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실패로 중도 사퇴한 차관급 이상 인사만 10명
'경실련 국정평가'에서 3.9점 가장 낮은 점수 받아
검증실패로 중도 사퇴한 차관급 이상 인사만 10명
'경실련 국정평가'에서 3.9점 가장 낮은 점수 받아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후보자의 자격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논의 끝에 후보 지명을 철회하기로 했다."
지난 3월 31일, 청와대는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며 이같이 밝혔다. '국민 눈높이'라는 정치적 언어로 우회했지만, '인사검증시스템 부실'을 시인한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장관 후보자를 자진사퇴가 아닌 임명 철회한 것도 처음이었다. 같은날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지난 2년 간의 인사난맥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하루였다.
작동하지 않은 검증시스템…중도사퇴 인사 10명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인사검증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1기 내각의 경우, 조기 대선으로 정부가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해 청와대의 한정된 인력으로만 인사를 진행했다. 일부 장관 후보자들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충분한 검증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여론의 된서리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이어진 인사에서도 크게 개선되진 않았다. 부동산 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 각종 의혹이 불거진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국민은 잇따른 인사 참사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청와대는 당초 대선 공약인 '5대 인사검증 기준'에서 허들을 낮춘 '7대 인사 배제기준'을 새로 내놨지만, 이 조차 넘지 못한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 2년 간 인사검증 실패로 중도 사퇴한 차관급 이상 인사만 10명에 달했다.
올해 단행된 3.8개각을 기점으로 누적됐던 부실 인사검증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낙마한 두 후보자는 꼼수증여, 부동산 과다 보유, 위장전입, 연구 부정행위 의혹, 자녀 인턴 특혜 채용 등 논란에 휩싸였다. 부동산 정책을 담당할 장관 후보자에게 '부동산 투기 달인'이란 꼬리표가 붙었고, 과학기술을 장려할 장관 후보자는 부실학회 참석을 '해외여행'쯤으로 인식했다.
문제는 이들이 청와대의 검증대를 '무사통과'했다는 점이다. 청와대 부동산 투기의혹에 대해선 "법적인 기준이나 7대 원천 배제 기준에 어긋나지 않다"고 했고, 부실학회 참석은 "본인이 사전에 사실을 밝히지 않아 걸러낼 수 없었다"고 했다. 해명이라고는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검증시스템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난맥상은 지난달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인사청문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35억원대 주식 보유'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다. 헌법재판관이 되겠다는 판사가 본인과 남편이 주식을 보유한 건설사 재판을 직접 맡아 승소 판결을 이끌었다. 여당 의원들조차 고개를 가로저었고, 청와대를 향해선 "검증은 눈감고 외부 비판엔 귀를 막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낙제점' 받은 인사정책…"'7대 원칙' 손보고 인재풀 넓혀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지난달 실시한 국정평가 설문조사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분야도 인사였다. 전문가 3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평균 점수는 10점 만점에 5.1점이었고, 인사정책은 3.9점의 낙제점을 받았다. 경실련은 "최근 인사 검증 논란이 계속되면서 낙제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응답자 가운데 71명(22.9%)은 인사정책에 대해 가장 낮은 1점을 줬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장관 후보자들의 도덕성 논란과 지명철회,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주식 투기 의혹, 청와대의 부실 검증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부처와 기관 평가에서 대통령비서실이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것도 인사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년 간 인사문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청문회에서 많이 시달린 분들이 더 일을 잘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신임 장관을 격려하기 위한 발언이라고 하기엔 국민 정서와 괴리가 크다.
부적격 인사를 걸러내지 못한 시스템도 문제였지만, 흠결이 드러난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하는 정무적 판단은 더 큰 부작용을 낳았다. 인사 시즌 때마다 '인사청문회 무용론' '국회 패싱' 논란이 반복됐다. 야당은 "오기 인사는 국민과 싸우겠다는 것"이라며 대여투쟁의 명분으로 내세웠고, 여당도 "인사검증에 국민 눈높이가 더 필요하다(이해찬 대표)"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는 '이게 나라다'라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지난 정부보다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들어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한 사례가 15번으로, 이미 박근혜 정부에서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했던 기록(10명)을 뛰어넘었다.
인사 문제가 반복되면서 인재풀이나 인사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권 성향에 맞는 '캠코더(대선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에서만 적임자를 찾으려고 하면 인재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인사 추천부터 검증 방식까지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7대 배제 기준'도 현실성에 맞게 손봐야 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7대 기준을 검토해봐야 할 시점이 온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우식 창의공학연구원 이사장은 2일 청와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에게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기원하는 사람이 많다. 첫째는 인사다. 한 계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이다. 탕평과 통합, 널리 인재등용을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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