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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외교'만 고집하다간 日도발 반복된다


입력 2019.01.27 04:00 수정 2019.01.26 21:53        이충재 기자

역대 최고수위 도발에 말로만 '비난'…靑은 전략적 '침묵'

수십년간 '日무대응이상책'이라는 외교기조에 '변화' 필요

역대 최고수위 도발에 말로만 '비난'…靑은 전략적 '침묵'
수십년간 '日무대응이상책'이라는 외교기조에 '변화' 필요


일본은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의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일본의 해상초계기가 지난달 20일부터 4차례나 우리 해군 함정을 향해 근접 위협비행을 했다. 23일엔 우리 해군 대조영함에 불과 540m 거리까지 접근해 하이에나처럼 30분간 주변을 맴돌았다.(자료사진)ⓒ데일리안

2011년 7월 31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이 예고도 없이 기자실로 찾아왔다. 천 수석은 단상에 오르지 않고 기자들에게 자신의 주변으로 와달라고 손짓했다.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천 수석은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며 입을 뗐다. '보도할 수 없는 중대발표'였다.

천 수석은 "내일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울릉도 방문을 위해 김포공항으로 입국하는데, 우리 언론에서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시 자민당 극우 의원들이 울릉도 방문을 예고하고 있었다. 독도 영유권 주장을 위한 '정치쇼'를 벌이기 위해서였다. 천 수석은 "거듭 당부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사안이 논란이 되고, 국제이슈로 떠오르면 우리가 불리하다.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우리땅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문제가 국제사회로 가면 일본의 로비력에 휘둘릴 수 있다. 그들의 의도에 말리면 안된다. 그러니 기자들께서 사진도 찍지 말고, 보도도 하지 않아줬으면 한다."

대일외교 금과옥조로 삼아온 '무대응이 상책'

다음날 일본 자민당 의원들의 입국은 예정대로 이뤄졌다. 정부의 입국금지에 막힌 이들은 김포공항에서 9시간 동안 항의소동을 벌이다 면세점에서 우리의 특산품 '김'을 사들고 돌아갔다. 웃지 못할 이들의 정치쇼에 대부분의 언론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천 수석의 '당부' 대로 주요언론에는 단신으로 실리거나 아예 보도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방위백서를 발표한데 이어 우리 국제사법재판소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우리의 대응수위에 관계없이 매뉴얼대로 도발을 이어간 것이다. 우리 정부는 또 다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조용한 외교'로 대응했다. "왜 일본에 항의‧대응하지 않느냐"는 여론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수십년 간 일본에 대해 '무대응이 상책이다'를 금과옥조로 삼아온 우리의 외교기조다.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이 2017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방문이 예정된 일본 도쿄 주일한국대사관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日 노골적인 도발에 뒷걸음질 치는 정부

현재 일본은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의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일본의 해상초계기가 지난달 20일부터 4차례나 우리 해군 함정을 향해 근접 위협비행을 했다. 23일엔 우리 해군 대조영함에 불과 540m 거리까지 접근해 하이에나처럼 30분간 주변을 맴돌았다. 일본의 행위는 적대국을 향한 무력도발이나 다름없었고, 20차례에 걸친 "접근 말라"는 우리군의 경고는 '하소연'에 가까웠다.

일본의 의도는 노골적이었다. 잇따른 도발로 일본이 얻은 것은 아베 신조 총리의 지지율과 '전쟁 가능한 국가'를 향한 야욕이다. 실제 아베 신조 내각의 지지율은 지난달 도발 감행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지층 결집과 국면 전환을 위해 한국을 끌어들여 외교를 내치에 이용한 형국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우리정부는 겉으로는 반박 증거를 제시하며 "명백한 도발"이라고 목청을 높이면서도 서서히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3일엔 일본의 도발을 규탄하는 국방부의 입장문 발표를 당초 국방장관에서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으로 격하시켰고, '자위권적 조치'라는 문구도 발표내용에서 빼버렸다.

청와대 역시 이번 사안과 관련해 공식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지난 24일 상임위원회를 열고 "이러한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엄중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힌 게 고작이다. 대변인 등 공식채널은 "국방부 입장을 참조하라"였다.

당초 한일 양국 간 레이더·위협비행 갈등 자체가 일본 측 일방 주장으로 시작됐다.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 일본의 초계기는 또 다시 우리 함정을 향해 날아들지 모를 일이다. 우경화 길을 걷는 아베 내각의 분위기를 보면 그렇다.

이에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우리정부의 대일외교 기조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일본에게 물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언제까지 견지할지 답답하다는 여론이 많다"며 "미친개에게 물리지 않을 합리적 대책은 '몽둥이'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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