캠코더 인사였다. 도대체 문 정권이 소리 높여 비난하고 징벌했던 구 정권의 적폐는 어떤 것인가.


지난 9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실행한 혐의로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됐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산천초목까지 떨게 만들더니 뒤로는 이런 짓을 벌인 것이다. 전 정부 때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을 쫓아내는 데 이 리스트를 활용했다. 그렇게 해서 비운 자리에 청와대 추천 인사를 넣기 위해 개입한 혐의가 인정돼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성명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8년 12월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 수사관이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했을 때 청와대는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민간인 사찰 DNA가 없다”고 여론을 윽박질렀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법원의 판단 내용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두고 보자. 2심, 3심까지 가서도 유죄 판단이 유지될지!” 그런 믿음이 있는 것일까?


현 정권처럼 국가의 제도 조직을 헝클어 놓기 시작하면, 설령 이들의 폭주가 멈춘다 해도 원상회복에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소요된다. 국민적 에너지와 국력의 엄청난 낭비가 불가피하다. 그걸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이 사람들은 촛불혁명 놀이의 마력에서 헤어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대한민국 현대정치사의 유턴을 목도하고 있다. 천신만고를 겪으며 걸어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게 이처럼 예사롭다니! 필부의 심정이 참담하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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