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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증설 요구’ 후판 설비 이제와 감축하라고?


입력 2016.09.29 16:25 수정 2016.09.29 17:54        이광영 기자

“철강 3사 후판설비 증설 부추긴 정부 책임도”

연산 200만톤 규모의 후판공장을 착공한 포스코가 2008년 7월 23일 광양제철소에서 가진 착공식 모습. 왼쪽에서 세 번째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당시 사장), 다섯 번째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데일리안

후판 설비를 감축하라는 철강 구조조정 컨설팅 결과를 놓고 철강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장치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비전문적이고 무책임한 발언이 업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철강협회는 지난 28일 철강 경쟁력진단 컨설팅과 관련해 주요 회원사와 민간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들을 대상으로 최종보고회를 개최하고 연구용역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기존에 공개됐던 대로 후판 설비를 감축해야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은 각각 4개, 2개, 1개의 공장에서 연간 1200만톤의 후판을 생산하고 있다. 이 중 생산능력 400~500만톤가량을 조절하라는 것으로, 이는 7개 공장 중 3개 정도를 폐쇄해야 가능한 규모다.

업계에서는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설비 감축을 권장하는 정부의 태도가 이율배반적 태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이 호황을 맞았던 2004년 당시에는 설비 증설을 적극 권유하더니 12년이 지난 지금 와서 이를 줄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무책임한 것”이라며 “생산능력이 줄어들면 오히려 내수시장을 중국산에 뺏길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3사의 후판 설비는 대부분 신규 설비에 가깝다. 1~2개를 제외하고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들이 비슷한 시기 증설에 나선 것은 공급을 늘려달라는 조선업계와 정부의 요청 때문이었다.

조선업계는 2004년 당시 국제무대의 초대형 발주 물량중 대부분을 독식하는 등 수주 호황을 지속했다. 하지만 조선용 원자재인 후판은 만성적인 공급부족이 해소되지 않았다. 일본의 경기회복과 중국의 수입 확대에 따른 이유였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2004년 내수와 수출 합친 후판의 총수요가 830만톤을 상회했던 것에 비해 국내 철강업계의 후판 생산능력은 연간 610만톤에 불과했다.

결국 3사는 증설을 서둘러야 한다는 조선업계와 정부의 요구에 못 이겨 다소 찜찜한 증설 러시에 나섰다. 그러나 증국 특수가 끝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 침체가 본격화되자 증설의 후폭풍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이 지난해 기준 연산 약 700만·350만·150만톤의 생산설비를 갖춰 총 1200만톤의 생산이 가능해졌지만 지난해 후판 수요는 920만톤에 그쳤다. 중국산 후판까지 내수시장에 득세하며 국산의 설 자리도 점차 사라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후판 수요는 조선업 불황이 지속되면서 2020년에 700만톤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후판 라인을 신규 증설하려면 1조원가량이 들고 감가상각은 회계 기준상 15년”이라며 “최소한 30년 가동해야할 설비를 상황이 달라지니 갑작스럽게 줄이라는 건데 이에 따른 손실은 누가 보상해 누가 줄 것인가”라고 호소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8일 열린 3차 산업구조조정 분과회의에서 “후판의 경우 기존 생산 중단에 더해 설비 감축과 매각 등 선제적인 설비 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철강업계가 이 같은 지침을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3사의 증설 러시에는 이를 부추긴 정부의 책임도 있다”며 “정부가 설비 감축을 주장할만한 명분이 부족하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최근 부실경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조선·해운업종과도 상황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철강업계는 최근 자발적인 구조조정으로 흑자 기조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고 후판의 경우 내수절벽에도 수출에 적극 나서면서 불황을 감내 중”이라며 “중국발 글로벌 공급과잉이 불황의 근본 원인이라면 설비 감축 보다 저가 중국산 수입 규제를 우선 검토하는 게 상식적인 수순”이라고 주장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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