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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 구원투수 권오갑, 위기극복 무기는?


입력 2014.09.25 14:56 수정 2014.09.25 18:02        박영국 기자

현대오일뱅크에서의 4년을 통해 바라본 권오갑 사장의 위기극복 능력

불황속 흑자로 경영능력 검증...특유의 친화력과 식구론도 한몫할 듯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이 24일 오전 울산 본사 해양사업부 출입문에서 출근하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힘을 모아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현대중공업

9회말 노아웃 주자 만루. 경기 초반 넉넉해 보였던 점수차는 어느새 석 점으로 줄었고, 홈런 한 방이면 역전을 허용할 상황이다. 더구나 상대팀 타순은 클린업 트리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구원투수는 군말 없이 마운드에 오른다. 그는 리그 최강이라는 상대팀의 3, 4, 5번 타자를 차례로 아웃시키고 팀의 승리를 지켜내야 한다.

최근 현대오일뱅크에서 4년 만에 친정 현대중공업으로 복귀한 권오갑 사장의 상황이 딱 이렇다.

지난 2분기 사상 최대인 1조1137억원의 적자를 냈고, 조선 시황은 계속해서 바닥을 기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조는 20년만의 파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과연 구원투수 권오갑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선수가 만들어낼 결과물을 예측하는데 있어 가장 신뢰성 있는 판단 기준은 현재의 ‘구위’와 과거의 성적이다.

현대오일뱅크 이끌며 매출 2배, 불황속 흑자로 경영능력 검증

권오갑 사장의 구위와 과거 성적은 그가 지난 4년간 몸담아왔던 현대오일뱅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권 사장이 수장을 맡은 2010년 당시 현대오일뱅크는 매출 10조원을 간신히 넘는 회사였다. 하지만 이듬해 회사 매출은 19조원대로 뛰어올랐고, 2012년에는 21조7000억원으로 20조 클럽에 가입했다. 성장은 꾸준히 지속돼 2013년에도 22조4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올해도 상반기까지 매출 11조원을 돌파했다.

규모만 키운 게 아니다. 권 사장은 현대오일뱅크 사장 재임기간 내내 현대오일뱅크를 흑자 회사로 이끌어 왔다. 첫 해 2557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이듬해 595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급등했으며, 이후 정유시황 악화에도 꾸준히 3000~4000억원대의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올 2분기에는 4대 정유사 중 다른 3개사들이 일제히 적자를 낸 가운데 유일하게 39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권 사장은 공격적인 영업으로 1% 포인트도 높이기 어렵다는 국내 경질유 시장 점유율을 부임 전 18% 대에서 2013년 22% 대로 무려 4% 포인트나 끌어올렸다. 하루 6만2000배럴 규모의 제2고도화 설비 증설로 업계 최고 수준의 고도화비율을 달성한 것도 권 사장의 과감한 결단에 따른 것이었다.

지난해 초에는 연간 150만t의 석유화학제품 원료를 생산하는 BTX 설비를 구축해 석유화학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신제품 엑스티어 출시와 함께 윤활유 사업에도 진출, 수익 다각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시황 악화 속에서도 현대오일뱅크가 흑자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좋은 투수를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잣대는 직구(패스트볼)의 위력이다. 빠른 공을 원하는 곳에 정확히 꽂아 넣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투수로 평가받을 수 있다.

여기에 대응되는 경영자 평가의 가장 중요한 잣대는 회사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고 이익을 내는 경영능력이다. 현대오일뱅크에서의 성과에 비춰볼 때 권오갑 사장은 일단 좋은 구원투수의 요건 하나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직원을 ‘식구’로 만드는 친화력, 노사관계 악화 돌파구 기대

물론, 좋은 직구, 좋은 경영능력만 갖추고 있다고 해서 최고의 투수와 최고의 경영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계속 직구로 정면승부만 하면 불시에 두들겨 맞을 수도 있다. 직구를 보완해줄 변화구 역시 필요하다.

현재 노조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상황을 감안하면 구원투수 권오갑에게 필요한 변화구는 ‘직원들과의 친화력’이다.

사실 이 부분은 권 사장이 가장 잘 하는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오일뱅크 사장 시절부터 그는 직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직원 하나하나를 챙기는 ‘탈권위’적인 경영자로 신망이 높았다.

대표적인 게 권 사장의 평소 지론인 ‘식구론(食口論)’이다. 사원부터 사장까지 한 식구고 아무리 바빠도 밥 한 끼 같이 먹는 게 진정한 식구라는 의미다.

그는 현대오일뱅크 재임 시절 거의 예외 없이 매주 한 번은 새벽부터 서둘러 대산공장에 내려갔다. 직원들과 같은 식판으로 아침을 함께 하기 위해서다.

현대오일뱅크에 ‘신입사원 가족초청 행사’가 생긴 것도 권 사장의 식구사랑 때문이다. 행사에 초청된 신입사원 부모들과 식사를 함께 하며 “앞으로는 부모 역할 절반은 사장이 하겠다”고 다짐하는 권 사장의 모습은 신입사원들로 하여금 회사에 소속감을 갖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실제 권 사장은 “내 딸이 일 하느라 자식 백일도 못 챙긴다면 마음이 아플 것 같다”는 마음으로 현대오일뱅크에 180일짜리 파격 유급 출산휴가를 도입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업무용으로 지급한 에쿠스는 직원들 경조사에 쓰라고 현대오일뱅크 재임 기간 내내 타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같은 권 사장의 직원 친화적 마인드는 현대중공업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취임 직후 구내식당에 임원만을 위한 이른바 ‘칸막이 병풍’을 없앨 것을 지시해 임원과 일반 직원들이 함께 어울려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권 사장 자신도 지난 16일 취임식 이후 점심시간에 울산 본사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식사를 함께 하는 등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그는 현대중공업 노조 파업 이슈와 관련해서도 직접 노조원들과 소통하는 길을 택했다. 지난 23일 오전 출근길에 울산 본사 정문 앞에서 출근하는 노조원들의 손을 잡고 “위기에 빠진 회사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한 그는 비가 쏟아지던 24일에도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출근길 노조원 설득에 나섰다.

현대오일뱅크 사장 시절에도 이와 오버랩되는 상황이 있었다. 지난해 환율 변동에 따른 수출경쟁력 약화와 내수시장 침체로 경영환경이 악화되면서 사측은 노조에 임금동결을 제안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현대오일뱅크 노조는 권 사장의 진정성에 신뢰로 답했고, 임금동결을 받아들였다.

현대중공업에서 당장 눈앞에 닥친 노사 문제나, 좀 더 멀리 바라봐야 하는 경영실적 회복이나 지금으로서는 결과를 점치기 힘들다. 다만, 현대오일뱅크에서 다듬고 검증받은 권오갑 사장의 직구(경영능력)와 변화구(친화력)가 현대중공업을 패전의 위기에서 구하는 데 가장 필요한 무기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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