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엑스맨: 아포칼립스' 홍보 OST로 데뷔
트랙메이커·작사가로 활동
플레이리스트에서 음악은 누군가에게 위로를, 누군가에게는 공감과 기쁨을 선사한다. 이같은 노래 한 곡이 발표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손들의 노력이 동반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 외 프로듀서, A&R, 엔지니어, 앨범 아트 디자이너 등 작업실, 녹음실, 현장의 한 켠에서 노래가 나올 수 있도록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봤다.<편집자 주>
작곡가 정윤은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와 틴탑이 콜라보레이션한 '아포칼립스'로 2016년 데뷔했다. 이후 오마이걸 '번지', NCT U '마이 에브리띵'(My everything), 윤지성 '나의 하루', 몬스타엑스 '기브 미 댓'(Give me Dat)', 더 보이즈 '스노우 스프링'(Snow spring), 위키미키 '웁시'(OOPSY) 등에 참여했다.
작곡 4년차로 경력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한 달에 최소 한 곡씩 정윤이 작곡한 곡이 음원사이트에서 발표되고 있다.
사실 정윤의 전공은 미술이다. 일찌감치 음악을 배우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쳐 대학을 진학한 후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 데뷔만 하면 모든 것이 잘 될 줄 알고 달려왔지만, 생각보다 작곡가 세계의 경쟁은 치열했다.
"'엑스맨:아포칼립스' OST를 한 후 1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어요. 시작을 이름 있는 아이돌로 했으니 잘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음악을 그만두면 학교를 다시 가야하는데, 그건 정말 싫었어요. 음악 한다고 학교를 휴학했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는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았거든요."
정윤은 처음부터 멜로디를 만드는 것보다 미디에 관심이 많았다. 비트를 통해 노래의 뿌리를 단단히 만들어내는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실용음학원을 다녀봤지만, 화성학 위주의 교육에 발걸음을 돌렸다. 개인레슨으로 미디의 기본적인 것만 익힌 후, 혼자서 음악 만들기를 반복했다. 정윤이 느끼는 트랙의 매력은 다양한 소스였다.
"꾸며낼 수 있는 소스가 많아서 흥미로워요. 탑라이너는 보컬로만 멜로디를 만들지만 저는 다양한 효과음을 가져와 비트를 만들 수 있잖아요. 트랙메이커는 기술직인 것 같아요. 툴을 어떻게 넣을지 테크닉적인 것만 알면, 그 다음은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 수 있어요. 다만 스킬적으로 뛰어나거나 음악적인 감각이 있어도 기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어렵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요계에 여자 작곡가는 많지 않을 뿐더러, 트랙 메이커로 활동하고 있는 여자 작곡가는 더욱 드물다. 멜로디를 구성하는 탑라이너 롤을 맡고 있는 것이 보통의 풍경이었다. 이런 굳어진 인식에 정윤은 작곡가라고 소개할 때마다 부가적인 설명을 해야 했다. 또 여자 작곡가란 이유만으로 이유없는 무시를 받은 경험도 있었다.
"업계 자체 분위기가 여자는 잘 못할 거란 인식이 있어요. 제가 작곡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피아노 치세요?', '탑 라이너세요?' 였어요. 또 '여자인데 잘 할 수 있을까'란 질문도 많이 받았고요. 여자 작곡가가 있어도 탑 라이너가 더 많다보니, 트랙 메이커라고 하면 신기하게 보더라고요. 작년까지만해도 스트레스였어요. 녹음실 가면 무시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거든요. '해봤자 얼마나 하겠어'란 시선이죠. SNS로 '여자치고 잘 만들었네'란 메시지도 받아봤어요. 제 노래도 안들어보고 작업해보고 싶다는 분도 있었고요. 온전히 작곡가로서 봐주지를 않더라고요."
곡 의뢰가 오면 정윤은 할 일이 많아진다. 가수 분석부터 가수가 불렀던 전곡을 들어보고 잘된 곡과 반응이 안좋았던 곡 모두 살핀다.
"장르, 댄스 브레이크, 가사, 등 전반적으로 가수가 불렀던 곡을 분석해요. 그러면서 가져가면 안될 것들을 정리해요. 여기에 회사가 원하는 방향에 맞춰 아티스트의 느낌을 새롭게 입혀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정윤이 지금까지 했던 곡 중, 자신의 의도와 가장 잘 맞아 떨진 결과물은 NCT U의 '마이 에브리띵'이다. 완성된 곡을 듣고 정윤은 NCT U의 실력과 표현력에 감탄했다고 밝혔다.
"데모곡이 가수 노래보다 훨씬 좋은 경우가 많아요. 데모곡은 녹음하면서 바로 제 손으로 의도대로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제 마음에 더 들 수 밖에 없기도 하고요. 그런데 NCT U의 '마이 에브리띵'은 데모곡보다 훨씬 잘 나왔어요. 듣고 깜짝 놀랐어요. 곡 소화력도 좋고 노래도 잘하더라고요. MCND의 캐슬제이는 정말 프로듀싱에 참여하더라고요. 랩 파트 비워서 주면 어떻게 표현할까 굉장히 고민 많이 해오고 준비성도 철저해요. 정말 잘하는 친구였어요."
작곡을 하며 '음악 하길 잘했다'고 느낀 순간은, 수록곡에 대한 반응이 좋을 때다. 모든 곡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길 바라지만, 수록곡이 발견되기란 쉽지 않다.
"MCND의 '헤이 유'(Hey You), '뷰티풀'(Beautiful) 이 두 곡을 했는데 반응이 다 좋았어요. 음악방송에서도 했더라고요. 상상도 못한 결과라 너무 좋았죠. NCT U 곡도 수록곡인데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순위가 높았어요."
정윤이 음악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직업이 그렇듯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다. 한 곡이 나오기 위해서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 소비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이겨낼 만큼, 행복감이 더 크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으면 '저작권료 들어오니까 참아'라고 말해주는 분들이 계신데, 저는 행복하지 않으면, 하고 싶지가 않아요. 돈이 많이 들어오는 것보다 결과물이 좋아서 제가 행복할 수 있다는게 좋아요."
정윤은 아이돌 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과 작업하며 역량을 키워나가겠다는 각오다. 어떤 작곡가가 되고싶냐고 물으니 '색깔이 없는 작곡가'라고 말한다.
"음악만 들어도 누구 음악인지 알 수 있는 것도 좋지만, 아티스트 색에 맞춰 가장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줄 수 있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