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보호무역주의' 국내 가전·부품 연쇄 타격입나
미, 상무부 세탁기 반덤핑 관세…강화하는 자국산업보호
중, 배터리 인증 정책 강화로 문턱 높여...양국 갈등 '악재'
중국 정부의 전기차 배터리 인증 기준 상향 조치에 이어 미국 상무부의 국내 세탁기 반덤핑 관세 부과로 국내 가전·부품업계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간 무역 분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내년 산업 기상도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정부가 연이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향후 세탁기와 TV 등 가전 제품에서부터 전기차 배터리 등 부품까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9일(현지시간) 중국에서 생산한 삼성·LG전자의 세탁기에 대해 각각 52.15%와 32.12%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미국 가전업체 월풀이 삼성과 LG에 대해 세탁기를 덤핑 판매한다고 제소한 데 따른 것으로 지난 7월 예비관세율 부과 이후 이번에 관세율을 확정한 것이다.
앞으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조사를 통해 월풀 등 미국 업체들이 타격을 입었다고 결론이 내려지면 최종적으로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양사는 소명을 통해 실제 관세 부과를 막는데 전력한다는 계획이지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관세 부과는 시작에 불과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년 1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TV·냉장고·세탁기 등 한국산 가전제품들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걸 것으로 보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FTA를 적용받지 않는 해외 생산 가전 제품들에 고관세 부과 등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국내 생산 비중을 줄이고 해외 생산비중을 늘려나가고 있어 적용 범위는 계속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각 제품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그동안 국내에서 주로 생산해 온 프리미엄 제품들도 해외 생산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미국 상무부의 반덤핑 관세 부과는 지난 7월 예비판정에서 이어지는 결정으로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될 수 있어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전뿐만 아니라 부품에서도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달 말 중국 정부는 배터리 모범규준 인증 기준을 대폭 상향 조정하면서 자국 기업 보호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새로 내놓은 모범규준 인증 획득 조건으로 자국 내 전기차 배터리 연간 생산량 기준을 기존(200MWh)보다 40배나 늘린 8GWh로 상향조정하고 2년간 무사고 업체로 한정했다.
향후 한 달간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칠 계획이지만 이번 기준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강화된 기준을 만족하는 업체는 중국 내에서도 BYD와 CATL에 불과한 가운데 삼성SDI와 LG화학 등 한국업체들은 조건을 충족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양사는 중국에 각각 3GWh(LG화학)과 2.5GWh(삼성SDI) 규모의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모두 기준인 8GWh에 크게 못 미치는 데다 모두 지난해 10월 양산에 들어간 무사고 기준으로 제시한 2년도 충족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배터리 수요가 많은 상황에서 자국 업체들을 육성해 한국업체들에게 뺏긴 주도권을 찾아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중국 정부는 이미 올 들어 4차례에 걸쳐 인증 절차를 시행해 총 57개 자국 업체들에게 모범 인증을 내줬지만 한국업체들에게는 특별한 이유 없이 인증해주지 않아 자국 업체 보호를 위한 견제라는 분석이 제기돼 왔다.
아직 미인증 업체에 불이익은 없지만 미인증업체의 배터리를 적용한 차량에 대해서는 배터리 가격의 90% 가량을 차지하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전지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며 “최종안이 완화되기를 기대하면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에서의 시장 지위를 놓고 미국과 중국간 무역 분쟁이 커지면서 한국산 가전 수출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01년 향후 15년간 비시장경제국가 지위를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WTO에 가입했으며 지난 11일 이 조항은 효력이 만료됐다.
이에 중국은 시장경제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인 반면 미국은 WTO 가입 조건만으로 시장경제지위를 자동으로 줄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비시장경제국가는 국가간 반덤핑 관세 마진 산정시 덤핑 마진이 높게 산정돼 고율의 관세를 부과받게 돼 불이익이 상대적으로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양국이 갈등을 빚으면서 서로 보호무역조치를 강화하게 되면 양 시장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 우리에게는 타격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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