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참사' 9-4승강장에 놓인 갖가지 간식은...
서울시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참사' 나흘째 추모행렬 계속
서울메트로 "책임 통감...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대책 약속"
'구의역 참사' 현장인 9-4 승강장에는 벽면 가득 수백 개의 추모 포스트잇이 빼곡했다. 바닥에는 수북이 쌓인 국화꽃 사이 햇반, 빵, 초코바, 음료, 과자들도 놓여 있었다. 고인의 마지막 유품인 작업가방에서 미처 뜯지 못한 컵라면이 나왔던 탓이다.
사고가 발생한 해당 승강장뿐 아니라 구의역 2층 대합실에 마련된 별도의 추모공간에도 벽면 가득 수백 개의 추모 포스트잇과 국화꽃, 포장을 뜯지 않은 다양한 음식들이 가득했다. 이 공간은 서울메트로가 시민의 안전을 고려해 승강장 추모공간을 대체할 별도의 추모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지난 1일 오후 서울시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번 승강장에는 열차에 오르지 않는 승객들로 붐볐다. 승객들이 열차를 몇 번이나 떠나보낸 이 승강장은 지난 28일 해당 승강장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모(19) 군이 열차에 치여 숨진 곳이다. 이 사고로 김 군을 기리는 추모현장이 된 해당 승강장에는 시민들의 추모행렬이 나흘째 이어졌다.
이날 강남역에 있는 학원에 가기 위해 구의역을 찾은 박은희(23·대학생) 씨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나와 9-4번 승강장을 찾았다. 박 씨는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가득 메운 수백 개의 추모 포스트잇을 읽어 내려가며 열차를 세 번이나 떠나보냈다. 박 씨는 “못난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서야 네 번째 열차에 몸을 실었다.
동창 모임에 가기 위해 구의역을 찾은 이옥용(82) 씨도 쉽게 열차에 몸을 싣지 못했다. 이 씨는 “대단히 미안합니다. 이 말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명복을 빕니다”라고 꾹꾹 눌러 쓴 포스트잇을 해당 승강장 벽면에 붙이며 “지성인들이 자기들 욕심만 채우다 젊은이를 희생시켰다”며 통탄했다.
이날 해당 승강장에는 승객뿐 아닌 일반 추모객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김 군을 기리기 위해 일부러 승강장을 찾은 박경진(54·회사원) 씨는 사고현장 앞에서 오래 묵념한 뒤 벽면의 포스트잇을 눈으로 일일이 읽어가며 눈물을 훔쳤다.
박 씨는 “엄마로써 발길이 안 떨어집니다. 꼭 열차가 운행하는 시간에 수리를 했어야 했나요. 열차가 운행될 동안 다른 문을 사용하라는 안내만 했더라도...”라고 적은 포스트잇을 승강장 벽면에 한참이나 눌러 붙였다. 그러면서 “서울시장이나 서울메트로가 책임이 있는 만큼 철저히 조사하고 단단히 문책해 다시는 이런 일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해당 승강장 벽면에는 못다 핀 청춘에 대한 애도와 비정규직 근로자의 애환, 서울시와 서울메트로에 책임을 묻는 내용의 수백 개의 포스트잇이 가득 붙었다. 포스트잇에는 “살아있는 게 죄스럽고 살아있는 게 신기합니다. 미안합니다”, “왜 죽음으로 내몰때는 구조적으로 내몰면서 죽음에 대한 책임은 개인적으로 지길 강요하나”, “메트로 측 사과하고 죽음을 책임져라”, “열심히 일을 했을 뿐입니다. 왜 죽어야 합니까?”, “너의 잘못이 아니야”, “헛된 스러짐이 아니길” 등의 내용이 가득 담겼다.
2층 대합실에 마련된 별도의 추모공간에도 애도의 포스트잇과 국화꽃, 미처 포장을 뜯지 않은 다양한 음식들이 가득 놓였다.
이 곳에서 김명호(42·요리사) 씨는 누가 시킨 것이 아님에도 추모객들의 헌화를 돕고 주변을 청소하며 추모공간을 지켰다. 김 씨는 이날 추모공간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휴무를 신청, 오후 내내 추모공간의 질서를 도왔다.
김 씨의 이 같은 봉사에 시민들은 김 씨를 서울메트로 관계자로 착각하기도 했다. 실제 김 씨는 추모객들에게 국화꽃을 나눠주고 포스트잇이 바닥에 떨어지면 주워 다시 붙이는 등 추모공간을 살뜰히 챙겼다.
김 씨는 구의역을 찾아 봉사 아닌 봉사를 하는 이유에 대해 “잊혀 질까봐 두렵다. 사람들은 뭐든 금방 잊는다”고 답한 뒤 말없이 조문객을 맞았다. 김 씨가 써 붙인 포스트잇에는 “윗분들, 위에 있는 분들이 잘 해야 하는 건데...나쁜 사람들. 책임자에게 수치를 주세요”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날 시민들의 추모행렬 속 서울메트로도 고인에 대한 사과의 입장을 밝혔다. 서울메트로는 이날 오후 추모공간 옆에서 개최한 ‘구의역 사고 원인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대책 발표’ 브리핑을 통해 이번 사고의 총체적 책임을 인정했다.
정수영 서울메트로 사장 직무대행은 “이번 사고로 우리 아들, 동생 같은 19세 청년을 잃게 한 것은 서울메트로 직원 모두의 책임이며 깊이 반성하고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고의 원인은 고인의 잘못이 아닌 관리와 시스템의 문제가 주 원인”이라고 밝혔다.
서울메트로는 책임을 인정하며 해당 사고 관련 서울시와 함께 사고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 있는 직원에 대해 엄중 문책할 것이라고 전했다.
해당 위원회는 서울시 감사위원회 조사관과 안전, 조직 관련 분야 외부 전문가 3명, 노조 측 2명 등 11명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위원회는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작업안전 관련 대책이 적정한지, 대책이 확실히 이행되는지, 유지보수 관련 조직 구성이 적정한지 등을 조사한다.
아울러 승강장 안전문 취급 마스터키 관리주체를 용역업체에서 서울메트로로 이관해 승인 없는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메트로가 작업을 승인하지 않으면 작업자가 스크린 도어 문을 열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서 “사고 당일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직원들의 진술만 가지고 그 책임을 고인에게 전가해 유가족 분들께 깊은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 드린다”면서 “뼈를 깎는 반성과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드리겠다”고 거듭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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